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영광교회 김병규 목사
(Photo : ) 시애틀 영광교회 김병규 목사

중국 천하에 명의인 편작 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에게서는 두 명의 의사 형이 있었습니다. 왕이 편작에게 물었습니다. "삼 형제 중에 누가 가장 실력이 좋은가?" 편작은 맏형의 의술이 가장 뛰어나며 둘째 형님이 다음이라고 했습니다. 왕은 의아해하면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편작은 "맏형은 환자가 증상을 느끼기도 전에 얼굴만 보고 앞으로 병이 나타날 것을 알고 병이 생기기 전에 미리 치료해 줍니다. 그러다 보니 형이 낫게 해 준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둘째형은 병세가 미약할 때 병을 알아내어 치료해 줍니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은 둘째형이 큰 병을 치료해 주었다 생각지 않습니다." 

궁금해진 왕은 편작이 유명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저는 병이 커져서 심한 고통을 느낄 때 비로소 알아봅니다. 중한 병이기에 맥을 짚고, 처방하고 아픈 곳을 도려내는 수술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큰 병을 치료해 주었다고 믿고 존경합니다. 이것이 삼형제 중 가장 실력이 모자라는 제가 명의로 소문난 이유라 했다합니다" 인간의 심리를 잘 묘사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도, 진심으로 당신을 생각해주고, 염려해주고, 아파해 주는 사람보다는 편작을 명의로 보듯이 선물이나 한 끼니의 양식 같은 순간적 보이는 이익을 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설교에 대해 비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직선적인 말을 해도 되나?, 설교자의 자질이 문제다, 꼭 설교만이 하나님의 방법이냐?"등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상당한 위험성이 내포돼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설교를 통해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설교의 영광이 사라지면, 교회의 영광도 사라지고. 설교의 능력이 무시되면, 하나님의 교회도 무시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설교의 영광을 도외시하고, 다른 것에 매달리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데 할 말을 다하지 못해가고 있는 나를 보고, 나이가 들면서 성숙해졌다느니, 부드러워졌다느니, 라고 합니다. 

그러나 설교가 변질되고 타협하는 것은 아닌가 괴롭습니다. 반면에 친절하게 이야기해주고, 기도해 준다면 많이 고마워합니다. 반응은 좋은데 양심은 괴롭습니다. 듣기는 싫지만, 유익이 되는 것이라면 말하는 것이 참된 목자인데 삯군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괴로움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건강을 주시면, 그 은혜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죽을병에 걸렸다가 살림을 받아야 비로소 감사를 합니다. 지혜는 사전 경고와 말씀 앞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작은 사인을 주실 때, 헌신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경고 사인에 깨닫고, 어리석은 사람은 망한 이후에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