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이란 이미지를 생각할 때 항상 패기와 용기, 동시에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필자가 더 관심과 기대가 되는 층은 바로 중국의 미래가 되기도 하고 4~7년이라는 시간 뒤에는 바로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사회의 중추적 일원이 될, 중국 캠퍼스의 대학생들이다. 중국 통계국에 따르면, 현재(2014년 기준) 중국 대학교의 수는 2,529개, 재학생 수는 2,548만 명, 한 해 졸업생 수는 659만 명이다. 이를 근거로 볼 때, 평균 한 대학교에 만 명 이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물밀듯 들어온 중국 선교사들은 신학교, 교회 개척, 캠퍼스 사역, 제자훈련 등 다양한 모양으로 중국교회를 섬겨 왔다. 특히 파송되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의 학력이 대졸 이상이고, 또한 처음 선교사가 중국에 와서 언어를 배울 때 많은 경우 대학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언어를 배워야 했기에, 캠퍼스는 나이 고하를 떠나 우리 중국 선교사들에게 있어 매우 친근하다. 처음 중국어뿐 아니라 중국 문화에 대해 캠퍼스에서 언어 연수를 통해 모두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캠퍼스는 선교지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현장이다. 그런 가운데 초기 언어 연수 시절에 중국 대학생들을 접하면서 그들과 친구가 되어 복음을 전했고, 그 속에서 많은 열매를 얻었던 것이다. 그렇게 일정 기간 언어를 익힌 다음에는 계속 캠퍼스에 남아 학생 사역을 하거나, 혹은 선교사 자신의 부르심과 은사를 따라 지역과 사역 형태를 바꾸며 옮겨 가곤 했다.

지난 2012년에 실시한 '재중 한인 선교사 실태 및 의식 조사'에 따르면, 당시 중국에서의 선교사들의 주요 사역은 제자 훈련(37.16%), 교회 개척(33.11%), 신학교(25%), 대학생 사역(17.23%), 어린이 사역(6.42%), 개발 사역(5.07%), 한국인 사역(4.39%) 등이었다. 이 자료에 의하면 표면적으로는 대학생 사역이 17.23%밖에 되지 않지만, 사실 제자 훈련, 교회 개척도 상당 부분 대학생 사역과 일치한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대학생 사역 자체가 제자 훈련과 교회 개척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대학생 사역을 담당하는 사역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분야가 다 가치가 있지만, 캠퍼스 사역에 많은 분들이 관심과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은 이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한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는 데 있어 대학생들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한 나라의 지식인층이 어떤 사고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인정하는 바와 같이, 한국이 1970~80년대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하고 사회가 변혁되어 가는 부분에 있어 당시의 지식인층, 즉 대학생들의 역할과 변화가 굉장히 중요했다. 그래서 캠퍼스 사역을 지향하는 단체와 개인들은 그러한 젊은이들의 중요성을 알기에 지식인층 사역에 집중하는 것이라 하겠다. 필자는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땅의 대학생들을 섬기면서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중국 사역의 특성상 같은 단체의 사역자들을 제외하곤 다른 캠퍼스 사역자들을 만날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들은, 주로 필자가 있던 지역에서 보고 경험한 부분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

중국의 대학생들. ⓒ중국어문선교회
중국의 대학생들. ⓒ중국어문선교회

 

씨를 뿌렸던 시기, 초기 양육의 기간이었던 어제

필자는 캠퍼스 사역의 지난 15년이 넘는 시간을 어제라 볼 때, 이는 '씨를 뿌리는, 초기 양육의 기간'이었다고 정의하고 싶다. 초기 언어연수 과정 속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대학생들을 접촉하였다. 캠퍼스에서 우연히 알고 자주 만나게 되어 친구를 사귀고, 개인 언어 선생으로 1주일에 2~3번씩 만나 꾸준한 관계를 형성한 후 복음을 전하거나, 한국에 관심이 있어 찾아 온 학생들에게 간단하게 한글을 가르친 것도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었다. 그렇게 성경공부를 시작하며 연결된 몇몇 친구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개척했다.

당시에 아직 설교를 하기에는 언어가 익숙하지 않아, 매번 형제자매들에게 설교 원고를 교정받아가며 메시지를 준비했다. 메시지는 책을 읽는 수준이며, 생각만큼 다양한 표현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속에서도 형제들이 변화되고 자라는 것을 보면서 성령께서 전적으로 하신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사역자가 이것만 강조해서 언어의 진보를 게을리하는 것을 합리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첫 번째 시기를 보내면서 리더들을 세우고, 다시 다른 지역으로 개척을 하러 갔다.

둘째 시기에는 언어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곳은 아는 이가 없는 낯선 지역이었기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심정으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같은 지역의 사역자도 알게 되고, 그들의 도움과 연합은 사역을 하는 내내 큰 힘이 되었다. 새로운 지역에 대한 적응과 더불어 첫째 시기처럼 여러 형태로 친구를 사귀고, 가정을 오픈하면서 교회를 빠르게 개척했다. 교회 운영과 사역은 첫 번째 시기와 비슷했지만, 그 사이 내 자신이 변화하고 성장함에 따라 가르치고 돕는 부분에 있어서도 변화가 많이 있었다. 사역을 하면서 가장 집중했던 것은, 캠퍼스로 나가 복음을 전하는 것과 더불어 교회 안으로 들어온 형제자매들을 견고한 일꾼으로 키워 이들이 스스로 현지 교회를 운영하고 세워 나가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을 섬기는 가운데,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삶을 결단하여 신학을 시작하고 혹은 얼마의 훈련의 과정을 거친 뒤 교회를 전적으로 인도하는 현지인 사역자가 세워지고, 그들 스스로가 지금은 교회를 인도해 가고 있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조금씩 온전한 교회의 모습을 갖추어 가려고 하고 있다. 그렇게 달려온 어제는, 대학 내에 예배 공동체가 형성되고 정착을 위한 씨를 뿌리는 과정이며 기초 양육의 시기였던 것이다. <계속>

이○○ 중국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