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환 목사.
(Photo : ) 김세환 목사.

서점에서 책을 뒤적이는데 익숙한 제목의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때 “행복 전도사”라고 불리던 어떤 여자 분이 쓰신 책입니다. 책 표지에 활짝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간단명료하면서도 확신에 가득찬 그녀의 조언들은 인생의 낭떠러지에서 마지막 생명의 끝자락을 움켜쥐고 힘겹게 버티고 있던 사람들에게 삶의 의욕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시원한 청량제였습니다.

다 죽어가던 사람들도 그녀의 책과 강의를 접하면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행복은 자신의 결단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는 그녀의 당찬 모습은 경제 대란으로 우왕좌왕하며 절망하고 있던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녀가 자신의 남편과 함께 한 모텔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책상 한쪽에는 자신의 비겁한 결정에 대해서 국민들께 이해와 용서를 구하는 비통한 유언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여러가지 난치병과 그로 인한 경제적 부담에 짓눌려 왔습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통증과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녀는 결국 지칠대로 지친 남편의 도움을 받아 동반자살로 함께 생을 마친 것입니다. 아무리 명강사라 할지라도 자신의 말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준 씁쓸한 사건이었습니다.

“눌언민행(訥言敏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함께 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말은 다소 어눌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현대인들은 너무 말을 잘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더 믿음직스러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은 대부분 공해에 불과합니다(마태복음 7:24-27).

며칠 전에 대학에 다닐 때부터 절친했던 친구와 한 통의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이민목회를 접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겠다는 마음으로 사회생활을 택한 용기있는(?) 친구입니다. 5년 남짓한 기간 동안 공장에서 죽도록 일을 했습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려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예전에 그는 강단에서 설교를 할 때면 “주님을 잘 믿노라” 하는 사람들이 십일조 앞에서는 벌벌 떠는 비겁한 모습을 보고 칼날 같은 질타의 말을 던지던 선지자였습니다.

그 서릿발 같은 위상을 가진 친구가 잔뜩 풀이 죽어서 푸념 같은 고백을 던졌습니다. “야! 나는 정말 나쁜 놈이야. 그들의 입장에 서게 되니까, 나도 내 말대로 살지 못하더라구!” 더이상 찢어 발릴 것이 없는 빈티나는 박봉에서 십일조를 뗀다는 것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성도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감사하게도 몇주 전부터 이 친구가 다시 연합감리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첫 부임설교를 앞두고 “이제는 강단에서 말을 하는 것이 두렵다”고 자신없어 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용기를 북돋우어 주었습니다. “친구야! 너는 정말 말을 잘하게 될거야. 반드시 성공적인 목회를 할거다. 힘내라”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말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사람이 말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