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더럴웨이중앙장로교회 장홍석 목사
훼더럴웨이중앙장로교회 장홍석 목사

북한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에도 풀이 난다." 사람들이 흔히 지성이면 감천이라 말하는 것처럼, 정성을 다하면 어떤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심청이가 아버지를 향한 지극한 마음을 품어 마침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것처럼, 우리가 어떤 것을 향해 간절한 마음을 품으면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원인이 철저하게 인간에게 있고 하나님은 단순히 인간의 행위에 따라 반응하시는 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관하여 무지하신 분이고, 인생들이 지극한 정성을 보일 때야 비로소 반응하며 움직이시는 그런 분일까요?

성경에 보면 지성이면 감천으로 보이는 일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히스기야 왕의 기도입니다. 왕하 20:2 이하에 보시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이사야를 통해 이제 곧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들은 히스기야는 오직 벽을 바라보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만을 구했다는 말씀입니다. 심히 통곡했다고 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지성으로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15년을 연장시켜 주십니다. 마치, 히스기야의 기도가 하늘의 보좌를 흔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바꾼 것처럼 보이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라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전지하셔서 당신의 뜻을 바꾸실 필요가 없는 주권적인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대상 28:9은,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라고 했고 삼상 15:29은,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또 모든 것이 그분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바꾸실 일이 전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빌 2:13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당신의 뜻을 두신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소원하게 하신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기도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성으로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지성이(至誠) 우리로 주님의 거룩한 나라를 구하게 하신 것입니다. 감인(感人)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예수님 기도처럼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고, 그래서 기도는 언제나 간절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 아시는데 일일이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하는 것은 믿음으로 가장한 불신앙의 마음인 것을 기억하며, 주님의 옷 자락이라도 만지기를 원했던 혈루증 앓던 여인의 마음으로 주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성이면 감천이 아니라, 지성이면 감인입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