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한남대 총장
김형태 한남대 총장

내가 내 밥 먹고 사는데 누구를 의식하랴. "나 좋을 대로 살아가겠다" 하면서 "변소에 가서 낚시질을 하든 말든,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내 돈으로 나 먹고 살아도, 사회적 통념이나 공동체의 관습과 기준은 중요한 것이다. 외딴집에서 독신으로 살았어도, 혼자 잘난 맛으로 살아선 안 된다.

내 것 주면서도 예쁜 사람이 있고, 무엇을 갖고 와도 미운 사람이 있는 법이다. 같은 값이면 만나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고 칭찬을 받으며 사는 게 좋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비결을 생각해 봐야 한다.

①얼굴을 펴면 인생길이 펴진다: 사람을 만날 때 첫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첫인상은 보통 3초 안에 결정된다고 한다. 첫인상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캘리포니아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알버트 메라비안의 연구 결과다. 그는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언어적 요인(대화 내용)이 7%, 외모와 표정과 태도 등 시각적 요인이 55%, 그리고 목소리 등 청각적 요인이 38%를 차지한다고 했다. 이러한 요인은 첫 만남에서 가장 강력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의 연구를 웃음의 측면에서 보면 웃는 얼굴과 웃음소리가 첫 만남의 93%를 좌우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얼굴>이라는 책으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미국의 과학저널리스트 대니엘 맥닐은 말한다. 판사들이 재판에 임할 때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공평무사하게 판결을 내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재판 중에 인상이 좋거나 미소를 짓는 피고인에게 더 가벼운 형량을 선고한다고 말했다. 가장 객관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할 법정에서조차도, 인상과 미소는 최고의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②짧은 말 한 마디가 긴 인생을 좌우한다: 무심코 들은 비난의 말 한 마디가 잠을 못 이루게 하고, 정 담아 들려 주는 칭찬의 말 한 마디가 하루를 기쁘게 한다. 부주의한 말 한 마디가 파괴의 씨가 되어 절망에 기름을 붓고, 사랑의 말 한 마디가 소망의 뿌리가 되어 열정에 불씨를 댕긴다. 진실한 말 한 마디가 불신의 어둠을 걷어내고, 위로의 말 한 마디가 상처를 아물게 하며, 전하지 못한 말 한 마디가 평생 후회하는 삶을 만들기도 한다.

말 한 마디는 마음에서 태어나 마음 속에 씨를 뿌리고 생활에서 열매를 맺는다. 짧은 말 한 마디가 긴 인생을 만들고, 말 한 마디에 마음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만, 긴 인생이 짧은 말 한 마디의 철조망에 갇혀서도 아니 되겠다. 구약성경(민 14:28)엔 "그들에게 전하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내가 사는 한 내가 들은 말 그대로 너희에게 해줄 것이다(I've had my fill of complaints from these grumbling Israelites. Tell them, As I live -God's decree- here's what I'm going to do)"고 했다.

말이 씨가 된다. 죽는다 죽는다 하면 정말 죽게 되고, 잘 된다 잘 된다 하면 정말 잘 된다고 한다. 말의 암시성과 자기 최면성을 지적한 말이다. 그러니 함부로 불평불만을 말해선 안 된다. 부정적인 말로 속상한 세상을 만들면 결국 우리 모두가 불행해진다.

③인생은 만남이다: 만남의 복이 제일 중요한 복이다. 사람이 일생 동안 깊은 만남을 갖는 것은 10여명 안팎이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 혈연으로 얽힌 형제 자매들, 그리고 배우자와 나의 분신인 2-3명의 자녀들. 그리고 막역한 친구 2-3명, 은사 한두 분,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 한둘과 가까운 친척 2-3명, 그 외 한두 명의 선배나 은인 등, 이 세상에서 가까운 사람이란 대략 그런 정도일 것이다.

일생 동안 10여명의 사람과만 가깝게 만나고, 그 밖에는 얇은 만남이요 일시적 만남이며, 피상적인 만남이요, 사무적인 만남일 것이다. 결국 10여명의 사람과만 실존적인 참 만남을 나누는 것이다. 그 10여명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이요 은혜다. 운명으로 생각하고 소중히 사랑하며 극진히 섬겨야 한다. 길가에서 옷자락만 한 번 스치거나 얼굴만 잠깐 보고 지나쳐버리는 무연(無緣)의 만남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야말로 남남관계인 것이다.

또다른 만남은 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독서는 옛사람과의 참 만남이다. 나는 고인(故人)을 볼 수 없고, 고인 또한 나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원효대사, 이퇴계, 한용운을 만날 수 있다. 공자의 음성을 듣고 노자의 철학을 배우며, 예수님과 석가여래와 문답을 하고 플라톤과 괴테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옛 시인은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나라가 망해도 산과 강은 그대로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시간적으로 옛 성현들과 만나고 공간적으로 10여명의 인간들을 만난다. 같은 직장에서 기관장과 협력부서장으로, 군대에서 지휘관과 참모로 한동안 일한 사람들이 평생 동안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수도 있고, 그 보직이 끝나면 포말처럼 흩어지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섭섭함과 배신으로 이어지는 수도 있다. 가급적이면 고물 없는 인절미처럼 오랫동안 고마워하는 관계로 지속되기를 바란다.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