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로드 한인교회 김칠곤 목사
(Photo : ) 크로스 로드 한인교회 김칠곤 목사

봄철에 소나무가 많은 숲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곤충이 있는데, 그것은 솔나방의 애벌레인 '송충이'이다. 어릴때 기억으로 송충이가 소나무와 잎들 사이에 슬그머니 기어다 다니는 것만 보아도 소름이 짝짝 느꼈다. 그리고 그것들이 길을 걸어가는 곳에 있으면 그곳을 피해 지나 다닌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한 것은 송충이가 무서워서 라기 보다는 송충이에 달린 털과 많은 다리를 가지고 느리게 기어다니는 것이 징그럽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 송충이를 본 것이 수십 년 전 같았는데, 요사이 강아지를 데리고 집 근처의 정원에 가보면 온통 여기 저기에 송충이 투성이다. 강아지가 오줌을 싸기 위해 작은 나무들에 가까이 다가서는데 그때 마다 송충이가 눈에 보이면 강아지의 줄을 잡아 당겨 다른 곳에서 오줌을 누게 한다. 이러한 마음을 강아지도 아는 듯이 송충이가 길에서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곳을 보면, 그곳을 피해 간다. 그것을 보면서 사람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사람들처럼 피할 것은 피해간다는 것을 보게 된다.

송충이는 작은 나무이든, 큰 나무이든 상관 없이 기어다닌다. 그것들이 어디에서 서식하고 있는 지 어느날 유심히 살펴 보았다. 그것들은 누에처럼 포플러 나무의 가지에 듬성듬성 둥지를 두고 있었다. 송충이들는 그곳에서 거주할 뿐 아니라 알을 낳고, 이나무 저나무에 옮겨 다니며 나뭇잎들을 갉아 먹는다.

송충이가 포플러 나뭇잎을 먹는 것도 문제 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송충이가 지나간 포플러 나무에 달린 잎들이 검은색으로 변하게 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나뭇잎들의 색깔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계절마다 아름다움을 느낀다. 하지만 송충이가 지나간 곳에 나뭇잎의 색깔이 녹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 마음에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검은색은 죽었다는 것이며, 그곳에는 생명이 없다는 것 때문이다. 그리고 정원에 있는 나무들과 다른 식물들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것은 송충이는 포플러 나무 뿐 아니라 꽃을 피우는 식물들의 잎도 갉아 먹어 그것들에 흠집을 내기 시작하여 병들게 하는 것이다. 자연의 힘이 아니고는 송충이가 나뭇잎을 갉아 먹는 것을 방지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송충이가 나무들의 잎을 다 갉아 먹는 것을 정원사라면 그냥 두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무가 송충이로 부터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정원사라면 송충이를 제거하기 위해 나무들 마다 해충약을 뿌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무에 송충이가 너무나 서식하여 나뭇잎들이 다 죽었다면, 이미 나무의 몸통에도 해충이 서식하고 있다고 보아 병들은 나무는 잘라 내어야 한다. 병들어 있는 나무를 잘라 버리는 것은 다른 나무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어느날 아침에 강아지를 데리고 정원에 가보니 정원사가 몇 그루의 포플러 나무의 밑둥지만 남겨 놓고 잘라 버린 것을 보고 알게 된 것이다. 한 가지, 정원에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신기하게 바라본 것은 송충이가 진을 치고 나무들 마다 피해를 주고 다니는데 유독 송충이를 찾아 볼 수 없는 나무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향나무와 측백 나무이었다.

식물에 해박한 지식이 없는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잘 몰랐다. 하지만 내가 알 곳있는 향나무나 측백 나무들의 향이 다른 나무들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강한 냄새 때문에  송충이가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째튼 송충이는 숲속에서 자라는 나무들에게 많은 해를 끼치는 나쁜 해충이다. 그래서 송충이는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인간들의 사회에서 비유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송충이만도 못한 놈", "송충이는 솔 잎만 먹어야 한다." 전자가 말하는 의미는 함께하는 인간 사회에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극악무도한 사악한 행동을 한 사람을 비유하여 한 말이다.

이러한 사람은 벌레만도 못한 삶을 산다는  것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후자가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르지도 못할 나무는 쳐다 보지도 말아야 한다는 부정적인 의미이다. 이것은 자신의 분수를 알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부러워서 흉내 내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송총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다른 걸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이다."이솝우화 메뚜기와 당나귀의 이야기를 보면, "당나귀가 길을 가다가 메뚜기가 우는 것을 듣고 그것이 노래소리로 착각하여, 그 음악소리에 심취되어서 당나귀 자신도 메뚜기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연주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메뚜기에게 무엇을 먹어야 그렇게 좋은 노래를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메뚜기는 저녁식사로 오직 이슬만 먹고 산다고 대답했고, 메뚜기 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당나귀는 저녁마다 이슬만 먹고 결국은 죽었다.

당나귀는 메뚜기의 목소리가 부러워 메뚜기처럼 살아보려고 하다가 어리석은 죽음을 죽게 되었다. 당나귀의 어리석음을 보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성경말씀을 한번 생각해 본다면, 그 말씀은 고린도전서6:12절이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라"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사람들마다 '성공과 행복'이라는 가치추구를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행복은 사람들이 보는 눈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사는 삶과 나 자신을 비교하려고 한다. 그런 과정속에 사람들은 삶의 고뇌, 환희, 열정과 행복을 느낀다. 아마 이러한 관념은 어느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추구하는 성공의 한계가 정해지지 아니하였기에 인간은 끊임 없이 도전하려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꿈을 꾸는 세상이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힘들어지면, 사람들은 나의 일이나 나의 능력보다는 타인의 능력과 타인이 하는 일을 더 크고 좋게 본다. 그리고 항상 남들을 부러워하고 자신도 그들처럼 되고 싶어한다. 사람들이 꿈을 꾸거나 부러워하는 것은 죄가 아니며, 삶에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의 삶과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삶이 힘들어지고 쉽게 절망한다. 인간은 사랑하며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삶의 행복이다. 그런데 송충이와 같은 삶을 산다면 삶의 공동체에 미움, 다툼, 시기와 질투가 끊임 없이 도사려 사회적인 집단 공동체에 병이 생긴다. 사랑의 공동체의 근원은 가정이다. 이러한 가정이 물질문병의 발달과 반 비례 현상으로 가정에 점점 사랑이 식어져 가정이 극심하게 파괴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가정의 파괴는 나라와 국가의 파괴이다. 가정에 사랑이 식어져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정이 하나님 안에서 건강해야 한다. 가정이 건강하지 아니하면 송충이가 나무를 갉아 먹듯이 사탄이 가정을 병들게 한다. 이것을 위해 해충을 죽일 수 있는 하나님을 향한 강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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