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선 소장
(Photo : 기독일보) 아시안 약물중독 치료서비스 이태선 소장

얼마전 끝난 한국의 6.4 지방선거에서 관심을 모았던 정몽준 서울시장후보와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가 아쉽게도 낙선했다. 그들의 패인중 하나가 다름아닌 그 두후보의 자식들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것 이다. 정몽준 후보경우에는 철부지 늦둥이 아들녀석의 세월호 가족들에 대한 '미개한 국민'발언이 화근이 되어서 아버지의 자식교육 문제에 하자가 있는것 아니겠는가하는 유권자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며, 고승덕 후보는 이혼한 전처와 미국에서 살고있는 과년한 딸네미가 조강지처와 자식을 내 팽게친 아버지가 어떻게 서울시 교육의 수장이 될수 있겠냐며 세상에 고발하면서 유권자들의 표심을 단번에 빼앗기고 말았다.

옛말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그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 한국의 정치무대에서 재현되었던 것이다. 그러게 뭐랬던가? 자식은 부모 뒷꼭지 보고 자란다고 했지 않는가. 참, 한국의 부모들 아슬아슬하고 우둔하기 짝이없다. 대학까지 나온 그 지성과 이성적 판단은 다 어데가고 자식에 대한 열망과 집념으로 있는것, 없는것 다 뒷돈 대주면서 공부시켰더니 이제 그 자식으로 부터 공격 당하는 꼴이 되지 않았는가?

문제는 자식들에게 보여지는 부모들의 삶이 어떤 모양새인가를 제대로 바라다 볼 필요가 있다. 아빠가 엄마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는가? 자식들의 교육에 대한 엄마의 가치관은 정말 괜찮은 것일까? 아빠는 자녀들의 삶에 얼마나 관심을 쏟고 있는가? 아빠의 삶에 원칙과 정직함이 베여 있는가?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부모인가? 등등은 우리 자식들이 제대로 커 나가는데에 너무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부모들은 위에서 열거한 항목중 한 두가지 원칙도 제대로 지키며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도 힘들고 박하다고 성토하며 그것 보다는 자식을 부모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키워야 겠다는 욕심만 앞서며 공부만 강요할 때 제 2, 제 3의 자식들의 반란은 계속될 것이다.

사실, 백번양보해서 어떻게 완벽한 부모가 될수 있겠냐 항변할 때 그래도 자식들이 제대로 커 나가는 데에 꼭 필요한 부모의 삶중에 하나가 바로 부부간의 사랑과 존중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년이 되고 결혼생활 2,30년이 되면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부부간의 대화의 단절과 애정표현의 결핍이다. 더욱이 한국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잘못된 음주문화는 그렇지 않아도 건조해 지는 아빠와 엄마의 사이를 더욱 갈라놓는 원인이 되고있다. 그래서 아빠는 더욱 밖으로  돌게되며 엄마는 자녀들의 그 과열경쟁의 교육현장에서 혼자 진두지휘하며 온갖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그런 문화적 패턴은 이곳 미국의 한인 이민가정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빠들은 여전히 일에만 바쁘고 문화적으로 맞지않는 자녀들과의 정서적 결별상태에 빠져 있으며 엄마들은 건조한 이민문화에 재미없어 하며 자녀들의 공부에만 더욱 집착하는 역기능적인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인간심리의 발달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건전한 가정문화의 함양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과 격려를 받고자란 자녀들은 부모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 스럽게 자신의 삶에 책임을 갖고 살아갈수 있는 능력과 인격이 형성된다. 하지만 우리 한국인의 문화적 심리는 이와는 반대로 이미 건강한 결혼생활이 불가능해 진 부모들이 그래도 자녀양육에 대한 염원을 위해서 차선으로 선택하는 방법이 바로 교육적 물량공세이다. 아이들에게 더많은 공부를 시키며 더 많은 물질적 지원을 해 줌으로 인해서 인공적 지능이라도 갖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반드시 있어야 할 건강한 인성과 세상을 제대로 바라다 보는 성숙한 안목이 결여됨으로 인해서 자식들의 삶이 더욱 황폐해져가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는 데에 경각심이 요구된다. 하지만 지금 한국사회는 이 파국으로 치닫는 비인격적 교육의 급행열차를 제지시킬수 있는 방법이 마땅이 보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이번 새로 선출된 진보성향의 서울시 교육감은 이런 한국교육을 '미친경쟁'에 비유하고 있겠는가? 우리 모두의 책임 있는 자세가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