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목사
(Photo : 기독일보) 민종기 목사

요즈음 사회에서 많이 회자되는 말 중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습니다. 프랑스어로서 “귀족은 의무가 있다”는 말입니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책임이 필수적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정신은 서구 세계의 굳건한 지도력의 형성과 사회발전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초기 로마시대 이후 왕과 귀족들이 보인 투철한 도덕성과 솔선수범이 이러한 정신에서 나왔습니다. 로마 사회에서는 고위층의 봉사와 헌신이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면서,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교량, 도로는 귀족의 재정지원으로 만들어 진 것이 종종 있었고, 전쟁이 나면 귀족이 먼저 나아가 나라를 지켰습니다. 로마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급격히 줄어든 이유도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형식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귀족층의 희생으로 로마는 고대 세계의 맹주로 자리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 가보면 사람 이름이 붙어있는 건물이 적지 않습니다. 도네이션의 나라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지난주에는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USC에 들렀습니다. 새 건물 게일른 센터(Galen Center)가 졸업식장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은행가로 성공한 사람인 루이스 게일른 부부는 2002년 USC 쿼터백 카슨 팔머가 하이즈만 트로피를 타면서 1억 달러를 기증하였습니다. 이후에 2억 5천만 달러와 1억 5천만 달러를 기증하면서 학교에 총 5억 달러를 기증하였습니다. 학교는 그의 이름으로 100년 숙원사업인 실내 체육관을 지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초등학교 동창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시신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옛날 초등학교 앞에 살던, 나에게 짓궂게 장난치던 그리운 친구 승진이의 슬픈 소식을 그렇게 들었습니다. 자신의 구명대를 내주고 학생들을 구하다가 죽어간 많은 교사나 친구의 삶이 귀하기만 합니다. 이들의 책임감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교사를 상류층이라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회가 교회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요구한다 생각지는 않습니다. 교회는 귀족이나 특권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종이 주인처럼 행동한다든가, 머슴이 주인노릇을 한다든가, 주인이 시키지 않은 일을 행하면 문제가 됩니다. 그 종노릇(servanthood)은 주님의 주권의식(Lordship)과 주님과의 친밀함(familiarity)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신자에게 필요한 영성(spirituality)의 핵심이며 우리가 추구하고 잃어버려서는 아니 될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