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일생을 다룬 ‘전기’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전기를 읽다 보면 의미있는 인생이 무엇이며, 그렇지 않은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전기를 읽으면서 흥미있는 사항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인물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그 인물의 당대가 아닌 후대에 의해서 내려진다는 점입니다.

예전에 조선 중종때 개혁의 선봉장에 섰다 37세의 나이로 임금의 사약을 받고 사사되었던 조광조 선생에 대한 책을 읽고 있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중종 임금에 의하여 사형이라는 극형을 받은 이유는 정치적 야심 때문이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욕심과 권력에 집착한 권력 탐욕자라는 이유에서 그는 극형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당시의 평가였습니다. 그러나 후대의 사학자들은 그에 대한 평가를 달리했습니다. 그는 진정한 이상적 국가를 꿈꾸며, 국가의 안위를 진정으로 이루기를 원했던 조선 최고의 이상적 정치가였다는 것입니다.

조광조 선생이라는 이름 석자는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다 기억하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역적이요, 조선을 망하게 만드는 주범으로 여겨졌습니다. 반면 조광조를 몰아내고 당시에는 최고의 충신으로, 당대 조선 최고의 명망있는 정치가로 여겨졌던 남곤, 심정, 김전, 고형산이라는 이름을 지금 기억하는 사람은 역사학자들 외엔 거의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한 인물에 대한 진정한 평가가 흘러 내려오는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역사에는 이런 일들이 참 많습니다. 당시에는 유명하고 그들이 최고의 인생으로 여겨졌는지는 모르지만, 후대에선 별볼일 없는 존재로, 사람들이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인생들이 있습니다. 반면, 당대에선 주목 받지 못하고, 삼류인생처럼 여겨졌으나 후대에 칭송받고 인정받는 인물들이 즐비합니다.

열왕기하에도 한 시대를 주름잡던 사람이 등장합니다. 32세에 한 나라를 통치하는 국왕의 자리에 오른 ‘여호람’이라는 사람과 22세에 국왕의 자리에 오른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입니다. 32세와 22세에 최고 통치자의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었으니 굉장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왕좌에 올랐을 때 세상은 그들을 주목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왕좌에 올랐을 때 백성들은 그들 앞에 무릎을 꿇으며 그들의 권위 앞에 굴복했을 것입니다. 신하들과 백성들 앞에 추앙 받는 군왕으로 자리에 올랐으니 그 명예로움은 하늘을 찌를 듯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평가였습니다. 인간적으로 이룬 업적도, 누린 부귀 영화도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생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이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에 대하여 한마디로 ‘악인의 생’이었음을 표현합니다. 열왕기하 8: 18에 유다의 7대왕 ‘여호람’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또 유다의 8대왕 ‘아하시야’에 대해서도 열왕기하 8:27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으로 평가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이들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무엇에 근거를 둔 것일까요? 한 인생에 대하여 성경이 내리는 기준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우리의 매일의 삶에 대한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생에 대한 최상위의 평가는 ‘하나님의 평가’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평가보다 상위의 평가는 타인의 평가입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상위의 평가는 역사의 평가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상위의 평가는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우리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여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허하게 다시금 그것이 옳은 것인지를 확인해 봐야 합니다. 내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시금 확인해 봐야 합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입니다. 내가 옳다고 여겨도 하나님은 틀리게 보실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틀리더라도 하나님은 옳게 여기실 수 있습니다. 그 기준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성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늘 붙들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 성경을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법률적 문제가 있을 때 변호사를 찾아갑니다. 변호사들에게 문제를 의뢰하면 변호사들은 법전을 들춥니다. 아무리 유능한 변호사라도 그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범위가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매일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 되어선 안됩니다. 우리의 느낌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아님 정당화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이 되어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최상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평가가 우리의 행하는 모든 일에 정당화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횡포’도 있습니다. 오히려 타인의 평가가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므로 성경과 더불어 일상의 삶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실까?” 그 누구의 평가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하나님의 평가에 민감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