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집을 헐지 않고 뜯어 고치거나, 유용성을 높이기 위해 부엌을 개조할 때, 우리는 리노베이션 (renovation)한다고 한다. 목회를 하는 직업상 별 수 없는 관심사이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있어야할 ‘변화’에 대한 관심은 그처럼 마음도 리노베이션 (renovation)이 가능할까 하는 것이다. 집은 망치로 톱으로 고칠 수 있지만, 과연 마음은 고쳐질 수 있을까? 한 나라를 바꾸기 위해서 제도를 바꿀 수 있다. 법을 개조하여 사회를 바꿀 수 있다. 그처럼 쉽게 사람의 마음(heart)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마음의 개조 혹은 변화에 제일 많은 관심을 가지신 분은 예수님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번도 제도의 개혁이나, 헌법수정을 말씀하신 적이 없다. 시스템은 마음의 문제에서는 무능하다. 사람은 마음을 주지 않고 시스템을 따라가는 ‘척’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지만, 마음을 향상시킬 수 없음은 효율적으로 개조된 부엌을 가졌다고 가정주부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의 변화를 받은 모습을 설교하며, 변화 받은 사람처럼 흉내 내라고 할 수 없다. 변화 받은 모습이 당위성으로 작용하기 보다는 변화를 체험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또 다른 시스템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교강단은 당위성을 전하는 것보다, 마음의 변화를 위한 복음의 선포가 항상 우선되어야 한다. 환경이 바뀐다고 변할 수 없는 마음의 변화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때 원동연 박사의 말씀처럼 선생이 스승 되고, 학부모가 부모 되고, 그리고 어른(older)이 장로(elder)될 것이다.
마음의 개조 혹은 변화에 제일 많은 관심을 가지신 분은 예수님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번도 제도의 개혁이나, 헌법수정을 말씀하신 적이 없다. 시스템은 마음의 문제에서는 무능하다. 사람은 마음을 주지 않고 시스템을 따라가는 ‘척’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지만, 마음을 향상시킬 수 없음은 효율적으로 개조된 부엌을 가졌다고 가정주부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의 변화를 받은 모습을 설교하며, 변화 받은 사람처럼 흉내 내라고 할 수 없다. 변화 받은 모습이 당위성으로 작용하기 보다는 변화를 체험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또 다른 시스템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교강단은 당위성을 전하는 것보다, 마음의 변화를 위한 복음의 선포가 항상 우선되어야 한다. 환경이 바뀐다고 변할 수 없는 마음의 변화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때 원동연 박사의 말씀처럼 선생이 스승 되고, 학부모가 부모 되고, 그리고 어른(older)이 장로(elder)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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