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물질은 독이다

 

▲조덕영 박사.
(Photo : ) ▲조덕영 박사.

종교개혁 시대에 자연 치유를 강조하며 마치 의학의 개혁자처럼 살던 의사 파라켈수스(Paracelsus, 1493-1541)는 "모든 물질은 독극물이다. 독극물이 아닌 물질은 없다. 단지 독극물인지 아닌지는 투여량으로 결정될 뿐이다"라고 했다. 사람의 생명을 치료하는 약에 있어 투여량을 정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독성이다. 하물며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살균제는 바로 농약이다. 생명을 죽이는 독약인 것이다. 이 살균제를 방치했던 우리 사회는, 지금 심각한 대가 앞에 앞으로 진행될 참사가 어디에까지 이를 것인지 갈피조차 잡지를 못하고 있다. 약도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하고, 농약을 인간에게 직접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 중 상식이다. 필자의 아내도 과거 여러 번 가습기를 구입하자고 내게 권유한 적이 있다. 물론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하도 여러 번 권유를 받고 그때마다 단호하게 거절하였기에, 아내는 아마 대단히 섭섭하였을 것이다. 필자는 독성학을 배우고 농약학을 배운 목사로서, 아무리 아내의 간곡한 부탁이라도 차마 동의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의 3가구 중 1가구가 가습기를 사용한 적이 있다는 통계가 있다. 가습기를 사용하는 가정은 대개 노약자나 가정 및 가정 살림에 세심한 가장 혹은 주부가 있는 곳이었다. 그 세심한 마음에 가습기에 살균제를 덤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

 

국내에서만 사용되는 합성화학물질은 3만 7천여 종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이 중 국가가 통제하는 물질은 겨우 600여 종에 불과한 실정이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가습기 살균제처럼 물에 희석하는 형태로 해당 화학물질 사용을 허가한 전례가 없다. 유럽 화학국도 "들이마시면 치명적인 위험이 있는 물질"을 결코 함부로 허용하고 있지 않다. 유럽은 관련 제품을 출시할 때 화학물질 안전관리제도에 따라 제조사가 스스로 제품의 안전성을 사전에 증빙해야 한다. 국내 한 가전회사가 '은나노 세탁기'를 유럽 시장에 팔려고 했다가, 유럽연합(EU)이 나서 살균된 물이 강으로 흘러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와 생태계에는 문제가 없는지 관련 자료를 내놓으라고 해서 포기했던 것도 그들의 꼼꼼함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주신 천연독도 조심해야 하지만, 이들 인공화학합성품들은 단순하지가 않다. 하나님께서 주신 천연물질과 달리, 이들 화학합성품들에는 급성독뿐 아니라 만성독성도 있다.

노약자들을 향한 마케팅

농약인 살균제를 사용했다는 것도 충격적인데, 어떻게 농약을 주로 노약자들이 사용하는 가습기에 쓸 생각을 했을까? 정말 충격이다. 특별히 가습기 사용의 주고객은 중증환자와 임산부와 산모와 신생아와 영아(嬰兒)들이었다. 임산부는 연고 하나도 의사의 처방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 바로 임산부 자신에게는 큰 문제가 없어도 태아에 이상을 발생케 만드는 최기형성효과(teratogenic effect, 催奇形性) 때문이다. 1960년대 임산부 우울증과 입덧 완화제로 개발되었다가 독일과 영국, 미국 등에서 수천 명의 사지(四肢)기형아를 출산시킨 탈리도마이드나 여드름 치료제인 이소트레티노인 등은 대표적인 최기형성약물이었다. 즉 임산부 관련 제품은 독성 시험 결과나 법규와 관계없이 살균제라는 농약은 절대로 임산부 근처에는 두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또한 가습기를 주로 노약자, 특히 임산부들이 사용할 거라는 점을 알면서도, 시판을 과감히 시도한 업체나 법률 위반사항이 아니라고 방치한 관련 당국의 처사에, 우리 사회의 구조적 탐욕과 안일함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모두의 책임

환경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정말 충격을 넘어 참담할 정도다. 가습기 살균제에 쓰인 폴리헥사메틸레구아니딘(PHMG)이 유해물질이라는 것은 이미 미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나 관련자 누구도 확인을 안 한 것이다. 이미 오래 전 미국에서는 수증기 휘발성 가습기에 적용할 수 없는 물질로 판명된 물질(살균독)을 법망의 미비를 파고들어 일개 영리회사가 상품화할 때, 왜 우리의 환경학자, 시민단체, 독성학 전문가, 정부 관련 기관은 방치하였는가. 과연 한 사람의 책임에 불과한가?

과거 김대중 정부는 얼마나 환경에 무심한지 평생 배우로 열심히 살아온 한 여배우를 환경부장관으로 세워 큰 망신을 당했는가 하면, 노무현 정부는 환경단체들에 의해 '역대 환경 문제에 가장 무지한 정부'로 선정되기도 했다. 녹색성장을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대형차를 사는 이들에게 보조금을 많이 주고(2009년 세계 경제 불황을 핑계로) 소형차를 사면 보조금을 깎아 국가가 나서서 친절하게 과소비를 권장하는 참 이상한 나라를 만들었다. 소형차에 많은 혜택을 주고 대형차에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독일 등 유럽의 차량 보조금 정책과 완전 정반대였다. 경제 위기에 과소비를 조장한 것이다. 자동변속기 차량은 본래 장애인들을 배려하고자 개발됐다. 그런데 지난 2007년 국내에서 시판된 승용차 중 자동변속기 차량은 이미 95.6%(71만 7970대 중 68만 6582대)가 되었다. 대형차 중 수동은 1%도 안 된다. 정말 놀랍다. 우리나라에 그렇게 장애인이 많았던가? 정부와 환경부는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과연 무엇을 한 것일까? 수동변속기 차량만 타던 필자는 이제 중고차 사기도 어려워졌다. 필자는 류머티즘을 앓아 왼쪽 무릎이 찐빵처럼 팽창한 적이 있어 자동변속기 차량을 타야 할 처지이나, 수동변속기 차량을 타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 늘 수동변속기 차량을 타 왔다. 비록 왼쪽 무릎이 좋지 않으나 그래도 하나님께서 주신 양발을 다 사용하는 게 한쪽만 사용하는 자동변속기보다 편하기 때문이다. 수동변속기 차량은 동급 자동변속기 차량보다 평균 연비도 좋다. 수동변속기 차량의 배출가스 포함 이산화탄소 배출량(km당 144.1g)은 자동변속기 차량(192.7g)의 74.8%에 불과하다. 수동변속기 차량은 자동변속기 차량보다 가격도 상당히(10% 이상) 저렴하고 수리비용도 적다. 요즘 운전자들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 급발진 사고도 자동변속기 이야기다. 수동변속기 차량을 사면 1석 4조인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상한 정책으로 인해, 중고차를 폐차한 필자도 이제 어쩔 수없이 자동의 가족 차량에 동승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수동 중고차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디젤차를 규제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 정부는 한참 뒤지고 말았다. 지난 정부들이 얼마나 환경 문제를 함부로 다루었는지 보여 주는 보기들이다. 이 같이 무지한 환경 정책은 이 정부 들어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 메르스 대소동, 상시적인 초미세먼지 대란 등의 대가로 나타나고 있다. 세상과 교회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남탓만 할 자격이 과연 있는가?

기독교인들의 세상 인식: 망할 세상이니 방치? 하나님께서 주신 섭리의 귀한 장소!

이런 가운데 기독교인들의 세상 인식은 정말 한심하다. 한심하다 못해 오히려 세상만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과소비를 방치하다 못해 축복을 핑계 삼아 조장할 정도다. 기독 환경 모임조차 호텔에서 주로 열린다. 그저 망할 세상이니 방치해야 할까? 아니다. 사람은 타락하여 비록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으나, 여전히 이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의 땅이다. 우리 인간이 마음대로 더럽혀도 되는 장소가 아니다. 이 땅을 더럽히고 저 세상 낙원으로 갈 수 있다고 보는가? 망할 세상이니 방치해도 좋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다. 당신 가족이나 자녀나 후손들이나 성도가 신음해도 망할 세상이니 상관없단 말인가? 이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주신 섭리의 귀한 장소임을 잊으면 안 된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세상이 보존되도록 협력하는 것은 거듭난 인간이 해야 할 일이다. 세상에 방치하고 맡겨둘 일이 아니다.

회복과 샬롬, 어떻게 할 것인가

성경이 세상에 대해 일부 부정적인 종말론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이 세상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지닌 탐욕의 입장에서 그렇다. 교회는 이제 탐욕을 복이라고 설교하지 말아야 한다. '금수저'와 '갑질할 수 있는 자리'로 가는 것이 출세이고 최고라고, '육신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복이라고 설교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에너지 과소비를 조장하는 이것들이야말로 세상 오염과 환경 파괴의 주범들이다.

세상을 거스르신 예수님처럼 세상을 거슬러 가야 한다. 예수님의 5대 무기는 뜻밖에도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며 멸시받고 없는 것(자)들이었다(고전 1:25-26). 예수는 '약한 것이 무기'였고 늘 약자의 편이었다. 환경 문제에도 이 같은 영적 원리는 적용된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여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은, 이 세상 복이 아니라 유혹(참사)의 도구일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성경은 모든 발전을 무조건 죄악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개발이 약자들을 억압하고 약자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환경에 큰 참사를 가져다 주지 않는지 늘 주위를 살펴야 하고, 교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지속 가능한 개발은 과연 무엇일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언약과 땅과 관계성과 공법과 정의와 사랑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조국 교회는 이제 판타지 같은 데 머무는 단순한 믿음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성경은 "젖이나 먹고, 단단한 것을 못 먹는 자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라 했다(히 5:12-14). 가습기 참사에 눈물을 흘리며,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동굴 속에서 나와 지혜에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전 4:20).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바로 보는 길이다(롬 11:22). 조국 교회여, 하나님의 동굴 세상에서 하나님의 창조 세상으로 이제 제발 나오라!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www.kictnet.net)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글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퍼온 것이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