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어느 날 저녁 9시가 넘은 시간, 한 여성과 남자아이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이들은 아파트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한 남성과 함께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한 가족이다. 만삭인 아내는 6살배기 아들과 함께 귀가하는 남편을 마중 나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복도에 주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20층 아파트에서 25살 대학생이 투신했는데, 당시 그곳을 지나던 남편을 덮친 게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는 억울한 일이다. 대학생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30대 남성도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자살한 대학생은 공무원 준비생이었다. 그런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유서를 쓴 채 아파트 20층에서 뛰어내렸다.

느닷없이 봉변을 당한 남성은 전남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맡은 일을 조용하고 성실하게 잘하던 공무원이었단다. 그날도 막차를 타고 마중 나온 모자와 함께 집으로 들어가던 길이었다. 더구나 아내는 만삭의 몸이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 한 모퉁이에서 버둥대는 젊은이들의 현실이 안타깝다. 대학에 들어가느라 몸서리치게 고생한다. 대학에 들어간다고 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취업은 대학 진학보다 더 힘들다. 더구나 공무원 시험이 하늘에 별 따기 같은 세상이다. 가련한 세대이다.

그래도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가족들이 흘려야 할 눈물도 애꿎다. 아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허리 휘도록 일하던 부모는 무슨 잘못인가? 달랑 유서 하나가 위로가 될 거라 생각하는가? 가슴에 묻은 아들의 시신을 안고 평생 몸부림쳐야 하는 부모의 심정을 알긴 하는가?

세상을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을 많이 당한다. 만들려 해도 만들기 어려운 우연이 현실로 다가오기도 한다. 정말이지 애꿎은 사람이 억울한 피해를 당했다.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단란한 한 가정은 너무나 비참하게 되었다.

슬픔과 아픔과 불행은 연결되어 있다. 나의 슬픔은 나만의 슬픔이 아니다. 나의 아픔은 나만의 아픔이 아니고, 나의 불행은 나만의 불행이 아니다. 연결시키려 애쓰지 않아도 서로 체인처럼 엮여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인생에 대한 강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불행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한 사람 아담으로 인해 온 인류는 죄의 DNA를 갖고 태어난다. 아담 안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 되었고, 저주와 형벌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의 DNA를 끊어버리셨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온 인류에게 생명을 주셨다. 십자가의 은총 아래 거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왕국을 향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생명을 주는 예수님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저주와 죽음을 가져온 아담의 길을 선택하려 든다. 사람을 살리는 길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길을 선택한다. 그러니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행의 초대장을 받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

부산에 있는 어느 아파트에서 그야말로 날벼락이 쳤다. 불꽃이 번쩍하더니 물건들이 창문을 뚫고 날아갔다. 가스 폭발 충격으로 아파트 전체가 뒤흔들렸다. 산산조각 난 파편들은 놀이터로 쏟아지고, 차량과 도로를 덮쳤다. 40여 가구의 유리창 100여 장이 깨졌고, 차량 20대가 부서졌다.

본인은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한 남성의 무모한 자살 시도가 아파트 한 동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말았다. 아래층 주민은 뼈가 부러지는 등, 이웃 주민 6명이 크게 다쳤다. 1-9층 외벽 유리와 인근 5개 건물 유리가 파손됐다. 74가구 154명이 졸지에 이재민 신세가 됐다. 아파트 수십 가구가 베란다마다 뻥뻥 뚫렸고, 주민들의 출입도 전면 통제됐다. 단전 단수가 되고, 승강기까지 운행이 중단되었다. 졸지에 이재민이 된 주민들은 임시대피소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도대체 왜 졸지에 한 아파트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는가? 5층 집주인의 자살 소동 때문이었다. 뭣 때문에 이렇게 소란스러운 자살 소동을 벌였는가? 가정 불화 때문이다. 무슨 일로 싸웠는지 알 수는 없지만, 치솟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비극이다.

죽을 생각으로 가스레인지 호스를 잘랐다. 3시간을 틀어놨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죽으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결국 밸브를 잠그고 담배를 피우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라이터를 켜는 순간 가스가 폭발한 것이다. 당시 가족들은 다른 곳에 있어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변에 미친 결과는 실로 엄청났다.

살다 보면 갈등할 수 있다. 얼굴을 붉히면서 싸울 수도 있다. 그러면서 정들기도 하고, 서로를 알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갈등과 다툼이 극단으로 치닫는 걸 주의해야 한다. 욱하는 성질머리를 다스리지 못하면 낭패를 당하기 마련이다.

인생은 좀 더 이성적일 필요가 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야 누군들 못하랴. 지혜로운 자는 치미는 화를 다룰 줄 안다. 참고 참는 게 인생 아니던가. 화난다고 아무렇게 하는 것이야 아무나 할 수 있다. 화가 나더라도 참는 게 바른 인생이다. 화가 치미는 순간 사단이 틈을 탄다. 사단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막아야 한다.

죽을 생각이야 누군들 못하랴. 사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인생이 너무 소중하니까. 생명은 존귀한 거니까.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서. 인생의 문제가 영원한 건 아니니까. 살다 보면 죽고 싶다는 생각은 다시 변하는 거니까. 그래서 죽음의 문턱을 서성이지 말아야 한다.

내 인생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신을 해하는 인생도 피해야 한다. 더구나 나 때문에 많은 사람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지 말아야 한다. 실수야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나 고의적인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건 없어야 한다. 그건 피할 수 있는 선택이니까.

/김병태 목사(성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