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한 시각장애인에 의해 씨앗이 뿌려진 본국 밀알선교단(총재 이재서)이 올해 창단 30주년을 맞는다. 남가주밀알의 경우 1997년 세워져 10년 이상을 이영선 단장이 이끌어오고 있다. 총재 다음 자리인 사무총장직도 겸한 자리다. 여기에 시애틀밀알을 섬겼던 이종희 목사가 내려와 1년 이상 이 단장을 돕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경기한파는 안 그래도 척박한 장애인 사역을 옭죄고 있었다. 장애인 사역의 최일선에서 오늘도 소리 없이, 기꺼이 밀알이 되고자 되뇌지만 내일은 "답이 없다"는 한숨도 들린다.

이영선 단장: 장애인 사역은 우리에게는 중심사역이지만, 교회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변두리사역의 하나다. 무한헌신이 요구되고 손에 잡히는 결과물은 빈약하다는 점도 어려움이다. 여기에 경기침체까지 가중되면서 작년부터는 눈에 띄게 사역이 위축되고 있다. 우선 교회 재정의 우선 순위에서 계속 밀려나고 있고, 결과적으로 미국내 11개 지단 모두 힘든 시기를 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장애인 사역에만 국한된 어려움은 아니다. 선교사들도 재정적인 이유로 후퇴한 경우가 많지 않나. 교회 역시도 동일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교회 사역의 하나인 긍휼과 구제가 중단되는 사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사역은 다시는 회복이 힘들다고 봐야 한다.

이종희 목사: 밀알은 좀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교회가 갈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는 저 자신도 밀알 30주년의 마지막 주자가 될 지, 아니면 새로운 30주년을 여는 첫 주자가 될 지를 모르는 상황이다.

이영선 단장: 그만큼 사역이 위축되었다. 구제와 긍휼사역은 교회 건강의 척도나 다름없다. 그나마 장애인 사역에 공감대는 형성되었다. 소외된 이들에게 복음으로 삶의 해답을 제시하는 일은 양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교회가 이를 다 맡기에는 힘든 부분이 있으니 이를 돕고자 밀알이 시작되었다. 파라처치가 더 이상 장애인 사역을 돕지 않아도 되는 해단의 날을 기다리며 창단된 것이었다. 고집스럽게 교회 밖에서 교회와 장애인을 잇는 다리역할을 해온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30주년을 맞게 되면서 이런저런 의견들이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먼저는 미국의 경우처럼 쇼우셜 서비스 기관으로 가는 식이다. 이 경우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신앙이 없는 전문인력이 들어와 집단화 된다면 종교적인 정체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다른 길은 자체 교회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는 자체 재정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교회를 돕는 선교단으로 가고자 했던 창단 정신과는 거리가 있다. 좁은 길을 가야하니 우선은 제3의 길을 하나님이 열어주시길 기다리고 있다.

이종희 목사: 교회와 선교회 모두 건강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발전하는 모델을 계속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밀알은 매년 10월을 기념일로 지키고 있다. 올해는 특별히 30주년을 기념해 많은 계획을 세웠지만 경기가 좋지 않아 모두 취소한 상태다. 그래도 매년 발달장애인을 위해 미주 최대 규모로 열어온 사랑의캠프는 동부와 서부로 나눠 예년과 같이 진행한다. 서부는 6월말 350명 규모로 작년보다 하루 연장한 3박4일 일정으로 열린다. (문의: 714-522-4599)

이영선 단장은 가슴 윗부분만 움직일 수 있는 중증 장애인이다. 대기업 주재원으로 미국을 찾았지만 그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휠체어에 의지하는 삶을 살게 되면서 장애인 사역에 눈을 떴다. 자연스레 동부에서 평신도로 밀알을 섬기게 되었고, 좀더 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해보자는 마음에 서부 엘에이로 왔다가, 남가주밀알 단장으로 세워진 경우다. "강권적으로 떠밀려" 지금까지 왔다는 그는, "밀알의 30년과 남가주에서의 지난 10년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하면서도, 이종희 목사와 눈을 마주치며 "앞으로가 더 중요하고 힘들 것"이라 말했다. 이종희 목사는 총신신대원 출신으로 교내 동아리 활동을 통해 밀알을 접한 경우다. 이를 계기로 사회복지학을 파고 들어 석사를 하나 더 추가했다. 졸업후 교회 부교역자로 6년여 있는 동안에도 밀알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했고, 마침 벤쿠버에 사역자가 필요하게 되자 이재서 총재의 권유로 미국 땅을 밟게 된다. 그러다 사역지가 시애틀로 바뀌면서 3년 반을 사역하다 작년부터 남가주밀알로 옮겨 업무를 배우고 있다. 죽어져 많은 열매를 맺는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남가주밀알의 사역이 아름답게 계승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