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소금은 사람의 일상생활 뿐만 아니라 생명 유지에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다. 고대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교역로가 소금 생산지 중심으로 발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하신 것은,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 소금처럼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소금은 다양한 용도를 지니고 있다. 그 가운데 식생활과 관련된 용도로는 두 가지가 대표적이다. 하나는 음식의 맛을 내는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음식물의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이다.

소금은 조미료 역할을 한다. 소금은 네 가지 기본 맛(단맛, 신맛, 쓴맛, 짠맛) 가운데 짠맛을 대표하는 요소이다. 특히 소금은 모든 음식에서 맛을 더욱 돋우는 구실을 한다. 그래서 음식을 요리할 때 조미하는 것을 소금 맛을 본다는 의미로 '간 본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들 모두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재료들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어 가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좋은 인재들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재료가 준비되어 있고 또한 훌륭한 요리사가 있다 하더라도, 한 숟가락의 소금이 있어야만 음식의 제맛을 낼 수 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에게 주어진 본질적 사명이다.

소금의 또 다른 기능은 방부제로서의 역할이다.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요즈음은 과학의 발달로 냉장고와 같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고대에는 소금에 절이는 것 외에 별다른 수가 없었다. 예수께서 전도의 중심지로 삼으셨던 가버나움은, 갈릴리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예루살렘이나 로마로 수출했던 곳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당시 가버나움에서 수출했던 생선은 활어가 아니라 소금에 절인 것이었다. 소금에 절이는 것만이 부패를 막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소금은 음식이 썩는 것을 방지하는 일에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소금을 가리켜 '시체 안에서 혼처럼 일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하였다. 죽은 고기를 그대로 두면 상하지만, 소금에 절이면 죽은 것이라도 신선함이 유지되기에 그렇게 이해한 것이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쉽게 부패되고 냄새가 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소량의 소금이라도 꼭 필요한 부분에 뿌려지면, 세상의 부패와 파멸을 얼마든지 방지할 수 있다. 극도로 타락하였던 소돔과 고모라성도 의인 열 명으로 멸망이 유보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의인 열 명은 멸망을 막아 주는 소금이었다.

우리들이 세상 속에서 소금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신 예수께서는, 곧이어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의 가정을 제시하셨다. 그것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경우,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경고하신 것이다.

소금이 그 맛을 잃게 될 경우에 나타날 첫 번째 결과는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곧 맛을 낼 수 있는 원재료의 상실이다. 세상은 나름대로 다른 대안을 마련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어느 종교를 믿든지 상관없이, 성실하게 산다면 모두가 이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만이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들이 맛을 잃으면 다른 소망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멋진 윤리적 규범이 아니라 윤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생명이다. 훌륭한 재료가 아무리 많아도 맛을 내는 것은 소금인데, 그것은 스스로를 녹이는 말없는 희생이 있어야 가능하다.

소금이 맛을 잃게 될 경우에 나타날 두 번째 결과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들 자신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냉소다. 곧 우리들은 아무 쓸데가 없게 되고, 밖에 버려져,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들은 세상에게서 높은 기대감으로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기대감이 클수록 실망감도 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소금의 맛을 잃어버리면, 세상은 그 실망감을 그렇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우리들을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 식으로 살 수 없다. 어떤 경우든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오늘 우리들은 소금의 본래 맛의 상실로 인한 가치관의 혼돈, 그리고 그 결과로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히기 시작하는 어두운 상황의 문턱에 서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그것은 우리가 소금의 맛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하나님의 경고음이기도 하다. 소금의 본래 맛을 되찾는 것, 그것만이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