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몇차례 실패를 한 사람들이 상담자에게 와서 자신의 배우자들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데 있어서 수 많은 이유들이 있다. 그중에 몇가지를 들어 본다면

크릭사이드 교회 김칠곤 목사
(Photo : 기독일보) 크릭사이드 교회 김칠곤 목사

"남편이 낮에는 나를 닭 보듯 무시하고 밤만 되면 짐승처럼 침대에 달려온다.", "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 남편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도무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나의 아내는 아이를 낳고 난 후 부터 나에게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했다." "아내의 관심은 오직 자식이었다.", "아내는 나와 부부 관계 하기를 싫어한다." 이러한 것들을 아내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아내가 남편에게 기대하는 것은 텅빈 감정의 탱크(emotional tank)에 사랑의 관심을 채워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와 반면에 남편들이 아내에게 기대하는 것은 사랑의 육체적 탱크(physical tank in love)에 쾌락을 채워 주기를 바라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들의 핵심을 하나로 설명해 본다면 그것은 사랑의 결핍(lack of love)에 의해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볼수 있다. 이러한 증상들은 서로의 배우자들 사이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분노, 미움, 논쟁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 쓴 뿌리를 갖고 이혼을 결심하고 서로를 원수로 여기며 평생에 상처를 갖고 살아간다.

이런 것을 볼때 결혼생활은 연애의 감정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남녀의 존재는 자신의 삶의 상황이 어떠하든 상관 없이 항상 사랑을 하기 위해서 사랑할  대상을 끊임없이 찾으려고 한다. 결혼을 한 배우자는 항상 서로에게 사랑을 갈급하며 살아가고, 싱글들은 누군가를 만나 진실된 사랑을 통해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 이혼을 몇번 경험을 한 여인이 결혼 상담을 위해 상담자를 찾아 왔을때 상담자가 그 여인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 남자 분하고 결혼을 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때 그 여인이 상담자에게 이렇게 대답을 했다. "지금 사귀는 남자는 만난지 이제 3주 밖에 안됩니다.", "이번에 만난 남자는 이전에 결혼 생활을 하며 살았던 남자들과는 너무나도 다릅니다.","나의 텅빈 사랑의 탱크(love tank)에 진정한 사랑을 채워 줄 사람입니다.","그래서 그 사람하고 결혼을 하기로 했습니다."그녀의 말을 들은 상담자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이세상에는 누구도 당신이 바라는 사랑의 탱크에 영원히 사랑을 채워 넣어 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내가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배우게 되는 것은 배우자에게 항상 나의 존재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부족한 나임에도 불구하고 배우자가 나를 믿고 신뢰하며 나를 사랑해주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그 사람에게 감사하며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법이다. 행복된 결혼 생활은 하나님의 주신 법을 지키는 것이라고 본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사랑은 영원히 채워질 수 없고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을 영원히 채워 주실 분이 우리에게 존재하신다.

그분은 인간을 만들고 인간들을 끊임없이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시어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그리고 사랑은 말씀이시며 그 사랑을 완성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의 가치의 실현을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시기 이전에 인간들에게 하도록 하기 위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셨다. 십계명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네 이웃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사랑의 법칙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랑의 법칙을 주셨을 뿐 아니라 이러한 사랑의 법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존귀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주신다고 말씀 하셨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애굽기 20:6)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축복의 은혜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만든 사랑의 법칙을 깨뜨리고 십계명의 자리에 내가 만든 우상에 절을 하고 진리가 아닌 것에 끌려 죄(罪)의 삶을 살았다. 이것을 하나님은 결코 오랫동안 두고 보시지 않으신다. 예레미야 25장 14절에 보면 "그리하여 여러 민족과 큰 왕들이 그들로 자기들을 섬기게 할 것이나 나는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이 행한대로 갚으리라"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은 율법적인 완벽을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것이 곧 사랑이며 이러한 사랑을 하나님은 사람들과 사람들 간에 하기를 하나님은 바라신다.

하나님을 존귀히 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히브리어에 보면 "카봇"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의 뜻은 우리 말로 존중하다는 것이다. 존중의 의미는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무겁게 여기라는 말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을 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존귀하게 여기라는 말이다. 영어에서 무겁다는 단어를 찾아 본다면 그것은 "신경을 쓰라"(matter)는 말이다. 이말은 두가지 경우에 사용된다. 누군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의 고민을 덜어 주기 위해  별것 아니기에 신경을 쓰지마라(It doesn't matter)라고 한다. 그리고 다른 경우는 보기에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아니하면 신경좀 써라(It does matter)라고 누군가에게 간곡히 부탁을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후자의 경우라고 믿는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존귀히 여기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것이며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절대적이라고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 믿는다는 것은 나를 하나님께 온전히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결혼생활이 오랫동안 그리고 신앙 가운데서 영원한 천국에서도 기쁨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배우자를 내 몸같이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가정은 한 가정도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의 존재는 불 완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완전을 채워나가고 끊임없이 온전한 사랑을 가꾸며 살아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비록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나의 꿈을 실현할 수 없다 할지라도 내가 가는 길에 모가 났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나의 존재를 알고 주님 안에서 나의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축복의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의 법을 지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