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효 목사
(Photo : ) 장재효 목사

▷본문: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예수님이 다메섹 도상에서 다메섹의 믿는 사람들의 명단을 가지고 때리고 죽이고 가두려고 가는 사울을 만났을 때 그 사울에게 “나는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쓰기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대적하고 잘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박해하며 때리고 옥에 가두고 죽이기도 한 사울이 예수님의 한 마디에 녹아졌습니다. 그러나 눈은 멀어 장님이 되고 갈기를 누군가에게 도움받아야 하는 상황에 접했을 때 3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자신의 모든 것은 끝이 났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눈이 멀었으니 사물을 볼 수도 방향을 알 수도 없고 자기 처지도 상황도 전혀 분간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지금까지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최고학부를 공부했고 말 잘하기로 소문난 젊은이가 꿈이 꺽이는 끝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네가 설계한 네 인생과 꿈은 이제 끝이 났고 내가 너를 네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게 했고 자라게 했으며 예루살렘에 유학을 와서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율법에 정통한 학업을 이루어 가게 한 것도 너를 쓰기 위한 내 그릇 삼기 위한 것이라”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울에 대한 지상명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시켜서 사울에게 안수하게 하실때에 눈에서 고기비늘같은 것이 쏟아지며 성령이 충만히 임하시니까 그가 갑자기 일어서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추켜들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그간 믿는 사람들을 잡아 헤치며 예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고 복음을 훼방했던 그가 갑자기 그리스도인으로 바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행9:20)한 이후로 96살에 순교하기까지 그의 평생을 세계선교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릇으로 쓰임받았습니다. 그는 유럽문화의 불을 지폈으며 세계선교의 기틀을 닦고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들면서 복음의 제물되는 생애로 살다 순교했습니다.

요긴히 쓰임 받기 위한 조건 - 회개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이 지옥 가는 것을 두고 보실 수 없어서 택하시고 진리의 교회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진리를 듣고 깨닫게 하시고 성령의 감동으로 믿어지게 하실 때에 회개가 터져 나오기 마련입니다.

회개운동(Repent Movement)은 지금까지 자기가 방향을 설정하고 자기 꿈을 설계하면서 그 꿈을 실현해보고자 노력하며 애를 쓰며 가던 그 길을 하나님을 향하여 방향전환 하는 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 인생은 지금까지 자기인생을 자기 멋대로 설계하고 자기 꿈을 성취해 보자고 애썼던 모든 것들이 너무나 어리석고 허황된 것이었고 부질없어 물거품 같은 수포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목적과 기대에 합당하게 살아드리는 것이 인생을 예수님 안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사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회개는 필연적으로 누구에게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도 온전한 회개가 되지 않아 성도가 되지 못하고 교인으로 교회만 오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모든 피조물을 통하여 자기 뜻을 이루어 가시는 그릇으로 사용해 가시는데, 그 중에 저와 여러분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쓰실 계획이 있으셔서 나게 하신 줄 깨닫고 믿으셔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면서부터 내 맘대로 살 수 있는 인생이 아니고 목적을 두고 쓰실 계획가운데 나게 하신 그분과의 만남과 그분의 뜻을 깨닫고 그분에게 합당히 쓰임 받는 것이 그 인생을 나게 하신 하나님 앞에서 가장 소망적이고 성공적으로 사는 인생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긴히 쓰임 받기 위한 조건 - 진리의 깨달음

본문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후메내오와 빌레도라는 사람이 있어 거짓 교리를 가지고 교회 안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치는 일에 선동하고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이에 바울은 “너는 저희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니라(딤후2:14)” 했습니다. 이단은 교회 안에 침투해서 사람이 듣기 좋은 말로 부추기며 꾀어냅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주머니를 노립니다. 이단사슬이라는 것은 듣는 사람들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노략질해서 지옥에 떨어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19절에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찌어다 하였느니라” 합니다. 이단에 휩쓸리는 영혼들은 믿음이 파선되고 독한 창질이 썩어져 가는 것처럼 그들에게는 멸망이 서둘러지고 있는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진리의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를 말합니다.

즉 마16:16에서와 같이 하나님을 알아보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신 은혜를 믿음으로 지옥갈 수 밖에 없는 저주스러운 형벌의 죄악을 회개만 하면 용서받는 것이 복음의 진리인 것입니다. 19절에 ‘인침’은 사인(Sign)이나 인감 도장을 찍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헬라어 원어에는 ‘스파라기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 인감도장 찍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음과 동시에 그 사람은 하나님의 ‘스파라기스’, 인침을 받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을 받은 사람은 아무리 이단사설이 그럴싸하게 접근하여 선동하고 충동질해도 절대 동요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터 위에서 회개하고 거듭나 성령으로 인감 도장 찍어 놓은 영원한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요 10:28-30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내세에 대한 소망의 확신을 가지고 온전히 믿어 성령 받음으로 하나님의 인침을 받아 어떠한 환란과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생명싸개로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요긴히 쓰임 받기 위한 조건 - 자아를 내려놓음

하나님은 우리를 어디에 어떻게 쓰시려고 나게 하시고 택하여 쓰시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쓰임받기를 기대하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그릇으로 보시고 계시느냐를 신경 써야 합니다.

20절에 있는 “큰 집에는” 하늘 소망 가꾸는 신앙인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를 말합니다. 그곳에는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이 있는데, 그 그릇 중에는 귀히 쓰는 그릇도 있고, 천히 쓰는 그릇도 있다고 합니다. 아마 금그릇에 된장을 담아 먹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나님 뜻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를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쓰실 그릇으로 기대하시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시는 용도적 기대에 쓰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하면 하나님의 쓰시는 계획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9절 하반절에 보면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찌어다 하였느니라” 하심은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릇이 깨끗해야 무엇인가를 담아 쓰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릇이 더럽고 때가 묻어있다면 그 그릇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21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하십니다.

“선한 일”은 하나님 뜻을 이루는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 뜻을 이루는 일에 요긴히 쓰임받자면 자신이 금그릇 되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금그릇은 자기 가치로 행세하려고 들기 때문에 남들로부터 대접받기만 좋아합니다. 혹여 부잣집에 금그릇이 있어도 그것이 귀해 아무 때나 쓰지도 못할 것이고 아무데나 놔두지 못해 금고에 넣어 둘 수도 있습니다. 금그릇은 그릇의 용도보다는 존재가치에 의미를 둔 것입니다.

모두가 섬겨야 할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자기를 낮추어 질그릇처럼 사용 받더라도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자신을 깨끗이 하여 절대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죄악에 찌들지 않고, 성별된 생활을 통하여 자신을 깨끗이 간수하면서 하나님 앞에 “원하시는 대로 써 주시옵소서. 계속 주님의 손에 붙들리어 어떤 일로든지 쓰임 받는 요긴한 그릇되기를 원합니다”하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귀한 그릇은 자기가치 때문에 천한 일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스스로 자기 가치를 높여놓고 주님이 쓰시겠다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귀한 그릇이 아닌 요긴한 그릇이 되기를 원합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하여 계속 쓰임받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천국 건설과 확장을 위한 일에 엄청난 공적을 쌓는 일이 될 것이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 천국 문에 들어설 때에 예수님이 두 팔 벌려 품어 안으시며 “내가 너를 통하여 내 나라가 크게 확장되었으니 내 영광에 참예할지어다”하시도록 우리 모두 귀한 그릇이 되기보다 요긴한 그릇으로 쓰임받기를 힘쓰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