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자신을 보느냐에 따라 가능성이 결정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좋은 조건을 가졌거나 배경을 가졌을 때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 대한 이유를 외적인 것으로만 한정짓는 것은 어리석은 발상입니다. 성경이나 심리학에서는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구체적 이유를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생각’에서 찾으려 합니다.

자신을 보는 관점에 따라 형성되는 두가지 상이한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감’과 ‘패배감’입니다. ‘자신감’이란 말의 반대개념은 ‘패배감’입니다. 자신감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에 대하여 뜻한 대로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느끼는 확신’을 일컽습니다. 반면에 ‘패배감’ 이란 사전적 의미는 ‘일을 해보기도 전에 포기해 버리는 태도나 사고방식’을 뜻합니다. 똑같은 상황과 조건속에서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 보는 영역, 그리고 ‘패배감’을 가진 사람이 보는 영역이 각기 다릅니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발췌한 부분입니다.

<오래전에 알코올 중독 환자를 면담한 적이 있다. 그의 아버 역시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 중독이 된 이유를 묻자 “유전인가 봐요. 그런 아버지한테서 태어났으니까요.”라고 답했다. 얼마후 그의 동생을 만났는데 그는 훌륭한 인품을 갖춘 사람으로 규모는 작지만 자기 사업을 단단하게 꾸려가고 있었다. 그에게 술을 마시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제가 어떻게 술을 마실 수 있겠습니까?” 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형제가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놀랍게도 두 형제 모두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어찌 지금의 저처럼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고 있었다. 그들이 그토록 상반된 행동을 한 것은 환경 때문이 아니라 그 환경에 부여하는 의미가 달랐기 때문이다. 형은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였다는 사실을 자신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변명하는 구실로 삼았다. 반면, 같은 사실을 동생은 알코올 중독에 빠지지 않게 해주었던 계기로 삼았다. (이민규 지음, “1%만 바뀌어도 인생이 달라진다”에서)>

심리학자들은 굳어진 행동에는 그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면 나이든 사람들이 노인처럼 행동하는 것은 나이가 들면 무력해 진다는 생각을 전제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저런 이유로 할 수 없다’라는 행동을 보이는 것은 ‘나는 안돼’라는 확고한 신념이 자신의 잠재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간적인 매커니즘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존재가 바로 마귀입니다. 마귀는 그러므로 생각을 사로잡으려 합니다. 온갖 복잡하고, 기묘한 생각을 우리 마음속에 집어넣어 우리의 가능성을 미리 마비시켜 버립니다.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버린 가룟 유다에게 성경은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누가복음 22:3)”라고 표현해 놓았습니다. “사단이 들어갔다”라는 말은 사단이 가룟 유다의 생각을 ‘패배감’으로 물들게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열두제자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그를 팔아버린 행동은 복음의 능력과 그 복음을 위하여 쓰임받을 자신에 대한 가능성을 부인한 것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늘 말씀드리는 것은 신앙은 부르심(소명)의 개념속에서 설명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신앙의 길을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셨기에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부르심’의 개념속에는 ‘가능성’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영광스러운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무한 가능성… 그 가능성을 하나님이 인정하셨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하나님의 영광을 창출할 우리 자신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합니다. 더 나아가 가능성을 아예 부인하도록 미혹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소망의 한해가 멋있고 감격스럽기 위해서는 자신을 향한 가능성을 다시금 활짝 열어놓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아무 쓸모없는 ‘패배감’은 폐기처분해야 합니다.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이런 저런 이유로 회피하려고 잔머리 굴려서는 안됩니다. 현재의 상황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디딤돌로 삼으면서 ‘할 수 있다’라는 신념으로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무력한 자의 특징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변명과 합리화가 많은 것입니다. ‘자신감’으로 충만한 인생은 말이 별로 없습니다. 변명하지 않습니다. 회피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