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Photo : )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그 무엇보다 '가정과 가족'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가족이 있기에 혼자가 아니다.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 돌아갈 곳이 있다.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가? 가정의 안정과 평안은 사회생활의 에너지원이다. 그렇기에 가족이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가족과 교회라는 두 기관을 세우셨다. 이 둘은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신 신(神)적 기관이다. 가정과 교회는 정서적 보금자리이고, 영혼의 안식처이다. 하나님은 가정과 교회가 이 땅에 천국의 모델하우스가 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쉼과 안식처'라기보다 '상처와 폭력의 장소'로 변했다. 가슴 아픈 가족 드라마 한 편을 보자.

2003년 2월 23일 새벽, 어느 마을 입구 쪽 도로에서 당시 54세인 남성이 1톤 뺑소니 트럭에 치여 숨졌다. 피해자의 아내는 평소 남편에게 맞고 살았다. 참다 못한 아내는 자기 여동생에게 알렸다. 그리고 수 차례 '남편을 죽여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여동생은 오래 알고 지낸 남자에게 이를 털어놨다. 그 남자는 중학교 동창인 또 다른 남성에게 '보험금 일부를 주겠다'고 약속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해 죽여 달라'고 요청했다. 청탁을 받은 사람은 범행을 위해 "농사를 배우고 싶다"며 미리 피해자에게 접근해 안면을 익혔다.

범행 전날 저녁에 피해자를 불러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새벽 1시 40분쯤 피해자를 마을 입구에 내려 주었다. 잠시 뒤 자신이 몰던 트럭으로 피해자를 치고 달아났다. 남편이 사망한 후 아내는 미리 가입한 보험사 3곳에서 5억 2,000만 원을 받았다. 그 중 4,500만 원을 청부 살해업자에게 줬다.

이 사건은 뺑소니 범인을 잡지 못한 채 종료되었다. 그런데 2015년 11월, 공범 중 한 명이 이 사건을 우연히 털어놓게 되었다. 이를 들은 시민이 금융감독원에 제보했다. 공소시효가 끝났지만 경찰은 수사에 재착수했다. 끈질긴 추적 끝에 13년 만에 4명 모두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드라마 같은 일'이 실제로 우리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가족을 과연 가족이라 해야 하는가? 그런데 불행하게도 '가슴 아픈 드라마'를 쓰고 있는 가족들이 많다. 가정뿐 아니라 '가슴 아픈 드라마'를 쓰고 있는 교회들도 적지 않다. 가정이나 교회는 이제부터라도 '가슴 아픈 드라마'를 소각하고, '새로운 감동의 드라마'를 써야 한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하셨다(마 12:50). 예수님은 '혈통적인 가족'을 넘어 '영적인 가족'을 세우셨다. 하나님나라의 시민들이 바로 하나님의 가족이다. 그래서 교회는 '영적인 가족'이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었다'고 선언한다(엡 2:18). 십자가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혈통적이고 인위적인 담을 허물고, '하나'가 되게 했다. 성도나 교회는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하나의 '구속 공동체'가 되었다(19). 성도는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니다. 동일한 '하나님나라의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다. '권속'은 '가족, 식구'를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과 차별 없이 형제자매가 되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맺어진 '대가족'이다. 그래서 성도들은 '가정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가정'을 만들어가야 한다.

믿음으로 세워진 가정이나 교회는 더 이상 '가슴 아픈 드라마'를 쓰지 말고, '새로운 드라마'를 연출해야 한다. 어느 부부가 써가는 감동 드라마 한 편을 감상해 보자.

어느 아내가 저녁상을 물리고 설거지를 하다가 느닷없이 '옷 이야기'를 꺼냈다."여보, 오늘 백화점에서 옷을 하나 봐둔 게 있는데 참 맘에 드는 거 있지..." "..."

"정말 괜찮더라. 할인이 내일까진데..."  말끝을 흐리는 아내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고맙게도 지금까지 아내는 쥐꼬리 만한 월급으로 알뜰하게 살림을 잘 꾸려 왔다.

'힘들게 야근까지 해가며 애를 쓰는 남편 생각을 한다면, 철없이 백화점 옷 얘기를 저렇게 해도 되는 건지.' 생각할수록 남편은 점점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내는 설거지를 끝내고 TV 앞에 앉아서도 멈추질 않았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안 되겠지?"

'이 여자가 정말...' 계속되는 옷 타령에 남편은 결국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다."지금 우리가 백화점 옷을 사 입을 때야?" 순간 아내는 흠칫 놀라 아무 대꾸도 없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조금 민망해진 남편은 더 이상 TV 앞에 앉아있기가 불편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만한 일로 소리를 지르다니...' 남편이 되어 가지고, 겨우 옷 한 벌 때문에 아내에게 화를 내었다는 게 창피했다. 그러고 보니 몇 년째 변변한 옷 한 벌 못 사 입고, 적은 월급을 쪼개 적금이랑 주택부금까지 붓고 있는 아내가 아니던가.

잠자리에 들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내가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걱정이 돼 거실로 나가 보았다. 아내는 소파에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울다 잤는지 눈이 부어 있었다. 다음 날 아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침상을 차리고 있었다. 남편은 자근자근 이야기를 못하는 성격이라, 그런 아내를 보고도 따뜻한 말 한 마디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저 현관문을 나서면서 한 마디 툭 던졌다. "그 옷, 그렇게 맘에 들면 사!" 그러면서 속으로 말했다. '며칠 더 야근하지 뭐.'  

그날 저녁 여느 때와 같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을 들어섰다. 그런데 아내가 현관 앞까지 뛰어와 호들갑을 떨었다."여보, 빨리 들어와 봐요." "왜, 왜 이래?"  아내는 남편의 팔을 잡아끌고 방으로 데려가더니, 부랴부랴 남편의 외투를 벗겼다. 그리고는 쇼핑백에서 옷을 꺼내 남편 뒤로 가서 팔을 끼웠다.

"어머, 딱 맞네! 색깔도 딱 맞고." "..." "역시 우리 신랑, 옷걸이 하나는 죽인다." "당신. 정말..." "당신 봄 자켓 벌써 몇 년째잖아." 아내는 이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돌리더니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남편은 부끄러운 마음에 탄식한다. '언제나 나는 철이 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