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순호 목사(전 미국 장로교회 중서부지역 한인교회 총무)
(Photo : ) 현순호 목사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친척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로 문안을 주고 받자 그곳으로 한번 놀러오란다. 내친김에 동생처럼 지내는 김 장로에게 문안했더니 “아이구 형님, 제가 금년 여름에 꼭 한번 찾아가 뵙겠습니다” 한다. 사람 사는 맛이 이런데 있는가 보다.

강퍅한 세상에서 나를 오라는 곳이 있으니 신바람이 나고, 또 자기의 생활에 얽매어 눈코 뜰새 없이 뛰는 세상에 별볼일 없는 나를 멀리까지 찾아오겠다니 행복해진다. 만나서 내 마음을 활짝 열고 할 말 못 할 말 다 쏟아놓고 싶고 또한 그분 나름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어주고 싶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곳에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된장찌개에 김치 한 가지를 곁들어 먹어도 꿀맛이고, 그 옛날 가난하고 고달팠던 시절에 죽지 않고 오뚝이처럼 살아남은 강인함이나, 오늘 미국에 와서 힘차게 사는 과정을 울고 웃으며 밤을 지새우고 싶다. 문제는 내가 그곳으로 가느냐, 아나면 그분이 내게로 오느냐이다. 우리 집으로 오면 며칠간 시간을 내고 숙식은 우리집에서 해결하고 내 자동차로 운전해서 관광을 하면 된다. 그러나 내가 집을 떠난다고 할 때는 따라오는 문제가 많다. 우선 여행 비용 문제다. 그곳까지 가는 우리 부부의 비행기 값이 만만치 않고 또한 오래간만에 가는데 빈 손으로 가겠는가! 게다가 여행은 피곤하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2시간 전에 가서 긴줄을 따라 짐을 부치고 안전 검색대를 지나 탑승구까지 가는데 고생이 좀 된다. 좁은 비행기 안에서 몇 시간 고생도 되지만 내려서 짐을 찾는 일 등, 쉬운 일이 아니다. 특별히 신경 쓰이는 것은 내가 몸 담고 있는 교회. 몇 가족이 모이는데 우리 부부가 빠지면 텅 빈것 같을 것이고, 또한 더욱 나를 붙잡는 것은 며칠에 한 번씩이라도 같이 놀아주는 손자 손녀들을 떼 놓고 여행하는 것이 무슨 죄라도 짓는 것 같기도 하다. 더욱이 나는 잠자리를 옮기면 제대로 못잔다. 그래서 어디를 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손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찾아가 뵙는 것이 동양의 전통이지만 지금은 어디 윗사람 아랫사람이 따로 있는가? 찾아 갈 조건이 되면 먼저 찾아가면 된다.

예수님은 이런 문제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셨다. 그분은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가셨다. 삶에 쪼들리다 지친 사람들, 무서운 전염병으로 인해 가족과 격리되어 외롭게 사는 사람들, 불치병으로 고통 당하는 환자들, 세상에서 천대받는 세리와 창녀, 과부와 고아들을 만나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영생의 말씀을 전하며 복되게 사는 법을 가르치셨다.

나는 다짐한다. 새로 친구를 삼는 것도 좋지만 옛 친구들을 놓치지 않으리라. 내가 먼저 연락하고 따뜻한 정을 나누고 ‘한번 놀러오세요’가 아니라 ‘내가 한번 찾아가겠습니다’라고 하리라. 만나서 하고 싶었던 말의 보따리를 풀어놓고 까무러치게 웃고 울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더욱 앞으로 억세게 그리고 만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자고 새롭게 마음을 다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