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효 목사
(Photo : ) 장재효 목사

온유란 말의 뜻은 따사로울 온(溫), 부드러울 유(柔)를 사용하여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의미입니다. 이 온유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한 모습으로 겸손이라는 말의 표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겸손은 자기 자신이 손을 모으고 상대방의 지시에 절대 복종하는 의지적인 굴복을 말합니다.

온유는 영어로 gentleness(젠틀니스)라고 하는데 이것은 신사적인 성품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신사적인 성품은 불의나 악의, 억지가 전혀 없고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은혜 받고 구원 얻기 위하여 신령한 소망의 복을 얻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세 중에 온유해야 한다고 하신 이유는 거역하기를 일삼았던 마귀들에게 오랜 세월을 붙잡히고 이끌려오느라고 마귀의 강퍅한 성질이 우리에게도 많이 길들여져 왔기 때문입니다. 목이 곧고 완악하고 강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척하게 되는 태도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의 인연을 원하지 않는 태도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은 길을 동행할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 되기 위해 온유한 성품으로 진리의 도를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 승리하는 성도의 반열에 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의 뜻에 참여하고 복종할 수 있는 온유한 성품을 갖추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절대자로 알게 되고 그분의 절대적인 명령에 개인적인 이유나 변명, 불평을 하지 않고 복종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 뜻에 순종하고, 복종한 결과는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고 결국엔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보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유하라’는 권면의 말씀을 듣기 전에 목자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아멘으로 받아들였고, 아멘한 그 말씀을 실천하는 삶으로 순종하여 왔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무엘하 16:11-14에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다윗과 그 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저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더라 왕과 그 함께 있는 백성들이 다 곤비하여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하신 말씀 속에서 여러분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윗이 아들인 압살롬에게 반란을 당했습니다. 열 여섯명의 아들 중 용모는 빼어났지만 절름발이였던 그는 그의 형제들을 죽이고 왕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대군을 일으켜 예루살렘을 쳐들어갔습니다. 압살롬이 아비인 다윗을 죽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고 있다는 소리를 전해들은 다윗은 신발 신을 여유도 없이 뒷문으로 빠져나와 도망을 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밧세바로 인해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선대 왕인 사울의 집 족속 중에 시므이라는 사람이 그것을 보고 즐거워했습니다. 사무엘하 16:5-8을 보면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집 족속 하나가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저가 나오면서 연하여 저주하고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고 말하며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다윗이 생각할 때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자가 왕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를 했습니다. 그때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그 말을 들으면서도 취한 태도에 온유라는 말의 뜻을 깨닫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했습니다. 하나님이 시므이를 시켜 자기 죄를 생각나게 하고 그 죄를 근본적으로 회개하도록 섭리하시는 뜻으로 다윗은 받아 들였습니다. 다윗의 태도와 회개를 통해 하나님은 다윗이 다시금 왕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일 다윗이 그의 성질대로 시므이를 죽이라고 명했다면, 그의 왕권은 되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온유함이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받아 놓은 자기 자리를 다시 되찾게 보장받은 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 땅은 하나님이 온유한 자의 몫으로 예비해 두신 조건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자기의 몫을 보장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제왕의 자리에 있으면서 보잘것없는 자가 저주와 악담을 퍼붓고 돌을 던져도 하나님이 자신을 향해 하시는 영적 교훈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참으로 지혜 있는 자였습니다.

죄를 거짓말로 피하려 하고 남에게 전가시키려할 때 죄는 점점 더 그 사람의 숨통을 죄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지은 죄를 충분히 깨닫고 뉘우침으로 죄로 인한 결과를 책임지려고 회개하고 고백하는데 어찌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겠습니까!

사도행전 7:54-58을 보면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했습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고 한 스데반의 설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드러내는 설교였습니다. 만약, 설교를 듣고 있던 청중들이 아멘으로 그 말씀을 받아 들였다면 스데반의 설교는 많은 영혼을 회개시키는 성과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양심의 가책은 느꼈지만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이를 갈았다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는 자신의 고통은 생각지 않고 주님이 자신의 영혼을 받아들이시기 위해 팔을 벌리고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믿음의 궁극적 소망을 그는 눈으로 확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하고 돌로 자신을 때려 죽이려 했던 자들을 위해 무릎을 꿇고 “주여 이 죄 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했습니다. 스데반의 이런 모습이 온유입니다.

이 온유라는 것은 혈기나 감정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데반이 보여준 온유의 모습은 다윗이 자신의 죄를 근본적으로 회개하기 위하여 온유의 성품을 보인 것과는 달리 자신을 순교의 제물로 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그 뜻에 순순히 복종하는 자세입니다.

디모데후서 4:14-18에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1,2,3차 전도여행을 한 과정을 볼 때 환영과 대접, 사랑과 존경을 받은 적도 많지만 말할 수 없는 고충도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리로 물건을 만들어 파는 알렉산더라는 자가 바울에게 많은 해를 입혔으나 바울은 그에게 직접 원수 갚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사명완수를 위한 사도 바울의 인격적 온유함이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고 고백합니다.

로마서 12:17-21에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하셨습니다. 스스로 원수와 부딪혀 해결을 보자고 싸우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그 모든 상황을 맡겨드리고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죄인이 의인으로, 하나님 자녀 되기 위한 과정에서 온유가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은 다윗의 철저한 회개를 위한 온유함과, 스데반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으로 그 뜻에 순복하는 슬기로운 온유, 그리고 사도 바울이 원수 갚는 것을 온전히 주께 맡기는 온유함으로 승리하는 지혜를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위해 예비하신 조건을 얻을 수 있도록 보장해 주신다는 사실을 온유한 믿음으로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