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릭사이드 교회 김칠곤 목사
 크릭사이드 교회 김칠곤 목사

성경에 나오는 요담의 우화에 보면 나무들이 자기들의 왕을 세우기 위해 최종적인 후보로 선정이 된 나무들에게 왕을 세우려고 하는 조직위원회로부터 각각 후보들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하나씩 물어본다. 그때 왕의 후보로 선정된 나무들은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가시나무였다. 조직위원회가 제일 먼저 물어 본 것은 감람나무이다. 그 나무에게 자신들의 왕이 되면 좋을 것 같은데 라고 간청을 한다. 그 말을 들은 감람나무가 말하기를 "내게 있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라고 말하면서 조직위원회의 요구를 수락하지 않는다. 두번째로 질문을 받은 나무는 무화과나무이다. 무화과나무가 받았던 질문은 감람나무와 동일한 것이다. 이에 대해 무화과나무는 말하기를 "나의 단 것과 나의 아름다운 열매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라고 겸손하게 자신은 왕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세번째로 조직위원회가 질문을 한 것은 포도나무이다. 포도나무가 받았던 질문도 앞에서 질문을 받은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같은 것이었다. 그때 포도나무는 조직위원회에 이렇게 말을 한다.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라고 말하여 여전히 포도나무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질문을 받은 가시나무는 자신이 가진 욕망을 과감하게 조직 위원회에 내 보인다.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요담이 나무들의 비유를 그리심 산 꼭대기에서 언급한 이유는 그의 이복형제인 아비멜렉이 왕이 되기 위해 자신의 형제들 68명을 죽이고 세겜 사람들과 모사를 꾸민 것에 대한 지적을 하고자 한 것이다. 요담은 아비멜렉을 가시나무로 우화해서 이야기를 하고 그를 도와 왕을 만들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 경고를 한다. 요담이 이복형제인 아비멜렉을 가시나무로 비유를 한 것은 가시나무에는 쉴 만한 그늘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가시나무에 다른 나무들이 가까이 가려고 하면 할수록 찔리고 아픔의 상처만을 갖게 한다는 것을 요담이 알고 오래 가지 못하여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통해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가시나무의 상징적인 의미는 과연 무엇이라고 언급하였을까? 성경에서는 가시나무를 사악한자, 미련한자, 우매자로 표현한다. "사악한 자는 다 내어 버리울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자의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우매자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렇게 사악한 가시나무는 너무나 교만하기에 절대로 그 속에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자기의 만족을 알고 성실하게 직분을 감당하는 나무들과 교만으로 가득한 가시나무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아비멜렉은 자신이 가시나무가 되어 권력의 욕망(desire)을 성취하기 위해 형제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하나님께 거역하는 우상숭배 하는 일과 자신을 도와 왕이 되게 한 세겜 사람들과 왕이 된지 삼년 만에 그들과 전쟁을 한다. 그리고 데베스 지역을 점령하려고 하는 중에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그의 두개골이 깨지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자기의 무기를 든 청년을 급히 불러 자신을 찌르게 하고 한 여인으로 인한 수치의 죽음을 덮는다. 이것을 볼때 가시나무의 삶을 살았던 아비멜렉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아픔과 고통의 상처를 주었던 것을 그대로 되돌려 받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과거나 현재나 권력의 욕망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동일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삶의 가치 추구가 성공이라는 명목 하에 더 많은 권력, 명예, 돈 그리고 지식을 가지려고 한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욕망을 향해 달려가다가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리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것에 대해 영국의 사상가인 J. 벤덤이 말을 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별을 따려고 손을 뻗는 사람은 자기 발밑의 꽃을 잊어버린다." 이 말은 한 사람이 가지려고 하는 성공의 욕망 때문에 가장 가까이에서 보호를 받아야 할 가정의 구성원들을 진정하게 사랑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성공이라는 욕망은 그것을 가지면 가질수록 부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성공을 쫓다보면 언젠가는 늙어버리고 자신이 성공을 하려고 시간을 너무나 소모했기에 소중한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그리고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사랑을 하지 못하고 지나온 세월은 어떤 것으로도 보상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언젠가는 알게 된다.

성공이라는 욕망은 나를 위한 것이기에 주변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지 못하도록 한다. 그 이유는 욕망은 근본적인 인간의 욕구를 늘 부족하게 느끼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 철학자 플라톤이 말하기를 "인간의 욕망은 채우기 불가능한 구멍 난 물통이다.", "물통에다 물을 채우려고 하지만 물통은 여전히 비어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인간의 욕망은 가지면 가질수록 만족이 없는 것이며 끝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샤르트르는 인간의 욕망은 유한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앞에서 말한 두 철학자의 이야기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이기에 영원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끊임없는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며 그것을 성공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자신의 욕구를 합리화 한다. 그런데 그 내면에는 지나친 욕망이 가시가 되어 누군가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고 그 상처가 너무나 깊어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가시나무의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며, 성공을 위한 욕망이 나 자신의 삶에 진실로 필요한 것이냐는 것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일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권력, 명예, 지식, 돈 그리고 섹스는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필요 충분의 조건이 풍부함이라는 말로 둔갑이 되어 더 많은 욕망을 추구한다면, 이것은 분명 인간의 삶을 교만하게 할 뿐 아니라 자신의 위치가 무엇인지를 망각하게 한다. 진정한 삶의 가치는 누군가에게 필요를 채워주며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원한 삶과 기쁨을 주시는 무한하신 주님의 은혜를 받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삶에 진정한 행복이다. 

크릭사이드 교회 김칠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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