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릭사이드 교회 김칠곤 목사
(Photo : 기독일보) 크릭사이드 교회 김칠곤 목사

합리주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말한"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배경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정말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든다. 인간은 동물이 가지지 아니한 이성(理性)을 가지고 있지만 때로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얼마전 수업중에 교수님과 함께 죄의 세금(Sin tax)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다. 죄의 세금에 대한 정의는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고 삶을 망가뜨리는 품목에 대해 과다의 세일즈 세금을 부여 하는 것이다. 이러한 품목들은 마리화나, 담배, 술 그리고 카지노에서 갬블링을 하는 것이다.

시애틀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주 정부에서 부과하는 세일즈 세금 9.5%를 내야한다. 그런데 이 금액은 정확히 말하면 소비자가 물품을 구입하는데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판매자에게 지불 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지불해야 하는 세금에 대해서 누구도 불만을 표현하지 않고 당연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건강을 해치는 품목을 구입하는데 있어서 내가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에 대해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른다.사람들이 알콜을 구입할때 내는 세일즈 세금은 20.5%, 마리화나 세금은 36%, 담배는 95% 이다. 담배 한값에 20개 스틱이 있다고 볼때 한개 당 $0,15 이고 한값에 $3,02의 세금을 낸다. 그리고 카지노에서 캠블링을 하면 수입의 5%의 세금을 내어야 한다.

소비자는 건강과 가정을 해치는 요인이 되는 품목을 구입하는데 과도한 세금을 내고, 주 정부는 거기에서 거두어 들이는 세입이 많기에 어디에서나 쉽게 품목을 구입하도록 권장을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죄를 더 짖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죄의 세금이 과다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더 어둡고 힘들게 살아가게 한다. 건강을 해치는 품목은 그것을 구입하는 사람뿐 아니라 그가 속한 가정을 무너뜨린다. 이것으로 인해 아픔의 상처들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가정들이 오늘날에는 더 많아지고 있다. 이것을 보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다. 만일 인간이 좀더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내가 가는 방향이 어떤 방향인지를 잘 알고 가는 것이라고 본다. 먹고 살아가기도 힘든 세상에 죄의 세금을 내는데 삶을 투자를 한다면 그가 속한 가정은 과연 어떤 삶이 주어질까? 죄의 세금을 내는 대신에 그것을 가정에 베푼다면 그 가정은 얼마나 더 나아질까?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세상이 바라는 것은 삶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 같지만 결국에 죄의 노예가 되게 하고 죄의 군대로 만들어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게 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때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런데 그 의지를 사용하는 사람이 누구이냐에 따라 윤택한 삶을 살아갈 수 있고 아니면 죄의 뿌리에 붙어 어두움의 권세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세상은 우리에게 유희를 주는 것같고 언젠가는 유토피아 세상이 이루어질것 이라고 생각하지만 과학과 물질문명이 발달하면 할 수록 세상은 더욱더 험악한 세상이 되어 간다.

이러한 세상속에서 과연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주어지는 것일까? 이것을 위해서는 먼저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켈리 박사의 일화에 보면 매일 아침 저녁으로 그는 성경을 읽어 마음의 때를 씻어내고 외부 출입을 할 때에는 늘 옷깃에 장미꽃을 꽃고 다녔다. 그를 본 받은 많은 학생들도 옷깃에 장미를 꽃고 다니는 것이 어느날 유행처럼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학생들이 꽃은 장미는 하루도 못가서 시들어 보이는데 켈리 박사의 장미는 일주일 가도 시들지 않았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학생들이 그 까닭을 물었다. 그때 켈리 박사는 학생들에게 장미가 꽃혀 있는 자기 옷깃을 뒤집어 보여 주었다. 켈리 박사의 장미는 옷깃 뒤에 있는 조그만한 물병에 꽃혀 있었다. 한 송이의 장미꽃도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수명이 달라지는 것을 캘리 박사가 학생들에게 보여 준것이다. 인간이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삶의 뿌리를 어디에 두느냐가 인생의 삶을 좌우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에덴 동산에서 그들과 온전한 관계를 형성하셨다. 그러나 사단의 유혹에 의해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되 삶을 살았다. 하나님은 죄인된 인간을 자유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시어 인간들을 왕의 군대로 만들고자 계획하셨다. 이것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이땅에 왕으로 오셨다. "시온의 딸에게 이르기를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마21:5)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님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과 더불어 우주를 만드신 만왕의 왕이시다.예수님은 하늘의 모든 주권과 지상의 모든 주권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신 것이다. 주의 나라의 모형은 바로 교회이며 주님은 온 세상을 주님이 원하시는 나라로 건설하고자 하신 것이다. 주님의 나라는 평화, 사랑과 정의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라를 건설하시는 주님의 방법은 죄인된 인간들의 죄를 사해 주시고 영혼을 자유하게 하시어 왕의 군대로 만드시는 것이다. 죄인이 구원을 받는 것은 주님을 나의 구주라고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가지며 왕의 백성이 된다. 그렇다면 왕의 군대의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왕의 군대가 되려면 왕이신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왕이 되기 이전에 전달한 메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2:3) 그리고 신약에 사도바울이 빌립보서 3:14절에 왕의 군대에 대해 언급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 노라" 왕의 군대가 존재하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며 이것을 위해 말씀으로 훈련하고 복음을 선교지에서 전하는 것이다. 이 선교지는 곳 세상이며 세상을 향하여 주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는 일이다. 이러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군대는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것은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지키시며 왕의 군대는 영원히 살 수 있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기를 바라시며 열국에 사는 사람들이 어두움을 무너뜨리는 왕의 군대가 되기를 바라신다. 이것을 위해 왕의 군대는 모든 일에 감사하고 왕이신 하나님께 충성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크릭사이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교회웹:thecreeksidechurch.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