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릭사이드 교회 김칠곤 목사
(Photo : 기독일보) 크릭사이드 교회 김칠곤 목사

젊은이들과 나이가 들어 자녀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단히 다르다. 그 이유는 세상은 시대마다 사상과 문화의 차이가 있기에 그것을  바라보고 대처하는 관점(觀點)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별히 젊은이와 성인이 되어 자신을 바라보는 나이에서 주어지는 큰 차이점은 시간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젊은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무한대라고 여기고, 그 시간안에 자신이 바라는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여기며 앞으로 달려가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 삶을 되돌아 보는 시기에 사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자신에게 주어질 시간에 대해 한계가 있기에 시간을 잘 사용하는 것을 고민한다. 그래서 자신을 위한 삶의 시간을 배려하고 누군가를 위해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애를 쓰는 것이 젊은이들의 삶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말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나 불혹의 나이를 훨씬 넘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간에 동일한 경험을 하고 살아가는 것은 삶에서 주어지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이 살아 숨쉬는 동안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스트레스의 근원을 4가지라고 이야기한다. 첫번째는 기후, 꽃가루, 소음, 교통과 공기오염과 같은 것인데 이것들은 주변의 환경, 즉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이다. 다음은 사회적인 관계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경제적인 어려움, 내적인 갈등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 때 주어지는 것이다. 세번째는 신체적인 변화나 질병을 통해 주어지는 고통과 마음에 우울증이 자리잡아 괴로워하는 심리적인 스트레스이다. 마지막은 스트레스가 누적이 되어 만성적인 피곤을 느끼며 모든 것이 싫어지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삶에 문제를 무조건 피하려고 한다.

이러한 4가지의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요인들은 인간이 살아 숨쉬는 동안 반복해서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4가지의 요인들은 사람들의 삶에 스트레스를 줄 뿐 아니라 인간의 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질병을 갖게 하는 방아쇠의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인간이 살아가면서 주어지는 모든 스트레스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떤 스트레스는 좋은 것도 있다. 예를 들자면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승진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 그리고 시험을 잘쳐서 합격을 하고 좋은 성적을 얻을 것이라는 긴장감은 미래에 대한 꿈을 갖게 하는 긍정적인 스트레스이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가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이 휠씬 더 많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관계형성에 방해를 주는 원수(evil)의 목적은 스트레스를 통해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사랑하며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너무나도 빈번하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상들이다. 특별히 인간의 원수인 악은 가정을 무너뜨리고 가정의 구성원들간에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받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마음속에 오랫동안 간직하게 한다. 그리고 마음속 한 가운데 쓴 뿌리를 자리잡게 하고 가족의 구성원 안에 미움, 질투와 분노의 증상을 표출하게 한다.

가정에서 구성원들간에 주어진 마음에 쓴 뿌리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자녀들이 부모들 품안에서 자랄 때 받았던 상처와 쓴 뿌리가 상처되기 이전에 청년이 되어 전혀 다른 사람들과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것을 다르게 해석해 본다면 어릴때 부모나 형제로 부터 받았던 스트레스가 마음 속 깊은 곳에 누적이 되어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언젠가 교회의 사역팀들과 아침 묵상을 하는 동안 은퇴를 하신 사역자가 지난 몇달 동안 캐나다에 한 양로원에서 거주하며 마지막 인생을 정리하며 살아가는 누님을 위로하고 그에게 에수님을 영접하도록 하기 위해 석달 동안 방문을 한 것에 대해 나눔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에 하나가 마음속에 깊은 곳에 나를 바라보고 눈가에 눈물을 적시게 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인생의 삶에 80을 넘긴 누님이 아직도 어릴때 자신이 부모로 부터 사랑받지 못한 사랑과 형제간에 사랑하지 못하고 가정이 깨어진 것에 대한 마음속 깊은 곳에 응어리를 가지고 평생을 산 것이다. 그런 누이에게 그의 동생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누이도 지난 날 형제들과 부모에게 받았던 쓴 뿌리를 제거하고 그들을 용서하라고 권고를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 동생은 매일 같이 그 누이가 가지고 있는 아픔을 씻겨 주려고 노력을 해 보았지만 그 누이는 결코 마음을 열지 아니하였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하지도 아니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아픔을 나누시는 분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스트레스가 오래 묶으면 마음 속 깊은 곳에 쓴 뿌리를 가지고 죽을 때까지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쓴 뿌리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가정에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교회에 가면 목사님들이 강대상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에 관해 수도 없이 말을 한다. 그런데 왜 이러한 문제들이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가족과 형제들간에 치유되지 아니하는 문제로 남고, 형제들간에 원수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교회들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여긴다. 만일 천국에 가면 자신의 가족의 구성원도 사랑하지 못하는자가 어떻게 여기에 왔을까? 하나님이 물으신다면 뭐라고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가 과연 무엇이 길래 그것을 땅에서 풀지 못하고 살았을까? 라고 묻는 다면 그 또한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인가? 필자는 만일 하나님이 물어 보신다면 이렇게 답변을 하고 싶다. 예 하나님!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조정(management)해야 하는 지에 대한 방법을 몰랐습니다.", "나는 스트레스의 외적인 요인에만 집중을 했지 그것이 나의 영적인 삶에 얼마나 큰 질병을 가져오는지와 치유를 위해 기도하지 아니했습니다."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가는 데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스트레스가 외부에서 오는 공격으로만 여기지 그것이 내적인 삶에 얼마나 깊은 영향력을 주는지 깊숙히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스트레스를 잘 극복하는 훈련을 하게 된다면 스트레스로 인한 육신과 정신 그리고 영적인 질병은 얼마든지 치유받을 수 있다. 의학적에서는 인간의 뇌에 스트레스의 공격을 받다가 스트레스가 제거 됨과 동시에 아드레날린에서 코디코이드가 분비되어 불안과 근심의 모든 요소를 점진적으로 사라지게 하는 편안함을 가져다 준다고 말을 한다. 이처럼 삶에서 주어지는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통제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원수(evil)의 공략에 넘어지지 않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라 해도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그것을 도구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만성 스트레스로 인해 주어진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쓴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크릭사이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pkim@thecreeksidechurch.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