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헬레니즘과 유다이즘에 대한

상반된 견해

서승원 목사
(Photo : ) 서승원 목사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유다이즘과 헬레니즘에 대한 단편적이거나 그릇된 견해를 일일이 다 예거하자면 아마도 끝이 없을 것이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은 오해나 단편적인 견해들이 비단 문외한이나 비전문가들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전문가들에게도 존재해 왔다.

예를 들면 한 때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친 바 있는 <희랍사상과 비교한 히브리사상>의 저자 보만(Boman)은 희랍사상의 특색이 정적인 반면에 히브리사상의 특색은 동적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런가 하면 19세기의 유대인 사상가 데이비드 루짜토(David Luzzato: 1800-1865)는 보만과는 달리 유다이즘은 본질적으로 정적이고 불변하는데 반하여 헬레니즘은 동적이고 진보적이며 끊임없이 신기(novelty)와 혁신(innovation)을 추구한다고 말한 바 있다. 왜 이런 상반된 견해들이 존재하는가? 그것은 아마도 헬레니즘과 유다이즘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어느 한 면 또는 일부분만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헬레니즘과 유다이즘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사상이 역사적 초기단계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되었는가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헬레니즘과 유다이즘의 특색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헬레니즘과 유다이즘이라는 말들이 뜻하는 바에 대해서도 학자들 간에 의견의 일치가 없다는 것이다.

3. Hellenism과 Judaism이란 말의

유래와 뜻

1) Hellenism

먼저 헬레니즘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필자는 지금까지 헬레니즘이란 말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고 고대 희랍의 사상과 종교 그리고 관습을 포함한 고대 희랍문화 일반을 지칭하는 뜻으로 사용해 왔는데, 엄격히 말하자면 헬레니즘이란 말은 BC 8-2세기에 걸친 고대 희랍 전체가 아니라 헬레니스틱시대 즉 BC 323-30에 있어서의 문화일반을 가리킨다. 헬레니즘을 이런 뜻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19세기 독일의 문화사가 드로이젠(Droysen)이며, 그의 이러한 견해는 제2 마카비문서 3:13에 근거한 것이다.

이 책에서 헬레니즘은 알렉산더대왕과 그 후계자들에 의해서 전파된 희랍의 종교, 사상 그리고 풍물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안티오커스 4세의 유대인들에 대한 억압과 학정 그리고 불경한 행동을 정죄하고 이에 대항한 마카베우스와 그 형제들의 항거를 정당화하고 찬양하기 위해서 쓰인 책이므로 당시의 헬레니즘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일 것이다. 드로이젠은 제2 마카비문서의 견해를 따라서 헬레니즘을 좁게는 “희랍언어와 사상의 영향을 받은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을, 넓게는 “알렉산더에 의해서 정복되고 희랍의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로 정작 이 말이 내포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불트만 이후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고 또 <유다이즘과 헬레니즘>의 저자로서도 잘 알려진 마틴 헹겔(Martin Hengel)은 이 책 후에 쓴 <그리스도 이후 1세기 유대에 있어서의 헬라화>라는 이름의 소책자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 말은 역사와 고대의 연구 분야에서 무엇보다도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과 그 뒤를 잇는 희랍-마케도니아 지배에 의해 촉진된 새로운 문명, 다시 말해 희랍 언어, 희랍적 생활 그리고 사고에 의해서 형성된 문명을 기술하는 데 사용된다.

이 복합적 과정은 제국의 동방에서 AD 4세기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치하에도 계속되었다. 길리기아, 코마게네, 북 메소포타미아, 포에니키아, 유대와 팔레스타인 그리고 나바테아의 아라비아 등을 포함한 시리아에서는 이 발전이 로마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한편 불트만의 제자로서 은퇴하기 전까지 Harvard에서 가르쳤고, 기독교 초기의 배경을 다방면으로 다룬 두 권으로 된 신약개론의 저자로서 널리 알려진 헬무트 쾌스터(Helmut Koester)의 드로이젠이 헬레니즘에 부여한 의미에 대한 이해는 행겔의 그것과는 달라 보이며, 또한 이 말에 부여된 의미에 대해서도 만족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드로이젠 이후로 헬레니즘이란 말은 그 본래의 뜻과는 달리 희랍문화와 동방문화의 혼합(amalgamation)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학계는 보다 신중하다. 한편으로 알렉산더 이전 즉 헬레니스틱 시대 이전에도 수세기에 걸쳐 희랍과 동방 간에 활발한 교류가 있어왔다. 희랍식민, 희랍의 경제력의 팽창, 그리고 특히 이오니아 지방의 희랍인들에게 있어서 밀접한 문화적 접촉은 오래 전부터 희랍적 요소들과 비희랍적 요소들 간에 다양한 결합이 이루어져 왔는데, 이것은 특히 희랍 본토 밖에서 그러하였다. 만일 이 과정을 헬레니즘이라 한다면, 이 용어는 BC 4세기 후반에 시작된 어떤 특정한 시기를 가리키는 데는 적합치 않다.

위의 두 예는 헬레니즘이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헬레니스틱 문화 (Hellenistic Civilization, 1974)의 저자들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문화사가들인 탄(William Tarn)과 그리피스(G. T. Griffith)가 이런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현대에서 헬레니즘은 무엇을 뜻하는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희랍적 요소와 동방적 요소들이 혼합된 새로운 문화를 뜻하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이전의 희랍문화의 순수성의 계속을 뜻하며,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동일한 문화이나 새로운 여건에 의해서 얼마간 변형된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견해들은 옳기는 하나 전적으로 옳지는 않다. 그래서 이런 견해들은 세부적인 데에 이르면, 예를 들면 헬레니스틱 시대의 수학은 전적으로 희랍적이지만 그 자매학문인 천문학은 희랍과 바빌로니아의 공동작품이라는 사실에 접하면 이러한 견해들은 타당성을 상실한다.

올바른 이해에 이르려면 현상 전체를 보아야 되는데, 헬레니즘이라는 말은 희랍문화가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그 영향을 미친 3세기 동안의 문명을 지칭하는 편리한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모두를 포함하는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와 같이 헬레니즘이란 말을 헬레니스틱시대(BC 323-30)의 희랍문화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학자들도 있으나 이와는 달리 고대희랍문화 일반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필자도 이 말을 고대희랍문화 일반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