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흔히들 사회에서 나보다 위에 있는 분의 부인을 만나면 무조건 사모님이라고 부르지요. 사업상, 그리고 부탁을 드려야 할 때도 "사모님!" 하고 예를 갖추어 부르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 목사를 내조하는 '사모'는 그야말로 '천사'여야 합니다. 그 천사의 역할은 정말 고난의 행보이기도 합니다. 강단에서 말씀을 증거하는 목사를 위해 조언할 때, 전적으로 공감을 하거나 이를 수용하는 경우가 극히 드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목사들은 강단 설교와 행동을 고유 권한으로 여겨, 누구의 충고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말씀을 증거하는 목사는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거울 역할을 하는 '사모'의 충고를 청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단의 권위에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목사이기에, 성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모'이자 '부인'의 건의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모'와 전적 신뢰 속에 소통해야 합니다.

'사모'들은 우선 목사인 남편에 대한 신념과 함께, 자신감을 심어 줄 수 있도록 확고하고 단호한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내 남편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를 양육하는 분이므로,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으로 이끌어가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피로하고 괴로워도, 살며시 미소 짓는 그 모습이 바로 '사모'일 것입니다. 사모는 탤런트가 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성도 개개인의 입맛을 맞추는 영양사와 조리사 역할을 감당하고, 성도가 우울해하거나 슬퍼할 때 함께할 수 있는 가슴이 있어야 하며, 소외되고 외롭고 가난한 이들에게 마음으로 다가가는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기쁜 소식에는 함께 즐거워하고, 특히 '사모'에게 닥쳐 온 불행이나 고통은 뒤로 숨겨야 하는 것이 무거운 아픔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사모'는 남편인 목사와 성도, 그리고 이웃들을 함께 섬기며 나누는 성모 마리아가 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사모'의 모습을 보면 그 교회를 알 수 있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만큼 '사모'의 직분은 엄청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목사인 남편을 만나는 바람에 내가 원하는 삶은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는 것 같기도 할 것입니다. 사모라는 '탈'을 쓴 채 살아가다 보면, 많은 세월이 하염없이 지나갑니다. 그 세월 속에서 '사모'라는 고유적인 틀에 갇히고, 인위적이고 극히 자발적이 아닌 긴 터널 같은 삶이 자연스레 몸에 묻어 나옵니다.

'남편과의 결혼이 정녕 이런 것은 아니었는데' 하는 원망과 후회는 더욱 무거운 짐으로 가슴을 철렁하게 합니다. 한 여인으로서 남편을 빼앗긴 듯한 세월을 오늘도 마음으로 위로하며, 다가올 주님의 재림을 위해 인내해 볼 것입니다.

사모는 성도를 45도나 90도에서 바라봐선 안 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180도 혹은 360도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내 안에서 뿜어 나오는 특유의 내음이 아닌, 그리스도의 내음이 내 몸에서 피어나게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늘 주님 곁으로 한 발자국씩 다가가는 삶을 살며, 늘 그분의 그늘 속에 거하는 삶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모'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목사의 아내, 그리고 성도들의 '사모'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연약한 여인이 사모로서 험난한 이 세상을 살아가기는 무척 힘이 부칠 것입니다. 하지만 천사는 그 모든 것을 사랑으로 이겨야 합니다. 사모가 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서원을 했으리라 믿으며, 그 서원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는 아름다운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식구들은 교회 안에서 '사모'에 대해 온전한 신뢰를 보여 줘야 할 것입니다. 편견을 버려야 하고, 따뜻하고도 사랑스러운 격려와 위로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비록 사모의 수고가 이 땅에서는 숨겨진 것처럼 보이지만, 영광의 그 날이 올 때 주님께서는 환한 미소로 그 수고를 드러내며 위로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사모님들의 상급은 실로 크리라 봅니다.

한국교회의 사모님들 화이팅!  면류관의 주인공!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