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란인교회 이만석 목사
한국이란인교회 이만석 목사

이슬람포비아라는 말은 이슬람에 대한 공포증을 말한다. '포비아(phobia)'란 실제로 두려워해야할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일종의 정신적 장애 현상을 가리킬 때 쓰이는 말이다. '이슬람포비아'란 단순히 이슬람을 따르는 무슬림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유 없이 차별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붙여준 신조어이다. 일종의 정신병자 취급을 하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중동문제 분석가로 활동 중인 모르테자 후세인은 "이슬람포비아 현상은 한 때 백인들이 흑인들을 단순히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대우했던 것과 같은 맥락의 신종 인종차별주의"라고 평했다. 한국에서 유명한 이슬람 홍보요원인 한양대 모 교수는 2015년 매스컴과의 인터뷰에서 "기독교가 사랑, 불교가 자비, 유교가 인(仁)을 핵심적인 덕목으로 삼는다면, 이슬람교는 평화와 평등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믿음의 종말"이라는 책을 써서 뉴욕타임즈에 의해 33주 연속 베스트셀러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던 샘 해리스는 이슬람포비아에 대해서 "이 단어는 무슬림들이 세속으로부터 받는 모든 종류의 정당한 비판을 인종차별과 제노포비아로 몰아가려는 홍보전략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2015년 이슬람의 경건한 금식절기인 라마단 30일 동안 일어난 테러를 매일 집계하여 종합한 점수판. 다른 어떤 종교나 조직에서도, 심지어 무슬림 혐오의 형태로도 단 한 건의 테러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평화의 종교'라는 별명을 가진 이슬람의 득점은 독보적이었다.
2015년 이슬람의 경건한 금식절기인 라마단 30일 동안 일어난 테러를 매일 집계하여 종합한 점수판. 다른 어떤 종교나 조직에서도, 심지어 무슬림 혐오의 형태로도 단 한 건의 테러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평화의 종교'라는 별명을 가진 이슬람의 득점은 독보적이었다.

무슬림들은 누구든지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면 매일 일어나는 무슬림들의 테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테러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가리켜 이슬람을 잘 모르는 무식한 광신자들이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어떤 종교나 단체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테러보다 유독 '평화의 종교'라는 별명을 가진 이슬람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테러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극단적 원리주의자들 뿐 아니라 소위 평화를 사랑한다는 온건한 무슬림들까지 이슬람 신자라면 모두가 믿고 따르는 꾸란의 가르침을 보자.

꾸란은 '알라를 위해서 생명과 재산을 바쳐 싸우는 자들이야말로 진정한 무슬림'이라고 정의한다(꾸란49:15), '이교도들과의 싸움은 무슬림들의 의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꾸란2:216), '싸우기를 거부하는 무슬림들을 위선자'라고 칭하고(꾸란3:167) 그런 자들은 '불지옥으로 심판할 것'이라고(꾸란4:145) 경고한다. 이교도들과의 싸움은 무슬림 아닌 사람들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종교가 알라의 이름으로 통일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꾸란8:39)

일반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꾸란의 내용에 관심도 없으며 매일 5번씩 메카를 향해서 꼬박꼬박 기도하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도 무슬림이기 때문에 꾸란대로 실천하는 충성된 동료 무슬림들을 강력하게 비난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때로는 비난하는척하면서 선긋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이는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 하는 면피용일 뿐이다. 그렇게 심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정말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해서 비난할 때는 폭동 수준의 세계적인 시위가 수일씩 계속되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슬람권의 5% 정도만 테러를 저지르는 원리주의자들이고 95%의 무슬림들은 테러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인데, 왜 그들을 테러범들과 동일하게 취급하며 혐오스러워하느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무슬림들 중 원리주의자들의 비중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고 있다. 영국의 '유거브'의 조사에 의하면, 9/11 테러가 발생했던 2001년 자신을 급진주의 무슬림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영국 무슬림들의 15%를 차지했다. 그 다음 해인 2002년에는 25%로 증가했고, 2006년에는 40%로 증가했다고 한다. 여기서 급진주의(Radical)의 판단 기준은 "종교를 위해서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2015년 현재 런던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의 80%가 IS(Islamic State: 수니파이슬람무장단체 이름)를 지지하고 있으며, 프랑스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의 69%가 IS를 지지한다고 한다. 이정도면 이슬람에 대한 공포는 결코 정신병이나 망상이 아니라 발등에 떨어진 불에 대한 반응인 것이다.

급진적인 무슬림들은 이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커져가고 있어 소수라고 할 수도 없지만, 비록 소수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경계해야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의 지시를 따라서 600만 명의 유대인들을 가스 목욕탕에서 살해한 나치 대원들은 소수였으며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이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무관심했다. 사실 현재의 독일인들은 2차 대전 때 조상들이 저지른 잔인한 행위에 전혀 가담한 적이 없기에 책임을 져야할 이유도 없지만, 같은 독일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피해 보상도 하고 기회만 있으면 사과도 하는 것이다.

평화스런 무슬림들이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소수의 원리주의 무슬림들이 저지른 잔인한 테러의 피해자들에게 보상은 못할지언정 같은 무슬림으로서 인도적 차원에서의 사과는 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소수의 조상들이 독일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범죄에 대해서 사과하고 속죄하는 현재의 독일인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봐서 그들에게서 사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지나친 희망에 불과한 것 같다.

무슬림들의 세계적인 집단 시위는 이제 더 이상 충격이 아니라 대개는 당연한 현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어떤 신문 혹은 잡지에 이슬람을 비난하는 글이 실렸다든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그림이나 만화로 그렸다면 무슬림들의 세계적인 집단 시위를 각오하거나 저자나 작가가 살해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 상식이 되어 버렸다. 이제 세계가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에 복종하는 일에 차츰 적응되어가고 있다.

IS가 점령지 소녀들과 여인들을 포로로 잡아서 연령별로 가격을 매겨놓고 성노예로 판매하는 행위나, 라마단을 맞이하여 꾸란 암송대회에서 여성노예를 상품으로 준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무슬림들은 분노나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 뉴스를 듣고 무슬림들이 IS를 규탄하는 세계적인 집단 시위를 일으켰다는 보도를 들어본 일이 없다. 오히려 꾸란을 한 권 태웠다든지 무함마드를 그림으로 그렸다든지 했다는 사소한 이유로는 세계적인 집단 시위가 일어난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판단해 보라. 이슬람이 만일 평화의 종교라면, 시중에서 단돈 몇 만원이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이슬람의 경전 꾸란을 한 권 태운 행위와, 점령지 어린 소녀들을 잡아다 성노예로 판매하는 행위 중 어느 쪽이 더 이슬람의 이름을 더럽혔을까? 이것은 삼척동자라도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왜 무슬림들은 전자를 비난하는 세계적인 규탄시위를 일으키면서도 후자를 비난하는 규탄대회는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가?

IS에 집단 납치되었다가 풀려난 소수 야지디족 여성들. 이슬람 율법으로 통치하는 국가를 표방하는 IS는 타종교 여성들에 대한 성노예와 매매를 종교적으로 합리화 시켰다.
IS에 집단 납치되었다가 풀려난 소수 야지디족 여성들. 이슬람 율법으로 통치하는 국가를 표방하는 IS는 타종교 여성들에 대한 성노예와 매매를 종교적으로 합리화 시켰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답은 이슬람 율법의 기본 정신인 '알왈라 왈바라(Al Wallah Wal Barra)' 때문이다. 이것은 무슬림들끼리는 서로 돕고 보호하고 사랑해야 하며 비무슬림들은 철저히 미워해야 한다는 정신이다. 꾸란을 태운 것은 무슬림이 아니고, 소녀들을 성노예로 판 것은 무슬림들이다. 즉 전쟁터에서 적군이 한 행동은 무조건 비난하고 아군이 하는 행동은 무조건 정당화된다는 논리이다. 전쟁시의 윤리적 가치는 일반윤리와는 전혀 다른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비록 전쟁 상황 중의 아군일지라도 군법을 어기면 처벌을 면치 못한다. 이는 법과 규정의 문제이다.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Shariat)에서는 꾸란과 무함마드의 행동모범이 절대 기준이다. 그렇다면 꾸란에서는 매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현세의 이익을 얻으려 하녀들에게 간음행위를 강요하지 말라. 그들이 순결을 지키고자 하니라. 만일 그녀들에게 강요하는 자가 있어 강요되었을 때 알라는 그녀에게 관용과 자비를 베푸시니라.(꾸란24:33 하반부 최영길 역)

이 구절의 배경은 무슬림 중 '압둘라 이븐 술룰'이라는 사람이 '무싸이카'와 '아미마'라는 두 하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들에게 매춘을 강요하여 돈을 버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하녀들이 무함마드에게 찾아가 호소하자 이 계시가 내렸다는 것이다.(최영길 꾸란 24:33절 각주 참조) 여기서 매춘을 강요하는 자들에 대한 처벌이 없이 매춘에 이용당하는 여인들에게 관용과 자비가 베풀어진다는 이상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매춘을 합법화하는 차원을 넘어서 매춘에 이용당하는 여인들에게 알라의 관용과 자비가 베풀어지므로 합리화되고 권장될 소지마저 있는 것이다. 이런 기사들은 권위있는 하디스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우리가 알라의 메신저(무함마드:그 분에게 평화가 있기를)와 원정 중일 때 우리는 여자가 없었다. "우리가 거세하면 안 될까요?"라고 알라의 메신저에게 물었더니 그분(거룩한 선지자 무함마드)께서는 금하시면서 여자에게 겉옷을 주고 시한부 계약 결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그리고 압둘라는 이 구절을 낭송했다. "믿는 자들이여 알라께서 너희를 위해 허락하신 좋은 것들을 불법으로 만들지 말고 한계를 벗어나지 말라. 알라께서는 한계를 벗어나는 자들을 좋아하시지 않느니라.(꾸란5:87)(Sahih Muslim Hadith, Book008 Number3243)

이처럼 절대권위를 가진 이슬람의 경전 꾸란과 유력한 하디스에서 허용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전쟁포로들을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매춘을 강요하기도 하며, 이슬람전사들과 시한부 결혼을 통한 성행위를 거부하는 여성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현상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제 소위 이슬람에 대한 공포증인 이슬람포비아 현상이 근거 없는 염려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자료와 역사적, 실제적 경험에 근거한 필연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인권을 중시하며 지나칠 정도로 복지가 잘 되어있는 유럽에서도 이슬람 때문에 다문화 정책은 철저히 실패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아직도 인권 상황이나 복지가 유럽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대한민국에서 이슬람에 대해 전혀 무감각하게 문호를 개방하고 있는 현실이 심히 우려된다. 유럽에서는 무슬림들의 숫자를 줄이려고 하고 있고, 정책적으로 급진적인 무슬림 인사들을 색출하고 추방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으며, 그런 주장을 하는 정치인들의 지지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전북 익산에 개발 중인 국가 식품 클러스터. 이곳에 대규모의 이슬람 할랄식품 테마파크를 조성한다고 발표했지만 무슬림들의 게토화 우려 등 많은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전북 익산에 개발 중인 국가 식품 클러스터. 이곳에 대규모의 이슬람 할랄식품 테마파크를 조성한다고 발표했지만 무슬림들의 게토화 우려 등 많은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이슬람의 할랄 산업에 대한 헛된 망상이 한국의 무슬림 수 증가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보통 전 세계 평균 급진적 원리주의 무슬림들을 15-25%로 보고 있다. 무슬림 측의 주장을 수용하더라도 5%는 넘는다. 무슬림 100만 명이 들어오면 그 중 5만 명은 언제든지 테러를 저지를 수 있는 급진주의자들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딸들을 이용하여 국적을 취득하면서 무슬림들의 숫자를 급히 불려나가려는 전략은 유럽에서 이미 성공을 거둔 전략이기 때문에 강력하게 추진될 것이다. 익산에 할랄 단지가 조성되면 무슬림 할랄 도축자들과 샤리아 심사평가원들과 관리자들이 대거 입국하게 될 것이다. 이들의 활동으로 무슬림들이 급증하면 무슬림들만의 거리가 조성되고 이슬람 율법대로 치안을 관리하는 자경단이 등장할 것이며, 경찰들의 출입을 금지시키고 이슬람의 율법으로 재판하는 샤리아 법정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유럽의 경우를 볼 때 이것은 망상적인 우려가 아니라 사실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지원한 할랄 인증 자금은 테러범들의 자금줄이 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서방 뉴스를 통해서 증명된 공공연한 사실이다.

정부는 헌법에 기록된 대로 종교에 중립을 지키기 바란다. 대한민국 인구의 1%에도 못 미치는 무슬림들의 율법을 지키는 일을 위해서 국민들의 세금을 쏟아 붓고, 무슬림들의 숫자를 늘리는 일에 간여하여 비난받을 이유가 무엇인가? 경제인들이 자신들의 능력과 회사 정책에 따라 하도록 맡기고,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할랄 지원 사업은 손을 뗄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한국교회는 이 일을 위해서 강력히 기도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위 글은 한국이란인교회 홈페이지(www.4him.or.kr)에서 가져온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