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회 북미미식축구(NFL) 수퍼보울이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경기 뒤 기자단은 투표를 통해 수퍼보울 최우수선수(MVP)로 세인츠의 쿼터백 드루 브리스를 선정했다. 브리스는 팀의 31-17역전승을 이끈 장본인이다. 그가 기록한 32번의 패스성공은 수퍼보울 사상 역대최고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2개의 터치다운 패스를 포함, 288야드를 전진시켰으니 그가 수퍼보울 MVP를 수상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었다. 브리스는 비교적 늦게 빛을 본 선수다. 1979년 1월생으로 나이가 올해 만 31세다. 텍사스주 댈러스 출생의 그는 퍼듀대를 나온 뒤 지난 2001년 NFL 드래프트 2라운드 32번으로 샌디에고 차저스에 지명됐다.

그해 11월 곧바로 NFL 무대에 데뷔, 탄탄대로를 달릴 듯 보였으나 이후 2005년까지의 차저스 선수생활은 그다지 순탄치 못했다.

데뷔 초반에는 차저스의 기존 쿼터백이었던 덕 플러티와 치열한 주전다툼을 벌여야 했다. 2002년 스프링캠프에서 루키 돌풍을 일으키며 주전 쿼터백 자리를 꿰찼으나 2003년 플러티에게 다시 자리를 뺏기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러던 중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출신의 대형쿼터백 필립 리버스가 영입되면서 곤경에 처했다. 주변에선 이제 차저스에서의 브리스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4년 위기는 그에게 곧 기회였다. 그해 스프링캠프에서 차저스 코칭스탭이 리버스를 거의 쓰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들었다. 이를 놓칠세라 브리스는 2004년 내내 주전 쿼터백으로 뛰며 프로보울(올스타) 출전 및 올해의 재기선수에 선정되며 비로소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본격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2005시즌은 자유계약선수(FA)를 앞둔 해여서 중요했다. 브리스는 잘 뛰었지만 운 없게도 시즌 최종전에서 어깨부상을 당해가치를 떨어뜨렸다. 처저스와 재계약 협상이 벌어졌으나 양측은 이견차를 좁히지 못했고 결국 2006년 3월 자신에게 풀타임 쿼터백자리를 보장한 뉴올리언스 세인츠와 6년 6,000만달러짜리 계약을 맺었다.

세인츠 지휘관이 된 브리스는 승승장구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강타당한 뉴올리언스와 어깨부상을 입은 브리스는 마치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는 듯 했다. 세인츠와는 별다른 잡음이 없었고 궁합도 잘 맞았다. 첫해부터 리그 최다인 4,418야드 패싱에 성공했다. 2007시즌에는 세인츠 소속으로 첫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다.

2008년은 슈퍼스타로 도약한 해다. 지난 1984년 댄 머리노가 세웠던 한 시즌 리그최다 패싱야드 기록에 단 15야드가 부족한대활약을 펼쳤다. 그해 무려 5.069야드 패싱을 마크한 그는 머리노와 함께 한 시즌 5,000야드를 돌파한 역대 2번째 쿼터백으로 등록됐다.

그리고는 운명의 2009시즌이 밝았다. 시즌 개막전이었던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전에서 구단 최다이자 개인최다인 6번의 터치다운 패스를 성공시킨 그는 꾸준히 역량을 발휘, 팀을 개막 후 13연승으로 이끌었다.

세인츠는 내셔널풋볼컨퍼런스(NFC) 최고승률(13승3패)로 플레이오프에 안착, 애리조나 카디널스와 미네소타 바이킹스를 제압한 뒤 수퍼보울 결승에서는 수퍼보울 통산 3회우 승에 도전하는 인디애나폴리스 콜츠마저 따돌렸다.

특히 콜츠전은 당대 최고의 쿼터백으로 평가받는 페이튼 매닝과의 맞대결이라 더욱 더 그의 투지를 불태웠다.

결과적으로 32번의 패스성공으로 이 부문 탐 브레이디가 가지고 있던 수퍼보울 역대최다기록과 타이를 이루면서 4쿼터 종료 막판 결정적인 패스 가로채기에 이은 터치다운 허용으로 고개를 떨군 매닝을 압도했다.

이 한방으로 브리스는 진짜 슈퍼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동안의 설움과 언더카드의 이미지도 말끔히 씻었다. 라이벌 매닝을 넘어선 브리스는 수퍼보울 MVP를 수상함과 동시에 앞으로 그의 전성기가 활짝 열릴 것임을 만천하에 공표했다.

정재호 기자, kemp@uko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