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선 소장
(Photo : 기독일보) 아시안 약물중독 치료서비스 이태선 소장

오랜 알코올리즘에 빠지게 될 때 음주자의 성격과 가치관에 혼란이 오며 사물과 현상에 대한 건강한 판단이 어려워지고 오직 자기중심적 편견에 매몰되는 것이 일반적인 증상이다. 그래서 이 잘못된 술 남용과 의존성의 관습이 만연되어 있는 우리 한국사회가 걱정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도 편견과 감정적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비논리적이고 비상식적인 행위들은 다름 아닌 오랜 알코올 남용에 젖어 사는 기성 정치인들의 알코올리즘이 자아내는 모순으로 판단된다. 밤이면 밤마다 질펀한 가무와 향응에 젖어 사는 사람들은 그 다음날 아침, 멀쩡한 이 성력을 갖고 판단하기에는 불가능하다. 심신이 피곤하고 지쳐있기 때문이다.

단지 자신들의 집단과 함께해야 된다는 단순한 의리심리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다. 일의 공과 사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시국사안에 대처하는 야당의 행태가 참 걱정스럽다. 정작 국회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툭하면 거리로 들고 나와 천막을 치고 시민들에게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자신이야 말로 이 시대 민주주의 선봉에 서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는 야당총수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혀를 차고 만다.

오랜 알코올리즘으로 인해서 정신적 성장을 멈춘 미성숙한 자아가 뭉뚱그려져 만들어 내는 자기고집들이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종북세력들의 정계 진출이라든지 고위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정치중립등의 심각한 실종현상을 바라다보는 국민들의 허탈감과 위기감을 제대로 읽지 못하며 단지 사안을 빌미로 반정부 공세만 펼치려 하는 야당 정치집단들의 심리는 너무도 치졸하고 비열할 정도이다.

한편 한국사회에는 갑(甲)과 을(乙)의 전쟁이 시작 되었다. 전통적으로 그 사회에서는 갑(甲)과 을(乙)의 서열은 언제나 존재했고 사람들은 갑(甲)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 모두가 안간힘을 쏟고 살았다. 일단 한번 갑(甲)의 반열에 오르기만 하면 사람들은 알아서 갑(甲)과 을(乙)의 관계에 순응하며 생존하려 했다. 그리고 법의 테두리 밖에서 존재하는 갑(甲)의 권한은 관행이라는 틀 속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하며 을(乙)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을(乙)은 갑(甲)의 횡포를 무조건 용인하지는 않게 되었다. 민주주의 필(Feel)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통적 관계는 부메랑이 되어서 우리사회 최고의 갑(甲)으로 군림했던 정부를 을(乙)의 위치에 있던 국민들이 이제 무조건 믿지 않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둘 사이를 사사건건 이간질하며 정권투쟁을 일삼는 야당의 심리는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한 집안에 알코올리즘이 존재할 때 자녀들은 정신적 성숙이 어렵게 된다. 그리고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에 미성숙한 어린아이의 심리가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끝없는 불만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자신의 성공은 단지 사람들로 부터 인정받을 때라고 믿게 된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극단적 발언과 행동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려 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튀고자 하는 심리에 빠진다.

인기와 권력은 사람의 진정한 행복과 전혀 무관한 한순간의 쾌락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감추고 그저 인기만을 누리려 하는 심리는 점점 더 스스로를 공허하게 만드는 인간의 기본적 심리임을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대중으로 부터 인기를 얻고자 노력하는 데에 아까운 인생을 탕진해 버리고 만다. 젊은이들은 화려한 스팩과 준수한 외모를 통해서 인정받으려 하며 기성세대는 돈과 권력을 통해서 사람들을 굴복시키려 한다.

하지만, 당장 자기 주변의 지인으로 부터도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인생을 헛살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내면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술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음주 남용의 문화가 대물림하는 악순환이다. 이제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술을 절제하거나 완전한 단주를 실천하며 건강한 정신과 가치관을 함양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오늘 불만족스런 세상에 만족스럽게 대처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