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Photo : )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어느 남자의 부인이 2층 자신의 침실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 남자는 마지막 가는 부인을 위해 고급스러운 관을 준비했다. 그리고 장의사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장례식을 가장 품위 있고 고상하게 치러 주세요."

드디어 발인을 하는 날이었다. 예배를 잘 마치고 운구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조심스레 운구를 했다. 좁은 코너를 돌게 되었다. 운구하는 사람이 실수를 해서 모서리 부분에 꽈당 부딪혔다.

그 충격에 의해서인지 관 안에 있던 부인이 다시 살아났다. 장례식장에 있던 모든 조문객들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기쁘게 축하하고 돌아갔다.

세월이 지났다. 그 부인이 또 다시 죽었다. 그 남자는 슬픈 일을 두 번이나 당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의사에게 "더 좋고 튼튼한 관에, 최고급 장례식이 되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다.

장의사 직원들은 장례를 정성껏 준비했다. 발인을 하는 때가 되었다. 그 남자는 운구하는 사람들에게 두둑한 팁을 쥐어 주면서 당부를 했다. "운구를 조심스레 정성껏 해주게나!"

드디어 운구가 시작되었다. 그 남자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관을 따라 가면서 연방 말했다. "여보게들! 조심, 조심, 또 조심하게! 관이 떨어지지 않도록 정말 조심하라고! 알았지! 어이 그 쪽, 좀 더 힘을 내! 조심하란 말이야!"

코너를 도는 순간이다. 그러자 그 사람은 매우 긴장한 듯이 말했다. "어이, 요리요리! 저리저리!"

서글픈 일이다. 이게 부부의 현실이라면. 그런데 요즘 한 지붕 아래 두 가족이 한 두 가정인가? 부부라고 하지만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결혼하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30억이 넘는 남자 가운데 유일한 한 사람, 30억이 넘는 여자 가운데 유일한 한 사람의 만남이다. 얼마나 어려운 만남인가? 얼마나 운명적인 만남인가?

결혼할 때 순탄하게 결혼한 사람도 있다. 별 탈 없이 쉽게 결혼했으니 정말 큰 복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잘' 살아야 한다. 더구나 주변 가족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전투적으로 결혼을 한 부부라면 더 그렇지 않은가? 어떻게 한 결혼인데,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일이 생각난다. 우리 옆집에 사는 형과 같은 마을 누나가 서로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두 사람 모두 이씨 성을 가졌는데, 동성동본이었다. 양쪽 집안에서는 야단이 났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그럴 순 없다!"

양가 집안은 집요하게 반대했다. 결국 두 사람은 결심을 했다. 야반도주하기로. 서울로 올라와서 살림을 차렸다. 물론 집안과 연락을 두절한 채.

오랜 세월이 흘러 아이를 낳고 고향 땅을 밟았다. 그러니 어쩔 건가. 어쩔 수 없이 양쪽 집안에서는 결혼을 허락했다. 뒤늦게야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만났으니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 그런데 그렇지를 못했다. 서로 싸우기가 일쑤였고, 하루를 멀다 않고 눈이 멍들어 있었다.

한때는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해서 결혼을 한다. 그런데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갈까. 많은 부부들이 머지않아 평생 '웬수'로 생각하고 살아가니. 그러다보니 다시 태어나서 배우자를 고른다면 절대 이 사람과 살지 않겠다고 한다. 얼마나 지겨웠으면.

세상에는 남보다 못한 가족이 많다. 갈등이 생기면 진짜 남보다 못한 게 가족이다. 재산 상속을 둘러싸고 가족 간에 갈등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형제간에도 한 치의 양보도, 이해도 없다. 그저 자기 몫을 조금 더 챙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어떤 가정에는 노부모를 부양하는 문제로 형제간에 다투는 것을 본다. 부모를 봉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에 공감은 해 준다고 해도 너무한 경우가 많다. 어떤 가정에서는 가족간 돈거래 때문에 남보다 못한 사이로 벌어진 경우도 있다.

가끔 장남의 아픈 푸념을 듣는다. 형제들이 어린 시절, 장남으로서 부모를 대신해 공부를 가르쳤다. 오랜 세월이 흘러 장남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먹고 살만한 형제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이제는 형제들이 입을 싹 닦아 버린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어?' 너무나 야박해진 형제들에게 가슴이 아파 울고 있다.

어느 주부의 가슴 아픈 사연이다. 남편이 대장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게 바로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막막했다.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소리를 지르고 싶다.

병원에서 '수술 날짜를 잡기 전에 방사선 치료를 해야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친정에 맡기려고 올케에게 부탁했다.
"올케 언니, 우리 딸 한 5일만 봐주면 안 돼요?"

올케 언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학기 초라 아들내미 학교일이 너무 바빠서 봐 줄 수가 없어요."

너무 기가 막혔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너무 서운해서 입에서 거친 소리가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남편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생각할수록 너무 화가 났다. '여자는 시집 가면 남이 된다'는 말이 실감났다

세상에는 남보다도 못한 가족도 있다. 갈등이 있고 보면 가족이란 게 너무 고통스럽다. '차라리 남 같으면 훨씬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가족이기 때문에 더 큰 배신감을 느낀다.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더 아프고 고통스럽다.

추석 명절이 다가온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만나니 얼마나 좋은가? 오손도손 옛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족의 정을 맛볼 수 있다. 게임이나 오락을 즐기면서 행복한 순간을 맞는다. 노모께서 만든 정성어린 사랑의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아름다운 시간을 만든다.

그런데 명절이 되면 걱정이 앞선다. 명절증후군이 있기 때문에. 좋은 날, 가족 간의 다툼과 싸움이 더 많아진다. 부부간에 심기가 뒤틀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서로 등을 지고 귀성길에 오른다.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 명절이 되면 가족들을 만나는 게 부담스럽다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을 피하고 싶다고들 한다. 왜? 가족 간에 주고받는 말 때문에. "나이 찼는데 어서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야지?" "취직했어? 빨리 일자리 구해야 할 텐데...." "공부 잘 해? 좋은 대학 가야지?" "누구, 누구도 돈 벌었다더라!" "안 본 사이에 살이 찐 것 같다." "둘째 낳아야지?"

가족이니 위한다고 했겠지. 그러나 듣는 사람 기분 생각 좀 해주면 좋겠는데. 위한다는 말이 그에게는 크나큰 상처가 될 수 있고 부담이 될 수 있으니. 이번 명절, 남보다 못한 가족이 아닌 가장 소중한 가족으로 느껴지게 말 한 마디라도 조심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