총신대와 골든 콘웰신학교에서 후진을 양성하고 뉴욕효신장로교회에서 15년 목회를 하며 이민자를 돌보며 초대교회의 공동체성을 강조했던 문석호 목사가 최근 <사도행전 주해 및 교훈집>을 펴냈다.

1,20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주해집을 펴낼 수 있었던 것은 목회의 자리를 떠나 조지아 주 조용하고 평화스런 마을에 자리를 잡으면서 집을 도서관이자 작은 수도원으로 생각하며 생활을 시작한 덕분이다.

그는 인구 만 여 명도 안되는 시골 도시 베들레헴 외곽 Noah's Landing에 자리잡으면서, 곧바로 주해 작업에 착수했으며, 2년 간 작업의 결실로 <사도행전 주해 및 교훈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첫 작업에서 주헤집은 1,800 페이지에 달했으나, 저자는 내용을 축소해 1,200페이지로 줄여 단권으로 출간했다.

사도행전 주해 및 교훈집 <그 도(道)의 사람들>
(Photo : ) 전 총신대 교수이자 뉴욕효신장로교회 담임이었던 문석호 목사가 사도행전 주해집 <그 도(道)의 사람들>을 출간했다.

<그 도(道)의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주해집 출판을 기념해 문 목사는 최근 한국을 방문해 1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출판 감사예배 및 기념 세미나를 개최했다.

한편, 미국 서부에서는 19일(주일) 오후 4시에 뉴크리에이션교회(담임 김관중 목사, 23814 Vermont Ave, Harbor City, CA 90710)에서 출판감사예배를 드린다.

이어 △미동부 워싱턴의 훼어팩스한인교회/WMCGW신학교(총장:양광호박사)에서는 1월 26일(주일) 오후 4시30분에 드려지고 △미동부 뉴욕 베데스다교회에서 28일(화) 오전 10시30분에 일정을 잡았다. 조지아주 아틀란타에서는 4-5월경 봄 출판감사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문석호 목사 <그 도의 사람들> 출간 감사 예배
(Photo : 송경호 기자) 문석호 목사의 사도행전 주해 및 교훈집 <그 도(道)의 사람들> 출간 감사예배가 14일 오전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 3층 그레이스홀에서 열렸다.

1952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난 문석호 목사는 총신대, 연세대를 거쳐 1987년 도미 후 오하이오 주립대 (Bowling Green State Univ.)에서 수학 후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웨스트민스터 필라델피아 본교에서 누센 교수(Robert D. Knudsen)의 지도 아래서 헤겔 철학의 영향을 받은 바르트의 철학을 비판하는 내용의 눈문을 준비하고, 졸업을 앞두고 지도교수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졸업과 논문 디팬스를 앞두고 지도교수가 돌아가게 되면서 문 목사의 학위논문 승인은 난항을 겪게 된다.

"제 논문은 헤겔 철학의 영향을 받은 바르트의 철학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지도교수가 독일어 원본을 읽고 쓰라고 하셔서 원문과 대조하며,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원문을 보면서 작업했다. 그때는 제가 20대 후반, 30대 초반이니 세계적 역작을 만들어 내려는 의욕에 앞섰다. 제 논문이, 바르트가 헤겔 철학을 흉내내고 거기서 삼위일체를 뽑아낸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보수 신학은 헤겔 철학을 비판하는 데 그것을 샅샅이 조사해서 바르트 철학은 성경적인 게 아니고, 헤겔 철학을 짜집기 한 것이다, 이게 제 논문의 주제였다."

누센 교수를 이어, 싱클레어 퍼거슨 교수이 논문 지도를 맡았다. 바르트 분야 전공자였지만 헤겔의 철학의 전문가는 아니었기 때문에 문 목사는 자기 논문을 2-3년에 걸쳐 그를 설득해야 했다.

"저는, 바르트의 삼위일체가 성경적이지 않고 헤겔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았다. 헤겔 철학의 핵심은 변증법이다. 헤겔은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을 통해 나타나는 게 아니라 역사의 발전을 따라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나는 그게 아니라고 보았다. 헤겔 철학은 역사의 발전을 통해 하나님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삼위일체는 태초부터 존재했다고 보았다. 그것을 설명하니 지도교수가 내 논문을 통과시켜주겠다며, 3페이지 정도 되는 내용을 주면서, 그것을 내 논문 결론 부분에 넣으라고 하셨다. 집에 와서 그 내용을 읽는데, 이것을 넣으려면 내용을 다 뒤집어야 한다. 서론부터 다시 써야 하고 결론은 너무 많이 변한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퍼거슨 교수는 문 목사에게 '네가 너무 바르트를 비판했기 때문에 바르트의 좋은 점을 넣어야 한다'며, '논문을 쓸 때는 비판만 하지 말고 발란스를 맞춰야 한다'고 조언을 남기고는 목회를 해야 한다며 스코틀랜드로 돌아갔다.

학교에서는 그의 논문을 담당할 사람, 헤겔 철학을 다룰 수 있는 전문가도, 바르트 전문가도 없다며, 그에게 스스로 지도교수를 찾아 보라고 했고, 결국 문 목사는 여러 신학교를 수소문해 바르트와 독일 철학을 아는 분을 찾아냈다.

그 교수가 있는 클레어몬트 신학교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논문을 검토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교수가 그의 눈문을 읽은 후 그의 논문에 유리한 내용의 편지를 학교에 보냈으나, 학교측에서 보내온 답변은 그 신학자의 편지를 받아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 신학자는 바르티안 신학자(바르트의 신학을 따르는 학자들)였는데, 웨스트민스터는 바르트를 공격하는 학교라는 것이 이유였다.

학위 논문으로 여러차례 좌절을 경험한 문 목사는, 처음 그가 박사학위를 어느 학교로 갈지 고민하고 있을 때 김의환 목사님이 하셨던 말씀이 그때서야 떠올랐다.

"그런데 내가 박사학위 공부하러 갈 때, 김의한 박사님에게, 제가 Ph.D 과정을 어디로 갈까요? 그때 김의환 박사님이, 문 교수, 사우스 아프리카로 가. 그런데 그때 나는 지식이 없어서, '목사님이 나를 어떻게 알고 아프리카를 가서 학위를 받아요? 왜 나를 아프리카로 보내나.' 그때는 그것을 모르고 상처를 입었다. '목사님이 나를 어떻게 알고 아프리카 가서 박사학위를 받아?'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학교가 세계적인 학교였다."

그는 김의환 목사님이 제안하셨던, 스텔렌보스 대학(Stellenbosch Univ.남아공/ Dr.Th.)에 가서 '제3세계 신학과 삼위일치, 민중신학의 삼위일체'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면서, 문 목사는 이러한 경험 이후 후배 신학생들에게, "너무 학문적인 욕심을 내서 학위 논문을 쓰지 말라, 그런 것은 교수가 된 이후에 써도 된다"고 조언한다고 덧붙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