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진 연구교수
정교진 박사(서울평양뉴스 북한분석실장)

'민족자결주의' 탄생 배경

대체로 우리는 독립선언의 시발점을 윌슨(Thomas Woodrow Wilson 미국 제28대 대통령, 1913-1921년 재임)의 민족자결주의원칙(1918.1)에서 찾는다. 물론, 맞다. 하지만 윌슨이 이 선언을 한 배경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고 어찌 보면, 더 중요하고 시사점도 더 크다 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과 프랑스는 사이크스-피코 비밀협정(1916.5)을 체결한다. 핵심안은 프랑스가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북부를 장악하고 영국이 팔레스타인, 요르단, 이라크 남부를 장악한다는 내용이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17년에는 영국정부가 벨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 11.2)을 하게 되는데,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을 지원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동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윌슨은 영국, 프랑스와 임시동맹을 포기하고 비밀리에 분쟁지역(팔레스타인, 아랍)에 사람을 파견하여 그곳 지역주민들의 증언을 듣게 하고 보고하게 한다. 그리고, 이 보고를 바탕으로 민족자결과 민족독립에 대한 '민족자결주의원칙'을 수립하고 제14개조 원칙에 포함시켜 발표를 한 것이다. 이처럼, 민족자결주의 탄생은 피지배 식민지인들의 탄원과 호소를 통해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반식민주의'를 외쳤던 중동지역 선교공동체

그런데, 피지배 식민지인들의 독립의식, 정신을 전달한 이들이 바로 미국 선교사들이었다는 점이다. 1890년대 중반, 터키인들이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을 살해한다는 소식은 미국교회들에게 큰 경종을 울렸고 미국선교회들은 이 지역을 향해 선교사들을 파송하기 시작하였다.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이들 선교사 자녀들은 아랍문화경험 및 현지인들과의 공감대 형성을 하고 있었기에 현지(중동지역)에서 미국정부를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현지인들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미국당국에 전달하는 역할도 기꺼이 감당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1917년 벨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 11.2)에서 촉발된 제국주의성향의 시오니즘에 대해 반식민주의 입장에서 맞서게 되었다. 벨푸어 선언은 영국 정부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을 지원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동의한다는 내용이다. 이후 이 선언은 1922년 국제연맹의 승인을 받은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 통치 안에 포함되었고 이런 측면에서 아랍인들은 시오니즘을 '제국주의' 성격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랍지역의 미국 선교공동체들은 기꺼이 이들의 대변자가 되고 친구가 되어주었다.

'친조선정책'으로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던 미국 선교사들 

구한말, 일제치하에 이 땅에 왔던 미국의 선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을 포함한 서구열강들의 동아시아 전략차원에서구한말 조선에 대한 선교가 시작되었지만, 당시 선교사들은 헌신적 선교마인드로 접근하였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존중하고 수용하면서 선교사역 전개하였다. 또한, 대한제국이 명운을 다할 때, 반식민주의(친조선정책)입장을 견지하며 당시, 미국의 대한 정책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히 냈었다. 그 중 대표적 인물이 알렌(Horace Newton Allen, 1884년 입국)선교사이다. 알렌은 주한미국공사관으로 일하면서 미국의 친일정책(일본이 미국을 대신하여 러시아의 남진을 막아줌)을 비판하며 미국에 가서 루즈벨트 대통령과 논쟁(1903.9)을 벌였고 거부당하자 미국언론에 조선의 입장을 강력하게 전달하였다.

미국과 일본의 카쓰라-태프트밀약(1905.7) 이후에도 다수의 선교사들은 친조선정책(반식민주의) 입장을 견지하며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함께 일제에 맞서 저항하였고 미국사회에 조선의 독립의지를 전달하였던 것이다. 프랭크 윌리엄스 선교사는 한일합방 이전, 선교(1906년)를 와서 자주독립과 다음세대 교육에 열의를 다하였고, 공주 영명학교 설립하였는데, 이후 충청지역의 3.1운동은 이 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주도했다. 조병옥, 유관순이 이 학교 출신이었다. 윌리엄스 선교사는 광복 후 미군정 농업정책 고문관으로 다시 한국에 입국, 우리나라의 교육과 농업 발전 및 정부수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3·1절을 보내며, 그 고마움을 기억하자

3·1절을 보내며, 이분들의 고마움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라 잃은 슬픔에 잠긴 조선인들에게 독립의식, 독립정신을 함양시켜주고 미 당국에 조선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고 직접 미국사회에 조선의 독립의지를 전달했던 그들의 뜨거운 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각 피지배식민지에서 미국 선교사들이 뿌려놓은 토양위에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원칙이 선언되었다는 것도 상기하면 좋겠다.

우리가 6·25를 기념하면서, 목숨바쳐 싸워준 혈맹국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처럼, 이번 3.1절을 맞아서는 울고있는 조선인들의 친구가 기꺼이 되어주었던 미국 선교사님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교진 박사(서울평양뉴스 북한분석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