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Photo : 기독일보)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우리의 찬송가 가운데 “예수 사랑하심 (Jesus Loves Me)”찬양은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어린이들의 찬송가입니다. 이 찬양을 기억하면 필자가 어린 시절 겪었던 추억이 하나 떠오릅니다. 1970년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해 5월의 마지막 주 정도로 어렴 풋이 기억 합니다. 필자가 주일학교를 간다고 나서서는 교회에 가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공놀이와 감자 서리를 해서 구워 먹었던 그날, 제 평생에 저의 엄마로부터 가장 큰 꾸지람과 회초리로 매를 맞으며 그날 밤, 엄마가 주신 벌로 저는 이 찬송을 목 놓아 불러야 했던 추억이 있는 찬송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신앙에 힘입어 모태 신앙으로 어러셔 부터 주일을 성수하는것이 철칙이었던 필자는 단짝이었던 친구가 몇 주 전부터 계획한 이 공놀이와 감자 서리 모임인 이날 꼭 함께가자 라는 그 제안을 뿌리치지 못하고 함께 놀러 가게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감자 서리를 해서 배불리 먹고 마음 한편에는 큰 두려움을 머금은 채 집으로 들어온 그날 필자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필자가 교회를 가지 않았던 사실을 알았던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으로 갑자기 변신해 계신 모습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필자에게 “어디 다녀왔니” 딱 한 마디만 묻고 교회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곧바로 바지 종아리를 올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이 하나님께 천벌을 받을 놈아” 라고 언성을 높이시며 무자비하게 종아리에 피멍이 들게 회초리를 내리 치셨습니다. 그리곤 두 가지 벌을 더 주셨습니다. 하나는 반성문을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네가 가장 즐겨 부르는 찬송가를 찾아 10번 부르고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반성문을 쓰는 가운데 필자의 머리에 가장 떠올랐던 찬송은 “예수 사랑하심은” 이 찬양이었기에 그날 밤 필자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이 찬송을 불러야 했던 아련한 추억이 있는 찬송가입니다.

당시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자식으로 아셨던 엄마가 필자에게 그 무서운 채찍과 함께 당근을 주려고 하셨던 현숙한 어머니로 기억됩니다. 이 찬송가 “예수 사랑하심은” 의 가사는 안나 바틀렛 워너(Anna Bartlett Warner, 1827-1915)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안나와 그의 언니 수잔(Susan Warner, 1819–1885)은 19세기 중후반에 활동했던 소설 작가들입니다. 안나는 당시 에이미 로스롭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녀는 “로빈슨 크루소의 농장 (Robinson Crusoe’s Farmyard), “달러와 센트 Dollars and Cents”, “웨스트포인트 색채들 In West Point Colors”, 등 31편의 소설을 썼습니다. 두 자매는 106권의 소설과 동화책을 출간했으며, 그 중 헤이즐 Wych Hazel”, “러더포드 씨의 아이들Mr. Rutherford’s Children”, “샤테무크의 언덕 The Hills of the Shatemuc”등 18권은 함께 집필하기도 했습니다.안나는 1858년 “ 전투자들의 찬송가, Hymns of the Church Militant)와 1869년 “나그네 찬송가 Wayfaring Hymns)라는 두 권의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찬송가의 제목 “예수 사랑 하심은”이라는 말은 그녀의 언니가 1860년 써서 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소설 “말과 인장, Say and Seal”.에 처음 등장합니다. 이 소설에서 주일학교 교사인 린든(Mr. Linden) 씨가 그의 제자 조니 팩스(Johnny Fax)를 위로합니다. 죽어가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이 말을 하는 장면을 보고 안나가 그것을 발췌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그녀는 성경 고전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라는 말씀을 적용하여 이 찬송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저자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권면하는 최종적 교훈입니다. 즉 성도들은 자기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어 성도들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이고,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어 사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기 몸을 타락시키거나 함부로 사용해서는 않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시를 가지고 1862년 윌리엄 배첼더 브래드버리(William Batchelder Bradbury, 1816-1868)가 후렴구에 “예,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시네,“를 더해 가사에 선율을 붙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전 세계 교회에서 어린이 찬송가 중 가장 인기 있는 찬송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

영원히 죽을수 밖에 없는 우리를 피로 값 주어 사시고 구원해 내신 그리스도의 은혜, 그리고 놀라운 하나님 사랑 이것이 명확하다면 오늘날 우리의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핵심, 중심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내야 합니다. 켈빈 ( J. Calvin, 1509-1564) 선생님은 오늘 말씀과 연결된 본 서신 1:29 절을 주석하시면서 “우리는 자신의 영광을 버리지 않는 한 진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 누구든지 자신을 자랑하는 자는 실로 하나님을 거슬러 자랑하는 셈이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풍요 속에 빈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온 세상은 현대문명이 주는 이기들이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명품들이라 자랑하며 자신들을 드러냅니다. 이에따라 온갖 편리함이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고 있는듯 한데, 왠지 마음 한켠에는 더 큰 공허함이 우리의 마음을 짖누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때, 우리의 이 공허함을 메꾸어 줄 수 있는 것은 나의 노력과 자랑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은혜,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바로 깨닫게 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은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분이 사랑하시기 때문이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사실답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함과 순수함을 지닌 어린아이와 같은 동심의 마음을 가진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이 글을 마치며 동심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 단순하게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순수한 마음으로 이 찬양을 불렀던 70년대 오월의 마지막 주일 저녁을 그리워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