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Photo : 기독일보)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바른 정의들이 손실되는 일들이 가속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론의 흐름에 의해 본질이 쉬 변화되어 그것이 마치 오랜 전통 속에서 계승되어 온 진리로 호도되는 블버리즘(Bulverism)의 성향이 두드러지게 보인단 말입니다.

이런 가운데 오늘날 기독교 신학의 핵심이고 출발점이 되는 삼위일체론에 대한 본질을 마음 중심에 깊이 담아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서 특히 우리의 예배에서 끊임없이 고백 되어야 하고 우리가 드리는 찬양 가운데 이 삼위일체를 경배하는 찬송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인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뿌리요 본질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그의 제자들과 속 사도들이 드디어 예수님을 따르던 펜(fan)에서 진정한 제자들로 변화된 후 그들이 목숨을 던지며 삼위일체 복음을 확장해 가던 가운데 기독교에 대한 로마의 핍박이 구체화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불길은 AD67년 로마의 네로 황제(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AD 36-68)로부터 시작되어 AD 313년 밀란칙령(Edict of Mila)에 이르기 까지 무려 246년 동안이나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로마종교나, 영지주의(Gnosticism) 등의 영향으로 삼위일체론의 본질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초기 기독교 성직자 중 한 명인 아리우스(Arius, 250/256 – 336년)가 중심이 된 아리우스파에 의해 삼위일체론은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 걷잡을 수 없이 변질되어 결국 삼위에 대한 부정을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로마의 핍박이 종식된 후 첫 종교회의인 니케아 공의회 (First Council of Nicaea, 325년)에서 대두된 가장 큰 논쟁은 하나님 아버지의 유일한 신성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사건이 가장 큰 화두였고 그것이 결국 당시 알렉산드라아의 대주교였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373)와 그를 추종하던 세력에 의해 삼위일체론을 정론화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논쟁과 정통 수립 과정은 신학적 논쟁과 함께 그리스도인의 예배와 그 안에서 드리는 찬양에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4세기 이후 교회들에서는 삼위일체 영광송(Trinitarian Doxology)을 찬양하는 일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삼위일체 영광송에 관한 곡 중 최근에 조성원 작곡가가 삼위일체를 찬양하는 “축복” 의 찬양을 보며 필자는 사도바울의 고린도 교회에 보낸 이차 편지의 종결 부분인 고후 13:1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곡에 이 말씀을 대입해 보았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어지러운 소식을 접한 다음 그것을 불식시키고자 디모데 편으로 고린도 전서를 보냈지만 고린도 교회의 상황이 호전되지 못하자 그가 직접 고린도 교회를 방문한 후 에베소로 돌아와 디도 편으로 이 고린도 후서를 써서 보내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모든 편지의 종결에 바로 삼위일체의 정당성을 축복으로 마무리하게 된 것입니다.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이 구절을 해석하며 “하나님이 삼위일체로 존재하심을 나타내며, 구원의 모든 과정에 각 위격이 함께 일하심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합니다.

조성원 작곡가에 의해 만들어진 이 찬양의 내면을 살펴보면 먼저 인트로에 삼위 하나님을 칭송하는 호모포닉 형태의 정석으로 팡파르를 울리게 합니다. 이어 여성의 유니슨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이야기하며 남성의 유니슨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심을 드러냅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복을 주시고 지키심을 호모포닉 형태로 표현합니다. 마지막으로 후렴부를 조성하여 세 번에 걸쳐 오늘 본문에 비추는 모습처럼 삼위 하나님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심의 축복을 선포합니다. 마지막 15마디의 코다를 사용하여 길게 “아멘” 텍스트를 가지고 화성적 아름다움을 펼치며 우리의 고백의 진실성을 담게 하는 찬양이 되게 합니다.

2025년 한 해를 시작하며 올 한 해를 우리의 조건과 신분이 어떻든 아무 상관 없이 그저 주깨하듯 겸손함을 갖고 삼위 하나님을 축복하는 찬양을 드리는 열심을 품어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의 바른 신앙을 고백하고 다짐해야 합니다. 이것은 절대 흔들릴 수 없으며 흔들려서는 안 되는 본질입니다. 이 안에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에 엥커(닻, anchor) 가 되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삶“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세상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가 그의 책 “영광의 무게” 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두더지는 땅을 파고 수탁은 울어야 한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한 해 동안 우리의 분명한 목적 즉 삼위 하나님을 송축하며 하나님을 닮아 그 성품인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어 열심히 일하며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