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

교통질서도 중요하고 유통질서도 중요하지만, 혼인질서가 으뜸 간다고 본다. 로마 대제국이 멸망한 원인 중 첫째가 빈번한 이혼으로 인해 혼인질서가 문란해진 것이었다(둘째는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여 정부 지도자와 일반 국민 사이에 정서적 유대와 통합이 깨진 것이요, 셋째는 휴일이 연중 176일 정도로 많아 노동의 가치를 소홀히 여기고 레저문화가 지나쳤기 때문이요, 넷째는 국토 확장 전쟁으로 인해 용기 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전사한 일이요, 다섯째는 신전은 많이 있으나 국민 전체를 하나로 묶어줄 고급 종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열녀 향랑(香娘)을 소개하려 한다. 그는 선산군 상형곡 양가 딸이었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정숙하여 계모를 정성껏 섬겼다. 그러나 계모는 어질지 못해 학대가 심하고 자주 회초리를 들었다. 옷과 밥도 제때에 주지 않았지만, 향랑은 그 뜻을 받들어 순종했다. 시집을 갔으나 남편이 어질지 못해 향랑을 마치 원수처럼 미워했다. 시어미 또한 아들에 못지 않았다. 향랑은 계모와 남편에게 버림을 받으니 외톨이가 되어 갈 곳이 없었다. 그의 숙부와 시아버지가 불쌍히 여겨 다른 곳으로 시집가게 하기를 원했지만 향랑은 울면서 말했다. "제가 약가(藥哥)의 정절을 듣고서 늘 그 사람됨을 사모했으니, 맹세코 죽어도 개가하지 않겠습니다. 원컨대 남편 집 곁에라도 몸을 맡겨 일생을 마치고 싶습니다."

시아버지가 허락지 않아 억지로 친정에 쫓아 보냈다. 향랑은 할 수 없이 친정에 돌아갔으나 계모가 다시 쫓아냈다. 그를 받아줄 곳이 없자 죽기를 결심하고 오태강(吳泰江)으로 갔다. 고사리 캐는 여인을 만나 자기 머리쓰개와 치마를 벗어 주며, "이것을 가져다가 내 부모님께 드려서 내가 죽은 증거를 삼아 주소"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는 <산유화> 한 곡을 청하여 그 여인에게 부르게 하였다. 그 노래가 이러하다. "하늘은 어찌 저리 높고도 멀며 / 땅은 어찌 저리 넓고도 아득한가 / 하늘과 땅이 비록 크다지만 / 내 한 몸 맡길 곳은 어디에도 없구나 / 차라리 이 몸을 강물에 던져 / 물고기 뱃속에다 장사나 지내리라". 향랑은 이 노래를 듣고 나서 한 마디 길게 울부짖은 후에 강물에 몸을 던져 빠져 죽고 말았다. 그때 나이 겨우 스무 살이었다.

나중에 사람들이 그 강물 옆의 연못을 향랑연(香娘淵)이라 불렀다. 그때 그곳 부사 조구상(趙龜祥)이 이 말을 듣고 전기를 지어 그 일을 기록했고 조정에도 아뢰어 정문을 내려 표창하였으니, 이는 숙종 때 일이었다. 당시 여러 사람들이 이 사연을 듣고서 모두 슬퍼하며 서로서로 시를 지어 그를 기념했다. 그 중 몇 개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①"산 위에 꽃이 있고 꽃 아래 산이 있어/ 낙동강 물은 다할 날이 없어라/ 창자가 끊어지려 눈물은 강이 되어/ 푸른 한은 유유히 가고 아니 오는구나" ②산에 꽃이 피었으나 나는 홀로 집이 없다네. 그래 집 없는 이 몸이란 꽃보다도 못하다오(山有花 我無家 我無家 不如花). 산에 꽃이 피었네. 그 꽃은 오얏과 복사라네. 복사와 오얏이 섞여 피었다지만 복사나무엔 결코 오얏이 피지 않으리라(山有花 李與桃花 桃李雖相雜 桃樹不開李花). 오얏은 흰 꽃, 복사는 붉은 꽃, 희붉은 것 같지 않으니 떨어진들 복사꽃이 아니랴(李白花 桃紅花 紅白自不同 落花亦桃花). 지금도 이 지역 사람들은 <산유화> 노래를 부르고 있단다. 한낱 시골 여인으로서 여러 노랫말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그 깨끗한 정절이 어찌 옛날의 열녀처럼 슬프고 원통하지 않겠는가?

성경에도 열녀들이 있다. 이스라엘 지방에 큰 가뭄이 들어 엘리멜렉이란 사람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이주했다. 그 아내는 나오미였고 두 아들을 말론과 기룐이었다. 얼마 후 남편 엘리멜렉은 죽고 홀어머니 나오미는 두 아들을 결혼시켜 말론은 오르바란 여인과, 기룐은 룻이란 여인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두 아들마저 죽어 세 명의 과부만 남았다. 그때 시어머니(나오미)가 두 며느리(오르바, 룻)에게 "너희는 각자 너희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거라. 너희가 나와 죽은 내 아들을 잘 보살펴 주었으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잘 돌보아 주시기를 바란다. 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새 남편과 새 가정을 주시기를 바란다"고 일렀다. 그러나 둘째 며느리 룻은 "저더러 어머니를 떠나라고 하거나 어머니 뒤를 따르지 말라고 하지 마십시오. 저는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따라가고 어머니가 사시는 곳에서 살겠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제 백성이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제 하나님이십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에 묻히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며느리가 훗날 예수님 족보의 선조가 된다. 결혼은 대단히 중요한 사회질서이다. 함부로 이혼하거나 배우자를 핍박하면 안 된다. 절대로 복 받을 수 없는 일이다. 열녀가 중요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