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는 윤리적 무감각과, 그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 사회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다, 사진, kbs 뉴스화면
백종원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는 윤리적 무감각과, 그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 사회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다, 사진, kbs 뉴스화면

백종원 논란,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파산을 비추다

최근 한 방송 프로듀서가 폭로한 백종원의 방송 외 압력 행사 논란은 단순한 연예계 이슈를 넘어선다. 백종원이 개인적 불쾌감을 이유로 방송 출연자를 교체하도록 요구했고, 이에 제작진이 실제로 출연을 철회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는 명백한 권력 남용이자 방송 윤리에 어긋나는 행태다. 더불어 이와 같은 영향력이 그가 출연하지 않는 타 프로그램에까지 미쳤다는 점에서, 방송가 내 구조적 문제와 함께 대중이 스타에게 얼마나 쉽게 휘둘리는지를 보여준다.

백종원과 그의 배우자 소유진은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교인이라고 해서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리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적어도 공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윤리의식과 책임감은 갖춰야 한다. 그가 보여준 행동은 단순한 실수를 넘어, 권력과 영향력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태도에서 비롯됐다.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비윤리적 행태다.

그러나 진정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사건이 보여주는 윤리적 무감각과, 그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 사회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다. 교회 안팎에서 일어나는 비도덕적 행위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신앙은 외형적으로만 존재하고, 실제 삶에서는 의리도, 양심도 사라진 채 이익과 체면이 신앙을 대신하고 있다. 교회 속담에 "믿음이 없으면 의리라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조차도 이제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해졌다.

미국 텍사스의 게이트웨이교회 (Gateway Church) 창립자 로버트 모리스 (Roberts Morris) 목사는 아동 성 학대 혐의로 교회 담임직에서 사임했지만, 그 직후 교회에 거액을 요구하고, 별도의 교회를 새로 개척했다. 전혀 반성 없는 태도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 때 청년들에게 인기 있었던 전병욱씨도 자신이 목회하던 교회의 여신도에게 상습 성추행으로 인해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학로 근처서 개척하여 여전히 목회와 설교를 하고 있다. 

'1년만 지나면 다 잊고 다시 찍어준다'는 어느 모자란 보수 정치인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교회의 비극이다. 도덕적 기준은 교회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아니라, 권력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가변적인 잣대가 된 것이다.

사도 바울 곁에서 끝까지 동역했던 누가, 에바브로디도, 그리고 로마서 16장에 기록된 수많은 인물들은 신실함의 본보기다. 그들은 이름 없이도 신념을 지켰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이런 인물을 찾기 어렵다. 도덕성과 진실함은 외면당하고, 화려한 언변과 스펙만이 목회자의 자격이 되는 시대다. 학력과 커리어로 포장된 목회자들은 자주 교회를 기업처럼 운영하며, 회중은 소비자에 불과하다. 이는 중세 교회의 성직 매매, 교권 부패를 떠올리게 한다.

사업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앙은 삶의 원칙이 아니라 장식품처럼 전락했다. 직장에서의 윤리, 가족 내 책임,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부끄럽게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 모든 현상이 개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화되고 일반화되었다는 점이다. '성공'과 '인기'라는 이름 아래 신앙과 양심은 거래되고, 심지어 교회조차 그 거래의 장이 되고 있다.

백종원 사건은 하나의 경고다. 단순히 유명인의 일탈로 치부하기엔 그 파장이 크고, 그 구조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비윤리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이제 자성해야 한다. 외형의 번영보다, 내면의 윤리와 도덕을 회복해야 한다. 빛과 소금의 사명을 되찾기 위해선, 무엇보다 신실함을 회복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우리 시대는 더 이상 화려한 말보다, 조용히 신념을 지키는 무명의 그리스도인을 필요로 한다.

"많은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동시에 많은 책임을 지닌다는 뜻이다." 김재환 전 MBC PD가 인용했던 이 말이 문득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