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교회 개척은 어렵다 어렵다 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큰 교회의 지교회로 지원금을 받아 세워지는 교회와 평신도들이 모여 목회자를 청빙하고 세운 교회를 제외하곤 일을 하며 목회를 하는 것이 이민교회 목회자들의 현실이다.

현실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개척 3년과 7년에 한차례씩 목회 위기가 따른다는 것이 이민교회 목회자들의 한결 같은 말이다. 이를 이겨낸 이들은 계속해서 목회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새벽 이슬 같이 사라져버린다. 본지는 이민 사회 교회 개척자들에게 힘을 주고자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한 목회자와의 만남 시간을 가진다. 첫번째는 조이플교회 김정호 목사다.

김정호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정 서울 남노회 파송 목사로, 공부를 위해1996년 아주사에 입학했다. 교회 개척은 10년전인 1999년 맨하탄 12가 평화 시장 근처 집에서 시작됐다. 공부를 위해 입학한지 3년만에 개척을 하게 된 것이다.

김 목사가 교회 개척을 결심하게 된 것은 학교를 다니며 성경공부를 가르쳤던 2세 학생들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고 난 뒤다. 편지의 내용은 2세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교회를 개척하면 그 교회에 나가서 섬기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많은 교회가 있지만 2세들이 섬길 만한 교회가 없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이 개척을 시작하게된 동기가 됐습니다”

개척교회 목회자 대부분이 그렇듯 김 목사도 일을 하며 목회를 계속했다. 3년간 운전학교에서 일을 하며 목회자의 살았다. 하지만 개척 3년이 되자 성도들은 김 목사에게 사례비를 책정, 지급키로 했고 이후 김 목사는 목회와 공부에 전념해 80여명의 성도들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시켰다.

2세들에게 한글 교육은 절실

교회 개척 7년. 김 목사가 깨달은 것은 2세들에게 한글 교육이 절실하다는 것이었다. 미 주류 사회와 한인 커뮤니티간의 다리 역할을 해야할 2세들이 한국어를 하지 못해 직장을 옮기는 것을 알게된 이후다.

“2세들이 한인커뮤니티와 미 주류 사회에 필요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웠습니다. 한국어 실력이 부족해 한인들을 대상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게 가장 큰 원인이었죠. 가정에서 자녀와의 대화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시간인 채 20분이 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열성을 가지게 됐습니다. 현재 교회에서 한글 공부하는 2세가 40여명 되는데 그중 교인의 자녀는 7명 밖에 되지 않죠. 교육은 한글로 말씀 묵상 노트 쓰기, 일기 쓰기로 하고 있습니다”

참 자유를 맛보자는 의미, 조이플

김 목사는 교회 이름을 조이플교회라고 정했다. 교히 이름을 정한 계기는 기도원에서 시작됐다. “1994년 갈멜산 기도원에서 기도를 하러 갔는데 기도 중 우연히 주위를 둘러보게 됐습니다. 구원 받아 기쁨이 넘쳐야할 이들의 얼굴이 모두 우거지 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이들이 누려야할 기쁨의 교회라는 뜻으로 교회 이름을 조이플이라고 정했습니다. 미국 교회에서도 이 이름을 쓰고 있죠. 2년전에는 한 여전도사가 플러싱에 조이플교회 이름을 가지고 개척을 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교회 개척 10년. 김 목사는 10년의 세월을 목회 평가를 위한 기간이었다며 앞으로 10년은 체계적이고 뚜렷한 목회 철학을 세우는 10년을 삼는다고 말했다. “지난 10년 목회에 전념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공부와 목회에 전념하며 살고 싶습니다. 녹내장과 백내장으로 고생을 하긴 했지만 목회자의 사명을 다 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김 목사는 “이민 교회 개척에는 항상 어려움이 따르고 유혹이 따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목회자들에게 찾는 것이 있다면 목회 윤리 일것인데 많은 이들이 목회자로서의 삶에 충실하길 바랍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