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0일 향년 84세로 소천한 현대 선교신학의 거장 랄프 윈터 박사를 추모하는 예배가 주일인 28일 오후 3시(현지 시각) 캘리포니아 주 파사디나에 위치한 레이크 애비뉴 처치에서 드려졌다.

윈터 박사가 평생을 출석해 온 교회에서 드려진 추모예배에는 아내인 로버타 여사를 비롯한 가족들과, 미국세계선교센터(USCWM) 관계자들과 지인들, 그리고 새들백 처치 릭 워렌 목사, 베들레헴 뱁티스트 처치 존 파이퍼 목사 등 고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미국 교계 지도자들까지 2천여 명이 참석했다.

추모예배에 모인 이들은 윈터 박사를 회고하며 고인이 세계 기독교 전체는 물론 그를 만난 개인의 인생에도 깊은 영향을 주는 삶을 살았다고 입을 모았다.

릭 워렌 목사는 추모사 가운데 “저는 이 분을 거의 40년 동안이나 사랑하고 존경해 왔다”며 20대 초반에 처음으로 만난 윈터 박사가 자신의 인생에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고 밝혔다.

이후 새들백 처치를 시작하고 또 처음 교회를 이끌어가는 데 많은 조언과 도움을 준 사람도 윈터 박사였고, 새들백 처치의 첫 수련회 때 주 강사를 맡아 준 것도 윈터 박사의 아내인 로버타 여사였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윈터 박사님은 제 삶에 아주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며 “그 분을 통해 저는 교회는 교인들을 위해 자리 수를 늘릴 것이 아니라 교인들을 선교 현장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새들백 처치는 현재 세계 1백여 국가에 수천 명의 선교 인력을 파송했으며, 내년이면 전세계 모든 국가에 선교 인력을 보낸 첫번째 교회가 된다.

워렌 목사는 이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빈곤, 환경, 기아 등 세계 5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10억의 기독교인을 모은다는 그의 피스(PEACE) 플랜을 처음으로 논의한 사람도 바로 윈터 박사였다고 밝혔다. 그는 “처음 하나님께서 그 비전을 제게 주셨을 때 가장 먼저 윈터 박사님께 알렸다”며 “그 분은 크게 생각하시는 분이셨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워렌 목사와 마찬가지로 베들레헴 뱁티스트 처치의 존 파이퍼 목사 역시 그의 개인적 목회 인생에 있어서 윈터 박사로부터 받은 깊은 영향을 회고했다. 그는 “윈터 박사님의 끊임없는 조언이 있었기에 미전도종족에 계속해서 제 사역의 초점을 맞출 수가 있었다”고 밝혔다.

윈터 박사는 1974년 제1차 로잔대회에서 미전도종족의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했다. 그는 20억 가량의 사람들이 아직 그들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적 배경 안에서 복음을 접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교차문화적 접근의 복음전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표는 그 때까지의 국가 중심의 세계 선교 전략을 종족 중심으로 전환시키며 20세기 선교의 흐름을 단번에 바꾸어 놓게 된다. 미국세계선교센터(USCWM)와 전방개척선교회(FMF) 창립자이자 선교 입문 훈련으로 자리 잡은 퍼스펙티브스(PSP) 훈련의 고안자로 가장 잘 알려진 윈터 박사는 그 자신이 삶의 대부분을 미전도종족 전도를 위한 전방개척선교에 헌신했다.

한편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위대한 선교신학자의 면모들도 고인이 사랑했던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고인의 네 딸들은 언제나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고 사랑이 충만했던 아버지로서의 윈터 박사를 기억했다. 윈터 박사는 그의 모든 선교 프로젝트와 여행에 딸들을 참여시키고 함께 했으며, 그 영향으로 현재 네 딸들 모두가 현재 선교에 헌신하고 있다.

윈터 박사의 가까운 벗들은 한 천재적인 선교신학자의 ‘괴짜’ 같은 면들에 얽힌 일화들을 소개하며 그의 틀에 박히지 않은 아이디어들과 행동들로 놀라곤 했던 추억들을 꺼내 놓기도 했다.

모든 참석자들은 그를 회상할 때 신실함, 겸손함, 고결함, 검소함과 같은 단어들을 빼놓지 않았다. USCWM 스탭으로 사역 중인 프루던스 댄시는 “윈터 박사님은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살기로 택하셨다”며 단 두 벌의 양복과 구두만을 소유한 채 소박한 삶을 살았던 고인을 추억했다. 그는 입버릇처럼 “매일 뭘 입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좋다”고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한편 고인의 동생인 데이빗 윈터 박사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윈터 박사가 위대한 선교신학자가 된 것은 타고난 재능과 능력 때문만이 아니란 점을 강조했다.

전 웨스트몬트 칼리지 학장인 그는 “많은 사람들이 그 분과 마찬가지로 이 세계를 변화시킬 만큼 영리하며 열정적이며 창의적이다”며 “그러나 여러분이 아시는 윈터 박사님이 있을 수 있는 것은 그 분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 그 분의 재능, 능력 그리고 삶 전체를 온전히 주님께 드리기로 결정했고, 차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었다”며 윈터 박사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이 동일한 헌신과 노력으로 세계 선교의 미래를 위해 매진해 줄 것을 당부했다.

윈터 박사는 긴 암 투병 끝에 지난 5월 20일 파사디나에 있는 자택에서 가족들과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천했으며, 평소 고인과 깊은 우애를 다져왔던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조동진 목사(조동진선교학연구소 소장), 박기호 교수(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 한국어학부 원장), 한철호 선교사(선교한국 상임위원장) 등 한국의 선교 지도자들도 그의 갑작스런 별세에 깊은 안타까움과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