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환 목사.
(Photo : ) 김세환 목사.

일본과 한국 그리고 베트남에서 온 유학생들이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수업에서 자신들의 영어 발음이 미국 본토인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면서 말싸음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영어 단어들을 아주 짧게 발음하는 일본 학생이나, 시끄럽게 따갈따갈대며 중국어 같은 영어를 하는 베트남 학생보다 자기 발음이 월등히 뛰어나다고 생각한 한국 학생이 영어 선생님한테 찾아가서 “누구의 발음이 더 미국 본토 발음에 가까운지 판결을 내려달라고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물론 “내기”를 하는 것은 필수였습니다. 자기들 귀에는 자기 발음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던 세 학생이 모두 흔쾌히 동조하고 영어 선생님에게 달려갔습니다. 자초지정을 다 들은 선생님이 세 명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심각하게 한 마디 해주었습니다. “나는 너희들끼리 이런 생각을 영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다라는 뜻입니다.

자기가 스스로를 볼 때는 대단한 것 같아도 제 삼자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도토리 키재기 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콩이 한 번 구르나 좁쌀이 열 번 구르나 그 자리가 그 자리입니다. 콩은 자기가 덩치가 큰 것만 생각하고, 좁쌀은 열 번 구른 것만 생각합니다. 중국 전국시대 때에 위나라 양혜왕(梁惠王)이 한번은 맹자(孟子)에게 잘난 척하면서 애매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보게,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다른 나라의 왕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백성들을 사랑하고 잘 치리한다네. 그런데 왜 다른 나라는 백성들의 숫자가 늘어나는데, 우리 위나라는 오히려 줄어드는지 모르겠네. 자네는 그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나?” 그러자 맹자가 거만한 양혜왕에게 의미심장한 이야기 하나를 해 주었습니다.

“어떤 두 병사가 전쟁터에 나아가 싸우다가 전세가 기울자 재빨리 도망을 쳤다고 합니다. 한 병사는 오십보를 도망쳤고 , 다른 한 병사는 백보를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오십보를 도망친 병사가 자기보다 더 멀리 백보를 도망친 병사에게 ‘야! 이 겁쟁이 놈아, 그러고도 네가 병사냐?’하면서 욕을 했답니다. 왕께서는 이 병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양혜왕은 단번에 맹자에게 답했습니다. “오십보를 도망치던, 백보를 도망치던 그 놈이 그 놈 아닌가? 둘 다 도망자일 뿐이지! 과연 남을 욕할 자격이 있겠는가?” 그러자 맹자가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왕이나 다른 나라의 왕들이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입니다. 근본정신이 바뀌지 않는데, 무엇을 한들, 거기가 거기 아니겠습니까?” 남보다 조금 더 아는 것 같고, 더 가진 것 같다고 해서 우쭐대거나, 혼자서만 독야청청한 척을 합니다. 과연 그 사람이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근본적인 정신과 철학을 바꾸어 남을 섬기고 세워주는 삶을 살 때, 그 모습이 정말로 존경받는 삶이 될 것입니다. 항상 근본이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