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천사를 보낼 수 없어 어머니를 대신 보내셨다는 서양속담처럼, 누구에게든 어머니의 은혜는 어떤 찬사로도 부족할 만큼 신성하고 고귀하다. 그러나 좋은 어머니 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아이가 태어나 열여덟 살 성인이 될 때까지 어머니는 18,000시간 이상을 매달려 헌신적으로 돌보아야 한다.

신기한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일을 세상의 어머니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는 것이다.‘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말 외에 더 나은 표현이 있을까? 어머님의 사랑을 기리며 그 은혜를 마음껏 노래하고 싶은 5월, 아니 어머니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Mother's Day를 맞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삶과 신앙을 돌아보자.

마리아의 신앙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마리아만큼 사람들로부터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경우도 많지 않다. 마리아에 대한 이해는 초기교회 이후로 늘 논란거리였다. 지금도 적잖은 개신교인들은 카톨릭 교회에서 그를 지나치게 신처럼 떠받든다고 비판하고, 반대로 카톨릭 교회에선 개신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어머니 성모를 함부로 여긴다고 서운해 한다. 역사적으로도 431년 에베소 공의회와 451년 칼케톤 공의회에서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Theotokos)냐, ‘그리스도의 어머니’(Christokos)냐, 아니면 단순한‘인간의 어머니’냐 하는 열띤 논쟁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많은 신학 사상가들이 이단 시비의 소용돌이에 희생되는 뼈아픈 역사도 있었다. 그만큼 마리아에 대한 이해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예민하고도 복잡한 난제임에 틀림없다.

예수님의 탄생이야기는 오직 두 복음서 마태와 누가복음에만 전해진다. 마태복음에선 율법적으로 부정한 아내를 버리지 않은 요셉의 믿음이 부각된 반면, 누가복음에선 그 두렵고도 엄청난 사건의 당사자로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순종하기로 과감하게 결심한 마리아의 신앙이 본받을 대상이다. 순진한 시골처녀로서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마리아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는 그 당시의 시대상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할례 받아야만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던 유대인들에게 할례 받을 수 없는 여성들은 그야말로 원천적으로 천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그들이 애지중지 여기는 탈무드에 “토라의 말씀을 여자에게 교육하는 것보다 차라리 토라를 불태우는 것이 낫다”고 가르쳤을까? 간단히 말하면,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한 행동을 근거로 모든 잘못과 죄의 근원은 여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자에겐 그만큼 형벌도 가혹했고 남성에 비해서 편파적일 수밖에 없었다. 예수께서 간음한 여인을 살려주시는 말씀만 보더라도(요8:3-5) 여자 혼자 간음할 리 없고 더구나 현장에서 발각된 사건임에도 상대 남자는 어디 두고 여자만 끌고 와 그를 향해 돌을 던지려는 이중적인 태도도 그 때문이었다.

요즘의 세태와 달리 당시 유대 땅에선 처녀의 임신은 부끄럽고 무서운 스캔들이었다. 율법의 저촉이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남편은 파혼을 선언해야 했고 대신 그 여인은 재판에 회부되어 돌에 맞아 죽어야 했다. 그 착한 요셉도 결혼생활이 시작되기도 전에 일어난 추문이어서 약혼녀와의 관계를 조용히 정리하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하려 했다. 이 부분에선 요셉도 위험을 감수하며 율법의 관례를 따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유대교인들에겐 불법이었을지언정, 마리아를 쫓아내지 않고 부끄러운 죽음을 모면하게 한 것만으로도 기독교 입장에선 의로운 행위였다(마1:19). 곧 태어날 아이가 하나님의 아들임(눅1:35)을 천사를 통해 들었고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고귀한 결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앙을 빼놓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강하다!”
마리아는 엄청나게 강한 어머니였다. 마태복음 2장을 중심으로 예수 탄생 직후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동방의 박사들이 떠나자 주의 천사가 다시 요셉에게 나타나 어린 아이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피신하라고 지시한다. 헤롯이 예수를 죽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요셉은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이집트를 향하는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서 이집트까지는 천리가 넘는 길이다. 교통수단도 없이 산후조리도 하지 않은 산모가 갓난아이를 데리고 그 먼 길, 그것도 일교차가 심한 사막길을 통과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요즘의 좋은 차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완벽히 갖춰 떠나는 여행일지라도 갓난아이와 산모 모두에게 견딜 수 없이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지만 막강 권력의 임금이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죽이려 해서 산후조리도 못하고 급하게 피신하는 그들은 무조건 바삐 발걸음을 옮겨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라도 피하여 숨고 싶은 곳이 바로 과거에도 히브리 남자 아이들이 파라오에게 무자비하게 학살됐던 땅이라는 점이다. 그 때는 노예여서 아들을 잃고도 마음껏 울 수 없었다는 점과 비교하면 그나마 형편이 나아진 셈이었다. 그곳을 향해 산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겨운 여행을 감행하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강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잘 감당했다.

인내의 어머니
마리아는 믿음생활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인내의 여인이었다. 특별히 예수의 공생애 마지막 부분에선 그런 그의 성품이 훨씬 돋보인다. 그리스도의 수난주간, 유대 달력으로는 유월절 축제가 열리는 때, 그도 절기를 따라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그가 예루살렘에 있었다는 말은 그 주간에 일어난 전대미문의 사건,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형집행 현장에 가까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현장에서 보통의 어머니라면 죄 없는 아들을 왜 죽이느냐며 그 억울함에 발버둥 치고 어떤 방법으로든 위급한 상황을 중단시키려 했을텐데 마리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무리 구세주라 해도 마리아가 직접 뱃속에 품고 있다 해산의 아픔을 겪고 얻은 아들인데 십자가 위에서 사지가 찢기고 그 지쳐 떨리는 몸을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려 여기저기 번질 때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미치지 않고 가만히 서있는 게 오히려 비정상일 상황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의연했다. 그 이유는 자기 뱃속으로 낳은 아이가 아니어서도 아니고, 자식사랑이 모자라는 무정한 엄마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들 예수의 죽음이 곧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완성의 단계임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을 잃는 충격과 슬픔보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는 구세주의 희생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순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고난을 통해 인간의 아픔을 덜고 그의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신다는 원대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일의 과정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지켜보며 온전히 신뢰했다는 뜻이다. 어머니에겐 아들이 전부다. 그러나 피 쏟으며 죽어가는 그 아들을 위해 맘껏 울지도 못하고 목 놓아 부르지도 못하는 그의 마음은 피 흘림보다 더 아팠을 것이다.

기도하는 어머니
예수께선 십자가 위에서 사랑하는 한 제자에게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실 것을 당부하시곤 어머니를 향해선 그 제자를 아들로 삼으시라고 말씀하셨다(19:25-27). 또 사도행전에 의하면, 마리아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과 더불어 기도하는 일에 힘썼다(행1:14). 성령을 통해 완전히 변화된 제자들과 함께 이제는 기도의 지원자로서 끝까지 순전한 믿음을 보였다. 이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는 다른 자녀들이 어느 순간 변화되는 극적인 기적을 보게 된다. 주의 동생 야고보는 예수생전엔 그분을 이해하지 못했고 예수를 향해 사람들이 미쳤다고 비난할 때는 함께 잡으러 쫓아다녔지만(막3:31), 그는 예루살렘 교회가 생긴 다음 베드로와 대등한 권위를 가진 강력한 지도자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예수의 사역에 몰이해 내지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주의 형제들이 어머니와 함께 기도에 힘쓰더니(행1:14) 드디어 주의 가르침을 따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마리아는 예수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치고 또 다른 아들(들)을 주의 제자로 길러낸 위대한 어머니였다. 오늘날에도 지도력과 섬김에서 모성이 더 영향력을 발휘하는 교회 공동체를 이룬다면 분쟁은 훨씬 줄어들고 분위기는 훨씬 따뜻하게 탈바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