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신학아카데미 김균진 원장(연세대 명예교수)이 7일 김경재 한신대학 명예교수 소천 추모사를 발표했다. 고인은 지난 3일, 85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김 박사는 "한 평생 한국신학대학의 교수요 본 한국신학아카데미의 자문위원이셨던 김경재 교수님은 한국 신학계의 후배들에게 거성이셨다"며 "제가 한국신학대학 학부에서 공부할 당시 김경재 교수님은 대학원 과정을 갓 졸업한 선배이었다"고 했다.
이어 "그 당시 한국신학대학의 신학적 분위기는 박봉랑 전경연 교수님을 중심으로 한 카를 바르트(K. Barth) 신학이 지배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절대 타자성(totaliter aliter)과 성서 말씀의 절대성(오직 말씀으로!)에 근거하여 자연신학을 철저히 거부한 바르트 신학에 반해 강의실에서 '자연'이라는 말만 나와도 얼굴을 붉히며 호통을 치는 분위기였다"며 "그러나 바르트 신학은 피선교지의 문화 전통에 대해 배타적 입장을 취함으로 말미암아 기독교 신학이 한국의 전통적 문화와 연결되지 못하는 문화적 배타성의 문제점을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에 김경재 교수님은 바르트 신학을 전공하지 않고 파울 틸리히의 신학을 전공함으로써 한국의 문화적 전통과 기독교 신앙의 결합을 꾀하였다"며 "이것은 박봉랑 전경연 교수님의 신학 노선에 대한 반란을 뜻했기 때문에 김경재 교수님은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이같은 김경재 교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 당시 한신대학 후배들은 '저 선배님이 어떻게 하려고 저런 신학적 입장을 굽히지 않으실까, 저러다가 해를 당하지 않으실까' 염려하는 말을 나누기도 했다"며 "그러나 김경재 교수님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한국의 문화적 전통과 신학의 연결을 시도하셨다. 나아가 한국 사회의 상황적 문제들과 신학의 연결도 시도하셨다. 이같은 김경재 교수님의 모습에서 저는 학자로서의 지조를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또한 "김경재 교수님은 세상적 출세와 명예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며 "제가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 한국기독교학회와 조직신학회에서도 회장이란 감투를 얻으려고 눈에 보이지 않게 활동하는 교수들이 있었다. 이미 작고한 어떤 선배 교수님은 회장으로 선임된지 10년이 넘어도록 조직신학회 회장직을 내어놓지 않으려 했다"고 했다.
그러나 "김경재 교수님은 일체의 감투에 초연한 모습을 일관하였다"며 "제가 기억하기에 김경재 교수님은 그 조그만 조직신학회 회장 한 번 하지 않고 작고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한신대학 총장직에 대해서도 그분은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의 학문의 길을 걸어 갔다. 참으로 그는 학자로서 지조 있고 자기의 교수직에 충성하는 분이셨다"고 회고했다.
김 박사는 "인격적으로도 김경재 교수님은 존경스러운 분이었다. 자기의 입장과 다른 입장을 품어 줄 수 있는 관대하고 너그러운 분이었다"며 "자기를 자랑하거나 자기를 중심에 세우려는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 마디로 그는 '인간다운 인간'이었다. 이같은 분이 한국 신학계에 계셨다는 것은 우리 후배들에게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이제 육신과 세상의 모든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으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김경재 교수님께 하나님의 크신 위로와 영원한 안식을 빈다"며 "남은 유족들에게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을 빌 뿐"이라고 전했다.
한편, 8일 김균진 원장에 이어 추모사를 전한 기독교학술원장 김영한 박사는 "혜암신학연구소 설립 당시(2014) 이장식 교수를 잘 보필하셨고, 설립자 별세 이후 소장직을 기꺼이 후배에게 넘겨주시고, 연구소가 어려웠을 때 후임 소장을 격려, 뒷바라지하시고 창립 정신을 이어받아 신학적 보수와 진보가 학문적으로 대화하는 '한국신학아카데미'로 탄생하는 데 힘을 모아주신, 소탈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남아있다"고 했다.
이어 "고인은 폴 틸리히에 매료되어 경계를 넘나드는 신학적 사유로 자유로운 문화신학을 추구하였고, 민중신학의 경건성을 도외시한 사회구조 변혁 일면성의 한계를 지적하셨다"고 했다.
더불어 "주변의 동료께서 별세하는 것을 보면서 본향 천국 갈 우리의 날도 더 가까워진 것을 느낀다"며 "종교개혁자들의 코람데오의 신앙, 청교도의 순례자 삶이 요구됨을 느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