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민 목사
(Photo : ) 엄영민 목사

지난 월요일 초에는 총회 관련 일로 동부에 갈 일이 있어 아침 일찍 존웨인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출발하기 전 동부에 계신 목사님과 연락을 해 보니 눈이 좀 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최근 동부에 강추위와 눈보라가 잦아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일단 비행기를 탔다. 그런 후 마침 비행기 안에서 동부 쪽의 날씨 정보를 보았는데 기상예보를 하시는 분이 두꺼운 눈코트를 입고 모자를 뒤집어 쓴채 눈이 계속 와서 쌓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 번 주 안에 미 북동부 지역에 세 번의 눈폭풍이 더 예보돼 있다는 것이었다.

조금씩 불안해졌다. 눈이 이렇게 많이 오면 공항에 마중나오실 분은 제대로 올 수 있을지 또 총회 일로 여러 사람을 만나야 하는 데 다닐 수는 있겠는지 염려가 되었고 교회 사역 일정도 꽉 잡혀있어서 정확히 일을 마치고 속히 돌아와야 하는데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염려하는 가운데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콜로라도 덴버에 내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모니터에서 동부로 갈 비행기의 일정을 살펴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동부로 갈 우리 비행기가 눈으로 캔슬되었다는 것이었다. 우리 비행기뿐만 아니라 그 쪽으로 가는 비행기들이 줄줄이 출발이 지연되거나 캔슬되고 있는 중이었다. 동부에 연락을 하니 다른 공항으로라도 가능하면 꼭 오라고 하셨지만 그러기도 쉽지 않을 것 같고 아무래도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그래서 동부의 일을 다른 분에게 맡기고 부득이한 일은 전화로 의논하기로 하고 바로 그 길로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찾아보았는데 다행히 두어 시간 후 오렌지카운티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있었다.

해야 할 일이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날씨 걱정 없는 집으로 가는 길이라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오는 길에 옆에 탄 미국 부부는 아들을 데려다 주러 콜로라도에 다녀가는 길인데 5일 동안 내리 눈이 와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가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좋은 곳도 많지만 오렌지카운티가 단연 최고란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정말 좋은 곳에 사는구나 싶었다. 오렌지카운티공항에 도착하니 푸른 하늘 환한 태양에 외투가 필요없는 온화한 날씨가 친숙하게 느껴진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나를 마중해 주기로 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오는데 눈이 와서 사방이 난리고 택시 기사조차도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돌아오기로 예정되었던 수요일에는 다시 전화가 와 밤새 눈이 쌓여 꼼짝도 못하고 눈치울 걱정이 태산같단다. 필라델피아에 사시는 총회서기 목사님은 하루가 넘게 정전이 되어 추위에 불도 없이 지내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덴버 쯤에서 돌아오기를 너무 잘했던 것이다. 오렌지카운티에 살면서 가끔은 겨울을 그리워 한 적이 없지 않았다. 흰눈이 보고 싶고 코끝이 쩅하는 겨울 추위가 그립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그런 호사한 생각일랑 접어 버리기로 했다. 사시사철 꽃이 만발하고 언제라도 푸른 바다를 볼 수 있고 한 겨울에도 눈부신 태양이 빛나는 이 곳 오렌지카운티에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 우리를 푸른 태양의 도시에 살게 하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