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성 목사.
(Photo : ) 김지성 목사.

참치라는 물고기를 아십니까?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투나’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물고기입니다. 덩치가 큰 놈은 몸길이가 무려 3미터나 되기도 하고, 몸무게는 680kg을 훌쩍 넘기기도 합니다. 빠르게 헤엄칠 때는 시속 160km이상의 속력을 내는 바다 속의 경주자입니다.

참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헤엄을 칩니다. 다른 물고기와는 달리 아가미를 열고 닫는 근육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치는 자신을 스스로 움직여 바다물이 아가미로 통과하게 함으로써 산소를 흡수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헤엄을 멈추면 그 순간 참치는 질식해서 죽습니다.

참치는 잠을 잘 때도 뇌만이 쉴 뿐 온 몸을 움직여 헤엄을 칩니다. 참치는 헤엄을 멈추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그렇기에 참치는 넓은 바다를 필요로 합니다. 참치는 넓은 바다를 결코 넓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반면, 가자미라는 물고기는 참치와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모양이 넙적해서인지 물고기 치고는 헤엄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바다 밑 모래 속에 은신해 있거나, 파도치는 대로 밀려다닙니다. 헤엄을 친다기보다 떠다닌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 모릅니다. 눈 앞에 먹이가 나타나야 겨우 몸을 움직일 정도입니다. 그래서 물고기가 맞는지가 헷갈릴 정도입니다. 그렇기에 가자미는 그렇게 넓은 바다에 살아도 가자미의 바다는 웅덩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참치와 가자미. 우리에게 묘한(?) 교훈을 줍니다. 참치처럼 늘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자미처럼 매사에 수동적이며 소극적이기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영적인 통찰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24시간 하나님과의 영적 교류를 끊어서는 안됩니다. 영적 교류가 끊어지는 순간 삶의 의미는 상실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참치가 헤엄을 멈추면 끝이라고 여기기에 헤엄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도 영적 상태가 무너지는 것이 곧 끝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참치처럼 넓은 세상이 좁게만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자미처럼 넓은 세상이 하등 필요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치는 넓은 바다에 살며 그 바다를 모두 활용합니다. 넓은 바다가 곧 자신의 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가자미는 넓은 바다가 한없이 부담스러울 뿐입니다. 자신이 삶의 터전으로 여기는 자리 이외는 거들떠 볼 필요조차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제공하시는 꿈을 마음껏 활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이 마냥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아무리 큰 것을 말하고, 아무리 넓은 것을 말해도 그것이 부담스럽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크고 넓은 것이 사람에게 꼭 필요하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렇게 넓고 광활하게 창조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물고기가 모두 가자미와 같다면 하나님께서 바다를 그렇게 넓고 깊게 만드실 필요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참치형 인생인가? 가자미형 인생인가? 삶의 두 유형 중 당신의 삶은 어떤 유형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