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LA 한인 타운에서 오랜 친구를 만났습니다. 92년에 만나고 처음 만나는 것이었으니 얼추 28년만이었습니다. 참 많이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 켠으론 마음이 그리 편치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얼굴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밝고 유쾌했던 녀석의 얼굴은 온데 간데 없고, 삶에 지친 모습만 역력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친구의 소개로 저희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주 막역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서로 죽이 맞는 편이었기 때문입니다. 동네는 달랐지만 자주 만나는 편이었는데 특히 일요일이면, 동대문 실내 스케이트장에서 함께 스케이트를 탔습니다. 당시 한참 겉멋이 들었던 저희는 일요일마다 함께 스케이트를 타고, 끝나면 스케이트장 2층에 있었던 '준'이란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습니다.
잠깐이었지만, 녀석 덕분에 교회도 나갈 수 있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던 녀석은, 당시 불교도였던 저를 전도할 요량이었는지 자기 교회에서 만나 스케이트장으로 갈 것을 제의했고 저도 웬일인지 그렇게 하자고 해서, 우리는 매주 그 녀석이 다니던 영락교회에서 그야말로 예배를 보고(?) 교회내 '베데스다'란 빵 집에서 점심을 때운 후에 스케이트장을 가곤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녀석은 그렇게 해서라도 당시 방황하고 있었던 저를 붙잡아 주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녀석이 지금은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습니다. 믿음도 믿음이지만, 도박으로 인해 녀석의 삶이 많이 피폐해졌기 때문입니다. 30년이 넘었다고 했습니다. 회개하려고 했지만 모두 헛수고였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좋아졌다 싶으면 또 넘어져 있고, 이제는 잊어버렸다고 생각하면 다시 그 자리에 가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도박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도박 뒤에 있는 무언가가 자신을 얽어 매고 있는 것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친구에게 회개하자고 했습니다. 도박이라는 '행위'를 끊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돈에 관해 뿌리 깊은 우상 숭배적 사고로부터 돌이키자고 했습니다. 아마도 친구는 돈을 잃고 삶이 망가질 때마다 자신이 미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도박을 했던 자신의 행위를 고쳐보려고 엄청 애를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것은 회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회개라기보다, 도박의 결과로 망가져버린 자신의 삶을 후회했던 것입니다. 참된 회개는, 도박의 결과를 마음 아파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얼마나 돈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그것을 의지하며 살고 있는지, 그래서 땀 흘리지 않고 많은 돈을 한꺼번에 얻게 될 때 얼마나 그것에 열광하는지...그런 우상 숭배적인 자신의 모습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녀석과 헤어지면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녀석을 통해 방황하던 저를 도와주셨던 것처럼 이번엔 저를 통해 저 친구를 인도해 주십시오..." 갑자기 성경 한 구절이 떠 올랐습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사실 이 구절은, 먼저 된 사람들이 모두 나중 될 것을 말씀하는 구절이 아닙니다. 먼저 된 것도 나중 된 것도 모두 은혜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놓치면 먼저 된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나중 된 사람들입니다. 그 은혜를 귀히 여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