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최근 우리 사회는 갑을(甲乙) 문화에 대한 부작용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 동안 조직의 저변에 묻혀 있던 '을의 눈물'이 사회 여기저기서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힘과 권력을 잡고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부당한 행위를 하는 것을 갑질이라고 말한다.

갑은 자신이 가진 특권으로 상대적으로 약자인 을에게 부당한 요구를 함으로써, 을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땅콩 회항 사건이 그렇고, 백화점 관계자가 주차요원을 무릎 꿇리는 행위가 그렇다. 최고의 명문대학에 있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하는 갑질 역시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서글픈 우리네 자화상이다. 갑이 갑다워야 아름다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어느 날 테레사가 한 어린이의 고름을 만지면서 치료하고 있었다. 그때 함께 생활하던 한 사람이 테레사에게 물었다. "수녀님, 당신은 잘 사는 사람,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높은 자리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시기심이 안 생깁니까? 이런 삶으로 만족하십니까?" 그러자 테레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까요."

우리 사회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상대방의 얼굴에 손가락질해대는 갑이 필요한 게 아니다. 힘과 권력을 잡고 있지만, 상대방을 배려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이 필요하다.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칼 메닝어 박사가 어느 모임에 강사로 초대받았다. 메닝어 박사는 정신 건강에 관한 강의를 끝내고 청중들의 질문을 받았다. 한 남성이 손을 들고 일어나서 물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신경 쇠약에 걸릴 처지에 놓였다면, 선생님은 어떻게 하라고 처방을 내리시겠습니까?" 참석자들은 메닝어 박사로부터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라'는 대답을 듣게 되리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사람들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신경 쇠약에 걸릴 위험에 노출되었다면 서둘러 집의 대문을 걸어 잠그고 철길을 가로질러 길을 떠나십시오. 그래서 자신보다 더 위급한 사람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면 즉시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십시오. 그보다 좋은 처방은 없으니까요." 과연 명(名)대답이 아닌가?

사람들은 저마다 좋은 자리에 앉기를 원한다. 높은 자리에서 사람들을 내려다 보기를 갈망한다. 힘과 권력을 잡아 다른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권세를 부리기를 바란다. 나 또한 그런 욕구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나도 부인하고 싶은 내 안에 감추어진 욕구가 존재하니까. 그런데 그곳에 탈출구를 만들지 않고는 진정한 제자의 길을 걸어갈 수 없다.

네비게이토선교회의 유명한 지도자인 론 새니가 한 젊은이에게 제자훈련을 시켰다. 젊은이는 섬김의 종에 대한 훈련을 마친 뒤 스승에게 물었다. "섬김의 종으로 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그러자 론 새니가 대답했다. "지금은 모르지. 교육을 받으면 다 섬김의 종이 되었다고 고백한다네. 그러나 섬김의 종은 사람들에게 종 취급을 당할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네. 만약 그가 화를 낸다면 아직 섬김의 종이 되지 못한 것이야. 기꺼이 당하겠다고 말할 수 있다면 섬김의 종이 된 것이겠지."

누군가 나를 업신여기고 무시할 때, 나를 자기 하인 다루듯 할 때 얼마나 속상한가.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예수님은 스스로 종이 되셨다. 스스로 자기 목숨을 대속제물로 십자가에 드렸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하는 우리도 달라야지. 예수님의 제자들이 '갑질'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을질'하는 제자도 없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섬김과 봉사는 다른지 몇 가지 점검해 보자. ①과연 나는 '식탁에서 시중 드는 자'의 정신을 갖고 섬기나? 섬김은 그리스어 디아코니아(diakonia)이다. '식탁에서 시중을 드는 일, 심부름을 하는 것'을 말한다. 허드렛일을 하려는 마음을 갖고 섬기고 있는가? ②섬김과 봉사는 자신을 위한 자기 배려임을 알아야 한다. 섬김과 봉사를 하는 사람은 건강하게 되고, 공동체 내에서 결국 인정받게 된다. ③섬김과 봉사의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칼 바르트는 "섬김의 삶은 자기의 목적이나 계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필요와 의도와 지시에 따라서 행동할 때의 의지(Will)와 수고(Working), 행동(Doing)이다"고 정의했다. 섬김과 봉사는 교회 중심이어야 하고, 목회 중심이어야 한다.

④수고와 대가를 지불하는가? 예수님은 대속제물로 자신의 몸을 드리셨다. 힘들고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고는 봉사하고 섬길 수 없다. ⑤상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상처가 두려우면 제대로 섬길 수 없다. 상처는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갖는 것이다. ⑥사람의 칭찬과 인정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데 관심을 두어야 한다. ⑦불평불만을 하지 말아야 한다. 불평불만이 공동체를 더 부정적인 분위기로 바꾼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4)".

⑧다툼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⑨은밀하게 섬겨야 한다.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섬기는 자들이나 '남들이 꺼리는 곳'에서 섬기는 자들이 교회를 세울 수 있다. ⑩섬김과 봉사가 자기 자랑이나 자기 의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⑪하나님이 공급하는 힘으로 해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게 해야 한다(벧전 4:11).

정말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섬기고 싶은가? 그렇다면 스티븐 고크로져가 지적하는 말을 되뇌어 봐야 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섬김은 사랑으로부터 샘솟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이 아닌 다른 동기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면, 우리 뿐 아니라 우리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를 입히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동기가 아닌 그 어떤 동기도 섬김과 봉사를 훼방할 수 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낮은 자와 약한 자를 찾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낮은 자를 높여주신 그리스도의 눈으로 섬겨야 한다.

세상 사람들처럼 남을 업신여기고 하대하는 태도로 섬겨서는 안 된다. 남을 나보다 낮게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