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는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 500주년을 맞아 칼빈과 그 후예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프랑스 남부지역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남 프랑스 위그노 후예들의 이야기’를 총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 글은 엑상 프로방스 개혁주의 신학대학교 석사과정 중에 있는 이태식 목사님이 연재합니다.

‘남 프랑스 위그노 후예들의 이야기’는 프랑스 남부의 복음주의 신학교와 복음주의 개혁교회, 그리고 위그노 박물관에 대해 다루게 됩니다. 이는 프랑스 전체에서 보면 극히 소수의 크리스천들의 이야기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현대주의의 물결 속에서 옛 신앙을 지켜가는 작은 신앙 공동체를 소개한다는 점에서는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 주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프랑스에 대한 인상은 빠리, 베르사이유, 니스의 해변 등과 같은 유명한 관광지들과 그 땅을 사랑하여 그것을 화폭에 담고, 소설에 쓰고, 시로 찬미했던 수많은 화가들과 작가들, 그리고 멋진 패션으로 첨단 유행을 선도하는 낭만과 아름다움일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낭만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는 프랑스의 과거 역사 가운데에는 신앙의 문제로 인한 잔혹한 박해와 처절한 저항의 역사가 드리워 있다. 특히 16세기 유럽을 휩쓸었던 종교개혁의 물결 이후 프랑스는 종교전쟁과 위그노(프랑스의 개신교도)들에 대한 박해가 매우 격렬하게 전개되곤 하였는데, 바로 이러한 혼돈의 시기에 장 칼뱅(Jean Calvin, 영어식으로는 존 칼빈)이 개혁교회와 함께 활동하였다. 그가 태어난 지 500주년이 되는 이 즈음에, 그의 신학사상을 이어받아 가르치는 남 프랑스의 한 신학대학과 프랑스 개혁교회, 그리고 위그노들의 역사가 숨쉬는 박물관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들을 한국의 독자들과 함께 나눠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자부심을 갖고 교육하는 엑상 프로방스 개혁주의 신학대학교.

먼저 소개할 곳은 35년의 짧은 역사와 프랑스의 열악한 영적 상태에도 불구하고, 복음에 깊이 뿌리를 둔 성경적이고 전통적인 개혁신학을 가르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엑상 프로방스 개혁주의 신학대학교(Faculté Libre de Théologie Réformée)’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신학대학은 빠리에서 고속열차 떼제베로 3시간쯤 걸리는 곳에 위치한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라는 조그마한 도시에 위치하고 있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분수가 많은 이 도시는 화가 세잔과 작가 에밀 졸라가 태어난 곳이며, 한때 독일의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도 공부했던 활력이 넘치는 대학 도시이다. 뿐만 아니라 26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항구도시 마르세이유와 교황청이 있었던 아비뇽, 반 고흐로 유명한 아를, 알퐁스 도데가 좋아했던 뤼베롱 산자락 등이 모두 가까운 곳에 있고, 언제든지 거리낌 없이 큰소리로 잘 웃으면서 억센 남부지방 억양으로 빠르게 말하는 프로방스 사람들은 친절하고도 소박하다.

바로 이러한 곳에 신학대학이 설립된 것은 프랑스 남부 지역에 많은 교회가 있는 복음주의 개혁교회(EREI) 교단이 이 신학교의 배경이 되는 교단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신학적인 문제로 갈등을 겪던 시기에 전통적인 개혁주의 신학을 견지했던 소수의 목사들과 교회들은 프랑스 개혁교회(ERF)와 통합하기를 거부하며 독자적인 길을 걸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 속에서 학교는 문을 열게 되었다.

개혁주의적인 정신을 가진 목회자와 그리스도인 양성이라는 목표아래 특별히 프랑스와 전세계 불어권 국가 복음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 신학대학의 학제는 다음과 같다. 먼저 학부(Licence)는 3년제이며, 이 과정에서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비롯해 성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등 신학에 대한 전반적인 과목들을 폭넓게 배우게 된다. 또한 매년 12월과 2월에 열리는 학술대회와 수시로 학생들이 준비하는 세미나와 토론회 등은 다양한 관점에서 신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학부와 석사 과정의 학생들은 학교 주관으로 인근의 가톨릭 신학교와도 연례적으로 교류하며 신학토론을 하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학생들은 개혁주의 신학과 가톨릭 신학의 차이를 피부로 느끼며, 더 나아가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신학을 변호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다.

▲이 학교 학부 1, 2학년 학생들은 의무적인 합창단 활동으로 현장 경험을 쌓는다.

학부 1, 2학년의 모든 학생들은 학교 합창단에서 의무적으로 활동을 해야 하며, 매년 4월 부활절 바캉스 기간 일주일 동안의 순회 찬양을 통하여 프랑스 여러 지역 교회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 신학교가 가지고 있는 장점 중에서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겨울방학 1개월 동안 진행되는 실습이다. 학생들은 프랑스의 지역 교회든지, 아프리카나 남미, 동유럽의 나라들의 교회, 선교단체, 병원이나 고아원, 교도소 등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서 그곳 책임자들의 지도를 받으며 현장과 교실 간의 간격을 좁힐 수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올해에는 프랑스 학생 중 한 명이 한국의 신반포 교회에서 실습을 하기도 했는데, 한국교회의 성장한 모습과 열정적인 신앙태도에 많은 도전을 받았다고 한다.

학부 후에는 석사 1과정(Master 1)에 들어갈 수 있는데, 여기서 수업과 과제, 짧은 소논문을 잘 마치면 석사 2과정(Master 2)에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다. 그리고 석사 2과정은 목회적인 석사 과정(Master professionnel)과 학문적인 석사 과정(Master de recherche)으로 나뉘어지는데, 목회 석사 과정은 연중 세미나 몇 차례와 과제, 8개월 간의 실습을 거치면 마무리 된다. 참고로 복음주의 개혁교단에서 목사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과정을 마쳐야 한다. 학문적인 연구 석사 과정은 세미나들과 과제, 그리고 좀 더 분량이 늘어난 논문을 쓰게 되며, 이 과정을 마친 학생은 교수 회의를 거쳐 자격이 되면 박사과정에 진입하여 논문을 쓰게 된다.

학부와 석사의 전 과정은 불어로 진행되므로 일정 수준 이상의 불어실력은 외국인이라도 반드시 요구된다. 올해부터는 석사와 박사과정의 논문을 영어로도 쓸 수 있도록 문을 좀 더 열어 놓았지만, 수업을 듣고,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서는 불어를 이해해야 하며, 공부 외에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살기 위해서는 불어를 모르면 힘이 든다. 혹자는 말하기를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 말에 대한 자존심 때문에 영어를 알면서도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곳에서 살아 보니 프랑스 인들이 그들의 모국어에 대해 대단히 높은 긍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고, 동시에 영어를 배우려고 애쓰지만 잘 안 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엄연한 사실인 듯하다. 어쨌든 프랑스에서 공부하며 살기 위해서는 불어가 필요하다.

이제 간단히 교수님들 소개를 하고 첫번째 글을 마치려고 한다. 사진 왼쪽부터 보면, 윤리학을 가르치는 미쉘 요네르(Michel Johner) 교수는 스위스 출신으로 마르세이유에서 다년간 목회를 했으며, 교수로 사역을 전환한 지금도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매우 꼼꼼하며 때로는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만, 힘들게 한 만큼 배우는 것이 많다. 그 옆의 론 베르제(Ron Bergey) 교수는 히브리어와 구약을 가르치는데 미국 장로교단에서 파송한 선교사로 학교를 섬기고 있다. 중앙에 있는 조직신학의 폴 웰스(Paul Wells) 교수는 한국에도 여러 번 방문하여 한국교회와 한국 학생들에 대한 이해가 높은 분이다.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와 네덜란드 자유대학에서 공부했으며, 금년 칼뱅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여 현대 불어판 기독교 강요를 출판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는 가족들과 학교 기숙사 건물에서 학생들과 함께 살며 평생을 이 신학대학을 위해 헌신한 분이다. 또한 몇 차례의 한국방문을 하며 새벽기도에 감동을 받은 후에는 매일 아침 수업 시작 전 학생들과 함께하는 기도모임을 만들어 인도하고 있다. 그 옆의 프레데릭 암만(Frédéric Hammann) 교수는 실천신학을 가르치는데 매우 친절하고 따뜻하며, 그의 강의는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옆에 계신 연세가 있어 보이는 분은 구약을 가르치는 삐에르 베르뚜(Pierre Berthoud) 교수인데 스위스 출신으로 전 학년도까지 학장이었으며, 뛰어난 인품과 온화함으로 많은 사람들과 두루 좋은 관계를 가지고 계신 분이다. 마지막으로 신약을 담당하고 있는 도널드 콥(Donald Cobb) 교수는 목회적인 성향이 강한 학자로 터키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기도 했는데, 수업뿐만 아니라 그의 설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열정을 심어준다.

학교에서는 외래 교수들도 정기적으로 왕래하며 학생들에게 수업과 세미나 등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의 피터 릴백과 윌리엄 에드가 등이 있고, 피터 존스와 신약의 고든 캠벨, 미국 칼빈 신학교와 연결하여 아프리카 선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해럴드 캘메인도 특정 과목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엑상 프로방스 개혁주의 신학대학은 분명 작은 학교이다. 세계의 유명한 신학교들에 비해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신학대학이 배경으로 하고 있는 교단도 소수 중의 소수이다. 하지만 이 학교가 귀한 것은 인본주의적인 온갖 사상과 하나님을 떠난 여러 현대판 우상 숭배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교회마저도 심하게 흔들리는 프랑스에서, 그 옛날 칼뱅이 꿈꿨던 프랑스의 복음화를 위해 교수와 직원, 그리고 지역 교회 성도들이 헌신하며 학교와 학생들을 섬기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칼뱅은 핍박 받는 자신의 조국 프랑스의 개혁교회를 위하여 책을 저술하고, 학교를 세워 목사들을 양성한 후 다시 프랑스에 잠입시켜 개혁신앙이 그곳에 뿌리내리게 하고자 했다. 하지만 칼뱅이 태어난 지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프랑스의 복음화는 여전히 요원해 보이기만 하고 칼의 위협이 사라진 이 박해의 땅에는 과학적, 이성적, 때로는 동양의 신비적이며 미신적이기까지 한 철학과 사상들이 성경적 진리와 수많은 영혼들을 위협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500년의 시간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옛날 칼뱅에게 주어졌던 사명은 아직도 미완인 채로 오늘날 한국교회와 프랑스교회에게 남겨져 있음을 보게 된다. 고요하지만 폭풍과도 같은 시기를 헤쳐가는 현대 위그노의 후예들이 이 신학대학을 통해 하고 있는 귀한 사역에 한국교회가 주목하고 격려를 보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면서 첫번째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