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 목사
(Photo : ) 고승희 목사

너는 내 아들이라. 우리가 누구의 아들이냐는 것은 우리의 삶에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부모님의 영향력은 자녀들의 삶을 결정하게 됩니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과 같다고 시편 127편은 말합니다. 즉 자녀들의 삶이 목표에 도달하게 되느냐, 목표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가는 부모에 의해 결정됩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영향력을 받을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에 대한 미움, 원망, 아픔을 가지고 고통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청소년들에게 물었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0-20% 정도 밖에 안됩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가지고 성장해 갑니다.

어떤 집사님은 형과 비교하며 자신을 무시한 아버지를 용납하기 어렵다고 고백합니다. 이혼하자며 서로 동생을 던지며 “네가 키우라”고 싸우는 부모님을 지켜보면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눈물 흘리던 집사님도 계십니다. 동네에서 싸우다 코피를 흘리며 울고 들어가자 아버지가 “사람구실 못할 것이니 자식 하나 더 낳자”는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꼽혀 평생 아버지 얼굴을 보지 않고 살았다는 집사님의 간증도 들었습니다.

제가 잘 알고 있는 환갑을 넘긴 목사님은 자신을 낳은 아버지를 너무 싫어하기에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라 부르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부모님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사람이 회복될 수 있는 길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바보 온달처럼 부모에게 바보 취급 받았지만 평강 공주가 시집와 위로와 격려로 세워주었을 때 그는 고구려를 위기에서 건져낸 역사에 길이 남는 장군이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배우자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기에 배우자를 통하여 위로를 받고 회복을 받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어려움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서로 분노하며, 헛된 일을 구하며, 서로 잘난 것처럼 나서며 서로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게 됩니다. 부부 관계마저 무너질 때 이 땅에서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거절되고 배우자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아 무너진 인생이 회복될 수 있게 됩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길입니다. 부모님보다, 배우자보다 더 소중한 분이 내 인생에 나타나면 됩니다.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에서 부모님보다, 배우자 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되셨으며 그 분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어주셨다면, 또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그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도록 사랑하셨다면 나는 존귀한 존재가 됩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할렐루야! 복음 중에 복음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면 이 선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언제 하나님의 아들이라 선언되어집니까? 광야에서 복음을 외치던 요한은 침례를 받기 위해 나오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쳐주실 때 바리새인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으로 귀신을 좇아낸다고 생각하고 있던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마 12:34]

사람은 독사의 자식으로 불려지기도 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불려지기도 합니다. 언제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아도다 라고 말씀하십니까?

요한복음은 말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오늘 너를 낳았도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삭개오가 그랬습니다. 돈을 벌어보겠다고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더라도 세리가 되었습니다. 돈을 벌었지만 그는 죄인의 대명사요, 어느 누구도 그와 마주 앉아 식사 한 끼도 하지 않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 주님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하고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과 나누겠다고 할 때 주님은 네가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혈통상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그가 이제 다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너를 낳았다도 하는 말씀이 삭개오에게 응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집을 떠났던 탕자도 그랬습니다. 그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잃어버린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너는 여전히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잃어버렸던, 죽었던 아들을 다시 얻었다고 말씀하십니다.[묵 15:32]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는 말씀이 그에게 응하였습니다.

마태복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5: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아들이 아버지 모습을 나타낼 때 너는 과연 내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이신 하나님의 모습을 닮았을 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내 생각과 내 뜻을 꺽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결단하는 날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오늘이 바로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고 말씀하는 날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를 낳았다고 합니다. 믿음 안에서 참 아들이 되었다고 합니다.[딤전 1:2] 바울은 오네시모를 향하여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닮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처럼 그들도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아들에게는 권한과 의무가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며 순복하여야 합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아버지의 권세와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농장 주인의 아들이 자신보다 힘이 센 일꾼들을 부리는 것은 아들이라는 권세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들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것도 있지만 거기에는 특별한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해결책(대안)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 때에,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여호와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대적할 때 결박을 벗어버리자고 할 때 하나님이 비웃으시며, 진노를 발하사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있습니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세울 것이다가 아닙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일입니다.

요셉과 모세는 피라밋을 세우던 이집트의 교만을 꺾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이집트가 세상을 다 지배하는 듯한 권세를 부릴 때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자신을 향하여 대적하는 이집트를 향한 놀라운 계획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으로 포로 잡혀 갔습니다. 바벨론 왕을 섬기기 위해 환관이 되었지만 그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바벨론을 대적할 세력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일 때 하나님의 계획은 다니엘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오늘 너를 낳았도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자신을 대적하는 바벨론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렇습니다. 로마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때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은 요단에서 침례를 받고 올라오는 예수님을 향하여 내 기뻐하는 아들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이었고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큰 영광을 받았습니다. 오고 가는 모든 세대 가운데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크신 영광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둠이 세상을 주관할 때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놀라운 계획이었습니다. 이를 통하여 이방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경외하며 하나님을 섬기며 즐거워하게 됩니다.

진화론이 일어나고, 공산주의가 새로운 사상의 물결로 밀려오고 존 듀이의 실용적 가치가 있는 것만을 교육하겠다는 교육 사상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은 연약하고 부족한 자들을 내 아들이라 말씀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미국의 대각성 운동을 주셨습니다. 타락한 세상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비밀한 계획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일은 아브라함을 세우시는 일입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해야 하는 일들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구하라 !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며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아들을 통하여 세상의 군왕들이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이 교훈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시편 1편이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다면 시편 2편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둠이 관영하는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세상의 빛이 되는 아름다운 삶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끊어버렸습니다. 말씀의 굴레를 벗어버렸습니다. 그것을 자유라고 말합니다. 동성연애도 그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주장하도록 할 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구하라. 철장 권세를 줄 것이다.

시편 2:1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2:3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2:4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2: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2: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2: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2:9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2: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2: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2:12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