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에 버지니아 텍 에서 조승희 군이 일으킨 사건을 대하면서 참으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특히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실망감은 대단했었다. 미국에 와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나였지만 역시 나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자각하게 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가 한 일을 신문을 통해 보면서 이전에 내 안에도 ‘조승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NBC TV에 보낸 동영상의 내용을 보며 그가 가졌던 생각이 결코 생소하지 만은 않은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을 따라 남미로 이민가게 되었다. 그 때부터 여섯 나라를 돌며 나는 이민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때마다 나에게 오는 문화충격은 대단했고 나는 많은 어려움을 통과해야 했다. 먼저는 언어에서 오는 문제가 있었고, 두 번째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문제가 있었다. 새롭게 이민을 가는 사람들은 이미 그 곳에 자리 잡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마련이고 나도 또한 그들의 내 나이또래 되는 자녀들에게 신세를 져야 했기에 나의 자존심은 많이 상하게 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나는 그저 들어야 할 때가 많았고, 나에게 다른 의견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말하기가 곤란했다. 혹시라도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것은 나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집안의 문제로 될 것 같아 그냥 듣고만 있게 된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그들의 태도를 보며 기분이 나빠지고 점점 말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내 안에는 어떤 특정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 쌓이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이민생활이 오래되어서 부유한 계층에 사는 아이들이 보기 싫었다. 그들은 부모 잘 만난 덕분에 부귀를 누리는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이 내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려는 태도나 잘 사는 모습을 보아주기가 힘들었다.

그뿐인가! 이런 일은 학교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브라질에서 그 동안 돕던 집안 일을 그만두고 꽤 좋은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학교가 좋아서 그런지 학생들은 대부분 백인들이었다. 그들의 머리는 금발이고 키는 나보다 월등히 크고 물론 포르투갈어(브라질 공용어)도 잘하고 부자라서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보니 가난이 줄줄 흘렀다. 나는 학교 클래스 룸에 앉아 있으면서도 내가 돕지 못하는 집안 일을 걱정해야 했다. 거기다가 이제 언어를 배우는 입장이니 내가 말을 한 마디 하면 그 발음이 우스워서 아이들은 웃었다. 나는 그런 속에서 집에 돌아오면 집에서 봉재일을 하는 식구들을 돕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 해야 했고 무거운 마음으로 밤새도록 시험을 준비해서 학교를 가게 되었다. 나는 그런 생활을 하면서 사회에 대한 미움이 점점 쌓이게 되었다. 모든 것이 불공평하게 보였다. 부모덕에 잘 살면서 내 앞에서 잘난척하는 것 같이 보이는 내 나이또래 아이들을 더욱 증오하게 되었다. 그들이 언제나 돈을 척척 쓰는 것을 보며, 그리고 내가 갈 수 없는 그런 유흥업소를 찾는 것을 보며, 그리고 어린 나이에 비싼 차를 사서 타고 다니는 것을 보며 그들은 나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나 자신을 그들에게 보일 수 있는 길은 폭력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나의 꿈에서는 내가 누군가를 쳐서 피를 흘리는 것을 보게까지 되었다. 이런 마음은 조승희가 1차 범죄 후 NBC TV에 보낸 그의 말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는 "벤츠, 금목걸이로도 충분치 않아 이 속물들아", "너희들의 방탕함도 너의 쾌락적 요구를 채워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너희들은 모든 것을 가졌어.", "너희들은 오늘을 피하기 위해 수많은 기회와 방법이 있었는데 너희들은 내 피를 흘리길 결정했어." 라고 말했는데 그 조승희가 내 안에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글을 보면 조승희가 기독교에 가졌던 반감이 컸던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있어서도 교회를 다니는 아이들은 더 큰 나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었다. 그들은 나이에 맞지 않게 점잖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가식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나를 자기들의 범주에서 판단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방황하는 나를 볼 때 탕자로 여겼으며, 그들 틈으로 들어 갈 수 없는 큰 성을 쌓아놓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교회를 놀러 가듯 하면 경계의 눈으로 볼 뿐 나를 그들 중의 하나로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저희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생각하며 산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크리스마스 때에는 술을 먹고 교회를 찾아가 예배 시간에 의자를 뛰어넘어 다니는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이런 나는 그들의 눈에는 정말 문제아였음에 분명하다. 허기사, 내가 주님께 돌아왔을 때 누군가 나를 보며 “저런 사람도 변하는 것은 책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것인데”라고 말 했던 것만 보아도 나는 큰 문제아였음이 분명하다. 지금 그 때를 돌아보니 내가 그런 사람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정말 인생이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나는 그렇게 방황하던 영혼이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일 년 동안 나를 따라다니며 전도를 한 사람의 덕분이었다. 나는 내 안에 있는 것을 주님 앞에 모두 내려놓게 되었고 인생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공평한 것임을 발견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경험하는 그 어떤 고난도 다 선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음을 알게 될 때 나는 인생의 불평과 증오를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 안에서는 무능한 자, 가난한 자에게도 기회가 있음을 알고는 열심히 인생을 달려가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생각할 때에는 모든 1.5세들이 이런 나의 과정을 거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얼마 전 나의 1.5세 신학교 동기와 이야기하는 중에 그도 조승희가 남 같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렇다. 조승희는 다른 별나라에서 온 미친놈이 아니다. 단지 이 땅에서 참다운 가치관을 찾지 못해서 방황하는 우리들의 1.5세들의 모습일 뿐이다. 교회는 이런 자들을 위해 지금 보다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들을 위해 24시간 뛸 수 있는 위대한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선교사를 준비하면서 말이다.

글 / 이종식 목사
베이사이드 장로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