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최근 어느 집사님을 통해 신앙생활을 시작한 성도님이 계신다. 벌써 68년의 인생을 살아왔다. 누구나 힘든 세월을 살아왔겠지만, 더구나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진짜 고달픈 인생을 살아왔다. 딸에게 '여자의 일생'이라는 책을 썼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그분은 43살에 혼자 되셨다. 남편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무심하게도 어린 남매 자녀들만 남겨둔 채. 재산도 남겨놓지 않고서. 후울~쩍. 기가 막히고 막막한 상황이다. 슬픔은 고사하고 앞으로 살 날이 걱정이다. 당시 폐결핵을 갖고 있었는데, 언제 나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열심히 살아왔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 위해 직장생활을 선택했다. 다행히 대기업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나중에 대학공부를 하기는 했지만.

남편 없이 남매를 키우다 보니, 뭔가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마을에 있는 보살이다. 더구나 아들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터라, 아들에 대한 기대도 컸다. 아들의 장래에 대해, 보살이 하는 말에 전적으로 귀를 기울였다. 보살이 아들의 인생을 보장해 줄 줄 알았다. 보살이 시키는 대로 하면 아들의 인생길이 잘 열릴 것이라 생각했다.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가? 보살이 그렇게 잘 알아맞히고 팔자를 고칠 수 있다면 본인의 팔자부터 고칠 일이지. 내가 알기로는 보살 치고 제대로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경우를 못 봤다. 보살 자녀 치고 잘 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자신도 다른 길을 가고 싶지만, 그 길을 떠나면 불운이 찾아올까 봐 어쩔 수 없이 밀려가고 있다. 몇 년 전에 자기 자식들을 위해 보살을 그만두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고 너무 고민스럽다는 상담을 받아본 적도 있다. 그런데 이 성도는 보살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다.

이게 웬일인가? 보살에게 돈을 갖다 주었지만, 아들의 중매는 자꾸 어긋났다. 선을 보면 제대로 성사가 되지를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뒤늦은 결혼을 했다. 그런데 부부생활이 시원치 않았다. 부부관계가 원만치 않았고, 그러다 보니 기다리는 자식도 들어서지를 않았다.

아들은 방황하기 시작했다. 방황하는 아들을 보면서 엄마나 누나는 비난하고 핀잔을 주기 시작했다. "얘는 왜 저렇게 살어?" "쟤는 원래 그런 인간이지." 엄마와 누나에게서 따뜻한 위로도 격려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럴수록 아들은 비뚤어진 길을 달려갔다. 결국 이들 부부는 1년 만에 이혼을 했다. 엄마가 보기에 무척 성실하고 착한 아들이었다. 그런데 마음을 터 놓고 얘기할 친구가 하나도 없다. 살아가는 게 힘들다 보니 자꾸 어긋난 행동을 하게 되었다.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는 지친 삶에 말썽도 부렸다. 그러다가 결국 자살이라는, 선택하지 말아야 할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엄마는 그저 후회스럽기만 하다. '진작 교회에 데리고 나갔으면 말씀을 듣고 용기를 낼 수 있었을 텐데. 교회에서 친구들을 사귀었으면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돌파구를 마련했을 텐데....' 너무나 가슴 아프다. 그러나 후회한들 어쩌랴. 이미 늦었으니.

아들을 보낸 후에 49제를 지냈다. 아들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후 많은 돈을 들여, 죽은 사람의 영혼이 하늘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는 천도제(薦度祭)를 드리려 했다. 그때 보살이 제안했다. "천도제를 드린 후에 교회로 나간다고 약속하면 천도제를 해줄 것이고, 나가지 않는다면 해줄 수 없다!"

아무리 아들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종교를 바꾸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어떻게 보살이라는 양반이 이렇게 말하는가?" 속상하기도 했다. 그래서 1년 동안 고민하고 갈등을 하다가 결국 약속을 했다. "교회에 나가겠다." 이렇게 되고 보니 정말 헷갈린다. 보살의 말을 믿어야 하나? 안 믿어야 하나?

결국 천도제가 성도를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보살이 세파에 지친 한 사람을 교회로 발길을 옮기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게 우연히 이루어진 게 아니다. 천도제를 준비한다기에 중학교 시절부터 미션스쿨에서 신앙생활을 해온 딸이 기도를 했다. "이번 천도제를 통해 엄마가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해 주세요."

어디 그 뿐인가. 그 성도를 전도하기 위해 집사님 한 분이 계속 기도해 왔다.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된 게다.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보살이 예수 믿는 걸 조건부로 해서 천도제를 해 준 게다. 68세가 된 이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가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도 일하신다.

그래서 솔로몬은 고백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더라도 함부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의 잣대로 평가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인간이다. 이 경계선을 넘나드는 걸 주의해야 한다.

창조자 하나님이 왜 피조물의 틀 속에 갇혀야 한단 말인가? 주인이 왜 종의 감정과 생각에 끌려 다녀야 하는가?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생각대로 움직여야 할 책임이 없다. 인간이 하나님을 로봇처럼 리모컨으로 조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받아들일 뿐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앞에서 믿음으로 반응해야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