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약물중독 치료서비스 이태선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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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전 나는 내 컬럼에서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한국의 정치권이 안철수 의원의 지지율을 마치 '권리금'으로 환산하며 거대야당인 민주당이 겨우 두 명의 국회의원뿐인 안철수 당을 50대 50이라는 지분으로 매수했다. 안철수로서는 대단히 남는 장사를 했다. 지금까지의 안철수의 정치역량이라든지 정치철학에 대한 증거를 갖고 있지 않는 대다수의 지지자들은 단지 그를 기존정치의 대안으로 받아들여 혹시 하며 그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는데, 민주당은 이를 엄청난 권리금을 주고 사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7월 30일 실시한 한국의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야당은 새누리당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하게 되자 그렇지 않아도 안철수 공동대표를 굴러온 돌쯤으로 여기며 심드렁한 태도로 일관하던 일부 계파들이 기회는 이때다 하며 안철수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안철수는 새 정치를 표방하며 자신의 몇몇 측근들과 함께 음모와 야욕으로 점철되어 있는 거대 야당에 합류하며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멘토였던 윤여준씨는 "사슴이 호랑이굴로 스스로 들어가는 꼴"이라며 일축했었다. 사실, 민주당은 그 당시 제 3의 세력으로 부상했던 안철수를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끌어안음으로써 안철수의 영향력을 자신들의 통제 하에 무력화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들의 전략은 적중했고 이제 안철수의 인기가 하강곡선을 그리자 그에게 선거패배의 책임을 물으며 여지없이 발길질하는 비정함을 보여준다. 결국, 안철수는 한국 여의도의 기성 정치인들의 야비함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그만의 카리스마가 부족했던 것이다.

나는 지금의 한국인들이 서로에게 공명정대하고 도의와 배려있는 정치적 마인드를 갖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오래전에 그들의 인성과 가치관은 사람에 대한 불신과 경쟁을 뛰어넘어 혐오와 공격의 대상쯤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단지 자신에게 충분한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가차 없이 결별을 선언하며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어 버리는 이 배신의 정서가 이미 생리적으로 만성화되어 있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생각해 보라. 어떻게 여와 야가 철저하게 이분화 되어서 총성 없는 전쟁을 계속하며 국민들을 이간하고 분열시키는 역사를 되풀이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우리 한국인들의 역기능적인 정서이자 생리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후 동서냉전의 각축장이었던 한반도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태어난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는 국민이 국가의 희생자일 뿐이라는 피해의식을 낳았으며 이에 기초한 대정부투쟁은 전통으로 대물림되어 이제 21세기로 들어서며 국민의 여론에 의해서 대통령의 입지도 좌지우지되는 한국 땅에서 적(敵)과 나(我)라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현재 진행 중이며 이 어처구니없는 적대적 대립관계는 한국사회의 화합을 방해하는 근본적 발상으로 작동하고 있다. 아마도 적이 있어야지 삶에 동기가 부여되는 생리가 어렸을 적부터 경쟁 지향적인 교육제도로 부터 체질화 된 탓일 것이다.

지난 4월 선임병에게 구타당하고 기도가 음식물로 막혀 숨진 병사가 내무반에서 상습적으로 구타와 물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지면서 또 다시 한국사회가 서민들의 자녀들만 짊어지는 병역의 의무에 회의감을 갖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군대내 기강해이를 그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사실, 오늘 이 몰인정하고 잔인한 인성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까닭에는 이미 인성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 한국사회의 잘못된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그 단초가 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 이 엄청난 학벌에 대한 열망은 한국인들의 마음을 인간성상실의 위기 속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이 야만의 세월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가족들의 몸부림은 서로를 경계하며 또 때로는 잔혹하리만치 짓밟아야 직성이 풀리는 분노를 양산하고 있다.

지금 한국인들의 교육은 이미 미친 짓이다.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해서 공감했다. "지금 한국 사람들은 영화관에서 앞에 한사람이 조금 더 잘 보기 위해서 일어서니 모두가 서서 영화를 보고 있는 중이다." 서로의 합의를 통해서 모두가 편안히 앉아서 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단지 앞사람만을 불평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