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왜 사울을 버리셨는지 그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다윗을 선택하셨을까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우리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미 지난주에도 읽었던 사무엘상 16장 1절에서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새의 아들들 중 한 사람을 왕으로 이미 예선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선했다는 말은 미리 선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십니다. 분명한 것은 무조건 선택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눈 감고 아무나 걸려라 하는 식으로 선택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뜻을 가지시고 선택하십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위해 선택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선택에 관한 여러 말씀들이 나옵니다. 그중 고린도전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가능한 한 지혜로운 사람, 강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 있는 사람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반대로 미련한 사람, 약한 사람, 천한 사람, 멸시받는 사람, 없는 사람들을 택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9)”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의 예대로 지혜롭게 능력 있는 어떤 사람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저 사람을 선택하신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럴만한 조건이나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놀랍게 감당하면, 우리는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능력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목적과 뜻을 가지시고 우리를 선택하십니다.
예수님 이후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예수님을 닮은 사람을 한 사람 꼽으라고 한다면 많은 교회역사가들은 이태리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를 주저하지 않고 꼽는다고 합니다. 그에게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이처럼 기적을 통해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광을 나타내고, 선생님을 만나기만 하면 사람들이 변화되는 이 놀라운 사역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프란체스코는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셨습니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이 땅 한 구석에서 가장 약하고, 가장 무식하고, 가장 미련한 한 사람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를 한참동안 바라보시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저 사람이다. 저를 통해서 나의 강함과 지혜로움과 능력을 나타내리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신 이유의 전부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실 때에도 이런 선택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도 다윗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무엘 선지자와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마저도 다윗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아들들을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도다(삼상 16:6).” 그러나 사무엘 선지자도 하나님의 선택에 무지했습니다. 엘리압은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선택하지만,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중심을 보고 선택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또 다른 하나님의 선택 기준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그 사람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선택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다윗에게서 어떤 것을 보셨습니까? 다윗의 중심에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사무엘 선지자는 이새의 아들들을 차례로 소개를 받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은 그들 중에 없었습니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다윗을 아예 제외시켜 버렸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윗은 이 자리에 내 보일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숨겨둔 아들 다윗을 눈여겨보고 계셨습니다. 결국 사무엘 선지자는 아무도 택하지 않았던 다윗을 데려오도록 아버지 이새에게 요청합니다.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심히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인 다윗이 하나님의 선택을 입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입는 자리에서 다윗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아버지 이새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하나님은 다윗의 중심에서 목자의 마음을 발견하셨습니다.
우리 주님도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목자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다윗이 사울 왕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삼상 17:34)” 새끼 양이 사자나 곰에게 붙들려 갈 때 다윗은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그 어린 양을 사랑하는 마음에 자기 생명을 무릅쓰고 그 어린 양을 구해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울 왕의 총애를 얻고 궁중에 머물 때에도 다윗의 목자적 성품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레헴에서 그 아비의 양을 칠 때...”라고 했습니다. 궁중을 출입하는, 왕을 직접 대면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젠 목동생활도 접을 때가 되었을 텐데, 다윗은 왕궁을 수시로 떠나 양을 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목자의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 붙들려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헌신하고 충성할 주님의 사람들을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조건이나 자격을 보시지 않습니다. 용모와 신장을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 어떤 일이든지, 아무리 작고 하찮은 일이라 할지라도 충성을 다하는 그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에 모든 것을 다 쏟는 다윗을 택하셨습니다. 그를 택하여 바로 그 목자적 성품을 지니고 거대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도록 기름을 부으십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의 놀랍고 거룩한 뜻을 위하여 기름을 부으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해 일하게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우리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미 지난주에도 읽었던 사무엘상 16장 1절에서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새의 아들들 중 한 사람을 왕으로 이미 예선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선했다는 말은 미리 선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십니다. 분명한 것은 무조건 선택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눈 감고 아무나 걸려라 하는 식으로 선택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뜻을 가지시고 선택하십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위해 선택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선택에 관한 여러 말씀들이 나옵니다. 그중 고린도전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가능한 한 지혜로운 사람, 강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 있는 사람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반대로 미련한 사람, 약한 사람, 천한 사람, 멸시받는 사람, 없는 사람들을 택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9)”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의 예대로 지혜롭게 능력 있는 어떤 사람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저 사람을 선택하신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럴만한 조건이나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놀랍게 감당하면, 우리는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능력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목적과 뜻을 가지시고 우리를 선택하십니다.
예수님 이후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예수님을 닮은 사람을 한 사람 꼽으라고 한다면 많은 교회역사가들은 이태리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를 주저하지 않고 꼽는다고 합니다. 그에게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이처럼 기적을 통해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광을 나타내고, 선생님을 만나기만 하면 사람들이 변화되는 이 놀라운 사역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프란체스코는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셨습니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이 땅 한 구석에서 가장 약하고, 가장 무식하고, 가장 미련한 한 사람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를 한참동안 바라보시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저 사람이다. 저를 통해서 나의 강함과 지혜로움과 능력을 나타내리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신 이유의 전부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실 때에도 이런 선택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도 다윗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무엘 선지자와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마저도 다윗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아들들을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도다(삼상 16:6).” 그러나 사무엘 선지자도 하나님의 선택에 무지했습니다. 엘리압은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선택하지만,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중심을 보고 선택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또 다른 하나님의 선택 기준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그 사람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선택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다윗에게서 어떤 것을 보셨습니까? 다윗의 중심에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사무엘 선지자는 이새의 아들들을 차례로 소개를 받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은 그들 중에 없었습니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다윗을 아예 제외시켜 버렸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윗은 이 자리에 내 보일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숨겨둔 아들 다윗을 눈여겨보고 계셨습니다. 결국 사무엘 선지자는 아무도 택하지 않았던 다윗을 데려오도록 아버지 이새에게 요청합니다.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심히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인 다윗이 하나님의 선택을 입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입는 자리에서 다윗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아버지 이새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하나님은 다윗의 중심에서 목자의 마음을 발견하셨습니다.
우리 주님도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목자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다윗이 사울 왕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삼상 17:34)” 새끼 양이 사자나 곰에게 붙들려 갈 때 다윗은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그 어린 양을 사랑하는 마음에 자기 생명을 무릅쓰고 그 어린 양을 구해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울 왕의 총애를 얻고 궁중에 머물 때에도 다윗의 목자적 성품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레헴에서 그 아비의 양을 칠 때...”라고 했습니다. 궁중을 출입하는, 왕을 직접 대면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젠 목동생활도 접을 때가 되었을 텐데, 다윗은 왕궁을 수시로 떠나 양을 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목자의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 붙들려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헌신하고 충성할 주님의 사람들을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조건이나 자격을 보시지 않습니다. 용모와 신장을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 어떤 일이든지, 아무리 작고 하찮은 일이라 할지라도 충성을 다하는 그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에 모든 것을 다 쏟는 다윗을 택하셨습니다. 그를 택하여 바로 그 목자적 성품을 지니고 거대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도록 기름을 부으십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의 놀랍고 거룩한 뜻을 위하여 기름을 부으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해 일하게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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